요 1: 9-13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니라
만물을 창조하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친히 육신을 입고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으로 오셨음에도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였고’, ‘영접하지도 아니하였다’라고 요한은 이 세상 어둠에 속한 인간의 무지를 지적하고 있다. 참 빛이시며 참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 어둠에 갇혀있는 죄인을 구원하여 하늘나라의 빛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세상 뿐만아니라 렇게 목숨 걸고 율법과 제사로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며 메시아를 손꼽아 기다리던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다고 자고한 유대인들마저 메시아이신 예수를 알아보지도 영접하지도 아니하더라는 말씀이다. 그리하여 요한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다”(요 1:11)라고 그들의 외식된 종교행위를 폭로하고 있다. 그러므로 구원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 1:13)라는 결론으로 혈통적 유대인의 선민사상을 부시는 선포를 하신 것이다. 즉 구원은 혈통으로나 인간의 의지나 행위나 노력이나, 그 어떤 것으로도 절대로 불가능한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
이 세상 땅의 티끌로 태어나 “혼돈과 공허와 흑암”에 갇혀있는 인간은 하나님을 알 수 없으며, 하늘나라에서 빛으로 내려오신 메시아를 알아볼 수가 없다. 땅에 속한 육신으로는 영이신 하나님을 알 수도 인식할 수도 깨달을 수도 없도록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셨기 때문이다.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전 3:11).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 55:8).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은 여호와라” (렘 33:2).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인간의 한계를 정해놓으셨기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다"라는 말씀이다. 인간은 절대로 창조주 하나님을 스스로 알 수도, 인식할 수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영접하는 일은 인간에게서 발휘되는 일이 아니며,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섭리와 뜻대로 각자의 역할로 역사를 사는 존재이다. 오직 택함을 받은 ‘하나님께로 온 자들’만 하나님께서 친히 구원의 은혜를 입혀서 당신의 집으로 이끌고 가신다.
그리하여 12절에서, 그 빛을 알아보는 자가 있으니 그들이 바로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며” 그들에게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세상은 빛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알아볼 수가 없다.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선민사상으로 열심히 율법과 제사로 메시아를 그렇게 갈망하고 기다리던 유대인들도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였으며 영접하지 아니하였다. 그럼에도 이 세상 중에 빛을 예수그리스도로, 구원과 생명의 진리로 알아보고 영접하는 자들이 있으니 이들이 바로 창세전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은 자들이며, 오직 그들에게만 생명이 임하는 은혜가 입혀짐을 강조하고 있다. 즉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자들은 본래 ”아버지의 것이었으며, 아버지께로소 온 자들”이라고 주님은 확인하여 주신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요 17: 6-7). 그리하여 요한은 이들을 가리켜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라”(13절)고 확신을 주고 있다.
그러므로 그 빛을 ‘영접하는 자’, 즉 빛으로 오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알아보고 영접하는 것은 인간의 노력과 행위의 의지로 또는 혈통이라는 조건으로 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라고 요한은 인간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있다. ‘하나님께로 난 자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롬 3:24) 들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롬 3:28)라고 사도 바울은 정확하게 복음의 진수를 선언하고 있다. 주님은 또한 자신의 뜻과 노력으로 행위의 열매를 내놓고 구원받았다고 선지자 노릇 하는 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1-23).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는 말씀은, 행함의 열매를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아버지께로 난 자는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을 알고 깨닫게 됨으로 빛과 말씀으로 오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즉 신랑으로 믿고 영접하는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믿음을 가리킨다.
그리하여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전제 조건은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낳아 주시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요한은 인간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을 배제하여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니라”라고 선포하심으로 인간의 선택과 의지와 노력으로 예수를 영접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창세전에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심을 받아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자들이기 때문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참 진리와 영생으로 알아보고 영접하는 믿음이 주어짐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즉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분이 나를 낳아주셨기 때문에 태어났고, 그분이 나를 낳아주셨기에 그분이 나의 아버지가 된 것이며, 그분이 나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당연히 그분의 믿음으로 당신의 자녀에 합당한 가르침으로 기르시며 하늘나라로 인도하신다. 아기가 엄마를 선택하여 태어날 수가 없는 것과 같이 우리의 선택으로 하나님을 믿어주어서 자녀가 되는 일은 절대로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오직 창세전에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만 이 세상에서 구원하여 당신의 나라로 영접하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신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요 6:44);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요 10:27).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 로소이다” (요 17:9). 예수님의 구원은 이 세상 모두를 위함이 아니라, 오직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자들만 구원하시며, 때문에 아버지께로 온 양은 예수님의 음성을 알아들으며 예수님을 따른다고 말씀하신다. 성도는 창세전부터 택함을 받은 하나님에게 속한 자녀이기에 당연히 우리를 데리려 오신 신랑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분의 품에 안기게 된다는 말씀이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 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옙 1:4-5).
그러므로 나의 의지적 노력으로 예수가 믿어지고 행위의 의로움으로 공로와 업적들을 쌓아서 들어가는 나라가 아니다. 창세전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을 받아 아버지께로서 온 자들’이기 때문에 그분이 먼저 우리를 찾아와 주셔서 그분을 알아보는 눈과 귀를 열어주심으로 그분이 바로 나를 낳아주신 ‘아버지’임을 알아보게 되며,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주신 예수그리스도를 신랑으로 영접하게 됨으로, 그분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직 은혜로 그분 안에 하나로 함몰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오 내가 너희를 택한 것이니라” (요. 15:16)라고 확실하게 말씀하여 주셨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이 바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실 자이심이라” (마 1:21)이다. 즉 세상 중에서 아버지께서 보낸 자들만 구원하시기로 정하셨으며, 이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어진 뜻이며, 그 이루어진 뜻대로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오신 메시아이시다.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씀은, 곧 이 세상 속에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진 자기 백성이 있었기에 그들을 위해 오셨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오직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기’ (마 1:21) 때문에 택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반드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어있다고 성경은 말씀해 주고 있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행 13: 48). 때문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으며’ (마 11:27), 이들이 바로 ‘창세전에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입은’ (옙 1:4) 자들이다. 그러므로 전도는 창세전 택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를 찾아내는 선포이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선택에서 제외된 믿지 않는 자를 억지로 믿게 하려고 설득하여 교회에 끌고 가는 강제가 아니라, 구원하기로 작정된 하나님의 자녀를 찾아내기 위한 선포이다. 그러므로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는 두 가지 반응과 분리되는 분쟁이 일어나게 된다. 이 분리는 창세기 천지창조에서 이미 계시하여 주셨다. 하늘과 땅의 분리로 하늘에 속한 자와 땅에 속한 자를 구별하셨으며, 낮과 밤의 분리로 빛에 속한 자와 어둠의 지옥에 속한 자를 구별하시고 분리하셨다. 따라서 아직 후손도 태어나기 전에 먼저 여자의 후속 즉 하나님의 자녀와, 뱀의 후손즉 이 세상 마귀의 후손을 분리시키시는 선언을 하셨다(창 3:15).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는 반드시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은혜를 입어 구원을 얻게 되지만, 마귀의 자식은 마귀를 아비로 믿기 때문에 멸망과 심판을 받게 되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하나님에게 속하지 아니한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사는 자들을 가리켜 ‘마귀의 자식’ ‘독사의 새끼’라고 부르신 것이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요 8:44).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 23:33).
그리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구원이 성취되는 그 관건적인 시간에, 십자가를 기준으로 왼편 믿지 않는 강도와 예수를 구원자로 알아보고 자신을 맡기는 오른편 강도가 갈리는 분리가 일어난 것이다. 주님은 분명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영생에 들어갈 오른편 양과 영원한 형벌을 받아 지옥 불에 떨어질 왼편 염소는 창세전 하나님의 선택으로 이미 정해져 있었고 구별되어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오른편 양으로 불리는 성도를 향하여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마 25:34)라고 창세로부터 성도를 위해 예비된 나라가 있다고 말씀하시고, 왼편 염소를 향하여서는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마 25:42)라고 확실히 분리하셨다. 이미 하늘의 묵시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고 완성된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씀이다. 이처럼 복음 속에는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를 갈라내어 분리시키는 능력으로 선포되고 성취된다. 그리하여 요한은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니라”라고 오직 택함을 받아 하나님께로 난 자들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라고 확고부동하게 선언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독립적 주권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찾으심과 부르심과 간섭과 인도를 은혜라고 한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오직 그분이 나를 택하셔서 낳아주셨다는 그 이유 하나로 그분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입은 것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은혜를 '선물'이라고 말씀하신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너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므로 누구든지 자랑할 수가 없는 것이라” (옙 2:8-9). 오직 성도만 자신이 바로 티끌과 같은 ‘없음’의 존재임을 인정하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철저한 깨달음을 가지게 되며, 자신이 바로 죄와 허물로 죽었던 존재라는 실체를 투명하게 깨닫게 됨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은혜만을 구하게 되는 철저한 자기 부인의 십자가 삶을 지향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자각과 하나님에게 향한 순종과 믿음은 노력과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불가항력적 은혜로 하나님이 친히 찾아와 주시고 이 세상에서 끄집어내어 결코 당신의 나라로 이끌고 가시는 그분의 열심과 믿음이기 때문에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포기되거나 없어지거나 져버려질 수가 없다. 구원과 믿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며 그분이 입혀주시는 은혜이다. 그래서 다윗과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23:4);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딤후 4:18);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 1:6);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고전 15:10).
그러므로 하나님의 믿음으로 이끌려가는 성도는 이 세상 그 어떤 환경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주께 대한 믿음이 견고히 보존된다는 말씀이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히 10:39). 하나님께서 심겨주신 믿음이 성도의 눈에 때로는 겨자씨같이 보이지만 그 겨자씨의 믿음에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질 수 있는’ 능력이 부어져 있음으로 성도는 “환란이나 곤고나 위험이나 칼이나 그 어떤 것으로서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다” (롬 8:35-39)라는 감개무량한 고백으로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그분이 잡아주시는 손을 놓지 않게된다. 내 의지와 노력으로 붙들고 있는 믿음은 외부적인 조건과 상황에 따라 빼앗기거나 포기되거나 없어지지만, 하나님의 믿음으로 이끌려가는 성도는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그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포기되는 일은 절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28-29). 예수그리스도 구원에 대한 확실한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믿음이기 때문에 절대로 취소될 수도 빼앗겨질 수도 없다. 이것이 바로 요한의 말씀과 같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요 1:12)는 진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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