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의 진의

요한복음 [5]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요 1: 29-34)

오직 은혜 2020. 3. 27. 12:41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1: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1: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1: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1: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1: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세례요한은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예수그리스도의 길을 곧게 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아 태어난 자이다. 때문에 세례요한의 눈에 비친 예수님은 죄인을 위하여 죽임을 당하는 희생 제물이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증거 한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시기 위해 자신을 한없이 낮추시고 세례요한에게 요단강에서 물세례를 받으셨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자 성령이 비둘기 형상으로 예수님에게 임하고 하늘에서 이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음성으로 증언하여 주셨다. 이는 장차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사랑하는 하나님의 아들들로 태어나는’ 오순절 성령의 임재를 계시한다. 창세기부터 시작하여 요단강 세례까지 구약에서 수없이 예고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의 실체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임을 성령의 임재와 하나님의 선언으로 증언하신 것이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마 3:17).

세례요한은 성전에서 열심히 양을 잡아 제사드리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이제 더는 양이 아닌 참 제물, 즉 너희들의 모든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그리스도가 천국으로 너희 앞에 나타나셨으니 성전에서 광야로 나아와 회개의 세례를 받고 천국을 영접하라고 광야에서 외친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주시기 위해 자신의 독생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희생 양으로, 희생 제물로 보내주셨다는 외침이었다. ‘어린 양’은 대 속죄일에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광야로 죽음으로 보내지는 “아사셀 염소”를 가리킨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대속 제물로 십자가에 죽으심을 당하기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어린 양’이라고 증거한 것이다 (요 1:29).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오직 자신을 위해 준비하신 예수그리스도만 제물로 받으시기로 정하셨기에 독생자 예수 외에 이 땅의 그 어떤 것도 받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땅의 원 상태를 “혼돈과 공허와 흑암” (창 1:2)으로 정하셨기에 이 땅의 흙에서 난 인간 자체가 흙의 본성을 따라 ‘없음’이며, 타락한 죄인이며, 또한 이 땅도 가시와 엉겅퀴로 저주받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죄로 오염된 이 땅의 것들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 땅에 속하지 않은 태초부터 우리의 구원을 위해 계신 영원한 예수그리스도를 제물로 받으시려고 십자가에 못을 박은 것이다. 오직 점도 흠도 없는 의인이신 예수그리스도만이 인간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실 수 있으며 죄를 없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롬 5: 8-9). 즉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고, 우리는 그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진노의 심판에서 구원받아 의롭게 된 자들이다.

 

인간은 ‘없음’의 먼지로 만들어진 피조물이기에 창조주 하나님은 피조물이 드리는 그 어떤 것도 받을 수가 없다. 예를 들면 해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비추고, 비가 하늘에서 내려 땅으로 젖어드는 자연의 법칙과 같이, 인간은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은혜를 입어야만 살 수 있는 수동적 존재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식하지 못하고 ‘없음’의 존재가 ‘있음’의 역할을 하여 하나님을 돕겠다고,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해서 섬겨 올리겠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자기 주제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일이다. 한 마디로 이 땅의 그 어떤 것도 하늘로 올라가는 역리는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이 주신 순리를 역리로 행하는 것을 죄악이라고 하며, 진리의 말씀을 대적하는 패역함이며,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이며, 은혜를 망령되게 하는 저주와 멸망을 자초하는 마귀의 행사라고 한다.

 

율법과 제사를 주신 목적은, 타락한 인간의 육적 본능으로는 절대로 하나님을 알 수도 또한 하나님의 거룩한 의의 법을 지킬 수도 없으며, 구원의 의가 나올 수 없음을 알게 하기 위함이며, 인간 육에서 나오는 것은 오직 죄뿐이며, 사망과 멸망임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만이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게 됨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 3:10-13). 즉 율법적 행위로 자신의 의를 추구하는 자는 그 율법에 의해 정죄 받은 저주 아래 있는 자이기 때문에 자신을 사망에서 구원할 수가 없다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완벽하시며 점도 흠도 없으신 거룩하신 성품과 인격을 가지신 분이시기에 그분이 내신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이다. 때문에 죄인의 육적 본능에서 나오는 욕망으로는 절대로 거룩하신 의의 법을 지킬 수도 또한 그분의 말씀에 순복할 수도 없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내신 법은 오직 법의 당사자인 그분만이 완성하실 수 있으며 또한 그분만이 페하실 수 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심으로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18)는 말씀 그대로 하나님 자신이 친히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심으로 우리에게는 율법을 폐기하여 주셨다.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율법은 ‘죄와 사망의 법”(롬 8:2)이다. 그 “죄와 사망의 법”을 자기 육체로 페하시기’(엡 2:15)위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며”(갈 3:12),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롬 10:4).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 하였음이라”(롬 8: 1-2) 함과 같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창세전부터 하늘의 묵시에서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제물만 받으시기로 정하셨기에 예수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한 제물로 이 땅에 보내주셨다. 이는 하나님은 오직 자신을 위해 준비한 제물만 받으시며, 타락한 죄인이 드리는 그 어떤 제물도 받지 않기로 정해 놓으셨기에 하나님은 반복하여 죄인들이 드리는 제물을 받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사 1:11-14
1: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이스라엘은 4000여 년 동안 율법 지킴과 열심히 양을 잡아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하나님을 섬겨드리며 기뻐하시며 자신들도 구원받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수시로 이스라엘을 향하여 너희들이 드리는 무수한 제물을 기뻐하지도 받으시지도 않는다고 말씀하셨고,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견디지 못하신다고 말씀하신다. ‘너회들이 나를 위하여 한다는 이 모든 것들은 너회들 자신들을 위한 것이지 나와는 상관이 없다’는 말씀이다. 그러니 제발 제사 행위를 그만두라고 아예 성전 문을 닫으라고(말 1:10) 말라기에서 말씀하심으로 구약이 막이 내린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갈망하여온 메시아는 그들 자신들을 위한, 즉 이스라엘이 전 세계를 지배하는 권세와 힘을 가진 최강의 민족으로 세워줄 민속 메시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들에게 보내주신 메시아는 ‘세상 죄를 지고 무력하게 죽어야 하는 희생양’이었기에, 그들이 기대한 뜻과 반대로 연약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그들 앞에 나타나신 것이다. 그리하여 요한은 메시아가 자기 백성에게 왔음에도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그러한 이스라엘의 민속 사상이 오늘 이 시대 교회에서는 더 교묘하게 드러나고 있다. 오늘날 교회는 구원과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힘쓰며, 신령과 진정으로 믿고 영접하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오직 예수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기적으로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수를 믿겠다고 교회 안으로 비집고 모여드는 파리 떼와 같은 무리들의 실상은 자신들의 탐심을 채우기 위한 목적이며,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복을 얻어내기 위한 의도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주일 예배 외에 수요 예배, 금요예배, 새벽예배, 철야예배, 구역 예배, 선교회... 십일조, 헌금, 봉사, 충성 등으로… 참으로 열심에 특심으로 도에 지나칠 정도로 하나님을 섬겨드리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 구원과 생명을 주시는 진리의 말씀을 상고하고 깨닫고 이해하여 자신의 실체를 자각하는 애통과 가난한 심령으로 내려가는 자기 부인, 나에게 구원과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힘쓰며, 그분의 뜻을 헤아리며, 순종으로 자기 죽음의 십자가 삶을 추구하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성도는 부름받아 하나님의 일을 도와드리기 위해 부려지는 일꾼으로 선택된 자가 아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기위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 6:28-29) 라고 우리에게 정답을 주셨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섬겨드리겠다고 받으시지도 기뻐하시지도 제발 하지 말라고 하시는 제사와 같은 예배 고지론에 열심에 특심을 부리고 있다. 정확하게 반대로 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도는 오직 하나님의 구원의 의와 은혜를 입어야 만이 죄와 죽음에서 살 수 있는 죄인의 상태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죄인으로 태어나 구원을 받아야 살 수 있는 죽은 자와 다름이 없는 존재가 어찌 하나님을 도울 수가 있으며, 어찌 구원에 이르는 의가 나올 수 있으며, 죄인의 몸에서 어찌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죄인의 역할은 자신이 바로 추악한 죄인이라는 실체를 자각하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에 자신을 맡기며,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를 구하는 것뿐이다. 아무런 대가도 조건도 없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저주와 사망의 지옥에서 구원하시는 그분의 의로운 구원에 항복하는 자기 부인의 십자가 삶을 추구하며,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맡기는 순종이다. 그리고 그분의 놀라운 능력과 역사하심에 감사하고 기뻐하며, 우리에게 제시하신 진리의 말씀 속에서 그분의 뜻과 사랑의 마음을 헤아리며, 그분의 사랑에 함몰하여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나와 함께하시는 그분의 생각으로, 그분의 마음으로, 그분의 뜻으로 사는 순종의 삶을 축복으로 지향하는 것이다. 성도의 소망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이시다.

 

인간이 처음부터 ‘없음’의 티끌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가 아예 없다는 것이며, 때문에 인간은 하나같이 패역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죄인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구약 전체의 역사가 바로 인간의 패역하고 더럽고 추악한 독사임이 드러나고, 저주와 멸망에 합당한 자들임이 폭로당하는 역사이다. 처음부터 율법과 제사를 주신 것은 인간의 패역함을 폭로하여 보여주심으로 인간은 죄인의 자리에서 구원을 받아야만 비로소 인간됨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제사를 통하여 자신이 바로 죽어 마땅한 죄인이며, 반드시 어린양 예수그리스도의 제물로 말미암아 구원이 임하게 됨을 알게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의 패역한 죄를 깨닫고 어린양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을 원하지도 구하지도 않더라는 것이다. 세례요한이 메시아 예수를 직접 눈으로 보면서 회개와 천국을 외치는 그 순간에도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여전히 양을 잡아 제사드림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제사를 멈추고 자신을 제물로 드리려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와 사망에서 구원함을 받으라고 성전에서 광야로 나오라고 외친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신 제사법은 어린 양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 제물만이 인간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할 수 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즉 아담과 하와가 죄에 빠지자마자 하나님은 즉시 그들의 후손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주실 언약을 맺으시고 무고한 양을 아담 대신 죽게 하여 제물로 받으신 것이다. 죄인 대신에 양이 제물로 드려짐으로 그 양 때문에 죄가 탕감을 받고, 죄인이 죄와 사망에서 살아나는 공의로운 제사를 하나님께서 먼저 시작하신 것이다. 이는 장차 양같이 희생당하실 분이 오셔서 단번에 자신을 제물로 드림으로 영원한 구원과 동시에 영원히 사는 영생으로 하나님과 연합을 이루시는 뜻을 성취하시기 위한 예표이다.

히 10: 8-14
10:8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10: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10: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0: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0: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1)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0: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0: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의 오심과 구원을 계시하시기 위한 의도로 잠시 제사법을 주신 것이다. 둘째 것, 즉 예수그리스도의 구원 성취를 이루시기 위해 첫째 것, 즉 율법과 제사를 잠시 모형으로 주셨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진정 받으시는 제물은 인간이 드리는 짐승의 제물이 아니라 오직 어린양 예수의 제물이다. 왜냐하면 짐승의 제사로는 인간의 죄를 없이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누군가의 아들을 죽여 놓고 양을 잡아서 변상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사람의 목숨은 동물이 아니라 사람의 목숨으로 대속하여야 하며,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능력이 있는 목숨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릴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이신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죄인의 육신을 입혀서 우리 죄인에게 보내주셨다.

 

인간의 죄를 대속하실 수 있는 분은 반드시 죄 없으신 의인의 생명이어야 하며, 죄로 죽은 인간을 다시 살리는 분은 반드시 부활하시는 능력을 가진 영생의 소유자여야 한다. 그 역할을 하실 수 있으신 분은 오직 인간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자신을 대표하는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을 우리에게 내어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속성을 따라 점도 흠도 없으신 독생자 예수의 제물만 받으신다. 예수그리스도의 의의 제물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주시며, 예수그리스도의 의의 생명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의인으로 잉태시켜 주신 것이다. 이와 같이 성도는 죄 밖에는 아무것도 한 것 없이 구원받아 의인이 된 것이며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의 의를 은혜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례요한이 증거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