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2: 43-45 / 12: 22-24 / 12: 28-39
12:43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12:44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보네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12: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니라
12:22-24
그때에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벙어리가 말하며 보게 된지라
무리가 다 놀라 가로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바리새인들은 듣고 가로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12: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12:30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12: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12: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
12:38 그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 하나이다
12:3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 하나 선지자요 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주님이 일곱 귀신 비유를 주시게 된 이유는 바로 위 구절에서 나오는 귀신들린 눈먼 벙어리 치유 사건이다 (10:22-24). 예수님께서 눈멀고 귀가 먼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주셨다. 율법주의자들인 바리새인들은 눈이 멀고 귀가 먼 사람은 귀신들린 부정한 사람이요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은 죄인이라고 정죄하고 배척했다.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날 때부터 소경 된 이를 가리켜 ‘이가 누구의 죄로 이렇게 된 것이냐’라고 물었던 것이다.
그런데 율법에 의해 ‘부정한 자’로 정죄 받은 각종 질병에 묶여있는 자들을 주님은 긍휼과 은혜로 고쳐 주셔서 ‘정결한 자’로 만들어 버리신 것이다. 유대주의 자들은 정함과 거룩함은 인간의 노력과 행함으로 공로와 업적에 근거가 된다고 믿어 왔다. 그런데 눈과 귀가 멀고 앉음뱅이 되고 문둥병이 되고 귀신들린 부정한 죄인으로 정죄 받은 자들이 아무것도 한 것 하나 없이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말미암아 주님이 자신의 권세와 능력으로 깨끗한 자로 자유로운 자로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그렇게 자신들의 기대와 완전히 어긋나게 사역하시는 예수님의 축귀사건을 이들은 ‘바알세불을 힘입어 행한 사건’ 이라고 매도하여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며 전능하신 구원자 이심을 부인한 것이다. 하나님의 선한 법마저 자신들의 의를 세우는 방패로 삼고 예수님의 의로운 구원사역을 ‘바알세불의 사역’으로 매도해 버리는 그들의 극지에 달한 악행에 대하여 주님은 ‘영원히 사함을 얻지 못하는 성령훼방죄’ (마 12:31-32)로 정죄하신 것이다. 즉 이들이 바로 자신들의 율법 지킴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필연성을 모독하고 생명의 근원인 예수그리스도의 영을 대적하는 영원히 사함을 얻지 못하는 마귀 바알세불의 자식들이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주님은 이들의 악행을 마귀의 행사라고 지적하시고 이들을 ‘마귀의 자식’, ‘독사의 새끼’라고 부르셨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요 8:44).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 23:33).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들의 죄악을 폭로하는 십계명을 주어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자신을 우상으로 섬기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자들이며, 하나님마저 살해하는, 진리의 영을 몰살하는 ‘살인하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도덕 질하는’ 좀 먹는 벌레이며, 이 세상에서 으뜸이 되고자 ‘세상과 간음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폭로하신 것이다.
주님은 귀신은 오직 성령에 의해서만 쫓겨나간다고 말씀하신다 (마12:28). 성령의 임하심이 없이는 ‘나’를 신으로 모신 ‘나’라는 귀신은 절대로 쫓겨 나가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행위의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깨끗하게 소제 되었다고 허세 뜨는데 주님은 그 깨끗함이 오히려 너희가 말하는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초청하는 일이라고 지적하신다 (마 12:24-27). 예수님의 축귀사역을 ‘바알세불’로 모욕하는 이들이야말로 완전히 마귀에게 조종당하는 잡신 들린, 즉 ‘일곱 귀신들린 자들이며, 쇠사슬로 묶어나도 감당이 안 되는 무덤에서 사는 ‘군대 귀신 들린 광인’이며, 돼지의 삶을 사는 자들임을 폭로하신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의 실체와 결국이 어떤 것인가를 똑똑히 보여주시기 위해 광인에게서 나온 군대 귀신을 2천 마리의 돼지 떼에 들어가게 하시고 물에 빠져 몰살당하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행하신 축귀사역은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구원사역이다. 단순히 악영들이 쫓겨나가는데 그치는 사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님은 거짓 선지자들도 귀신을 쫓아내는 기적들을 행하고 그러한 기적적인 사건들이 그들에게서 일어난다고 미리 말씀하여 주셨다.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3).
성령의 능력이 아닌 축귀는 모두가 미혹의 영이 일으키는 거짓된 것들이라고 말씀하신다.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 (마 12:25-26). 한마디로 귀신이 귀신을 쫓아내는 일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축귀는 귀신이 나간 것이 아니라, 반대로 더 많은 귀신들을 끌어들여 통제할 수 없는 일곱 귀신 들린 자로, 군대 귀신 들린 광인으로 멸망을 자초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청빈의 삶으로 깨끗하게 소제하여 도덕과 윤리적으로 의롭다고 자칭하여도 귀신들린 상태에서 격발되어 나오는 청결과 의로움이 오히려 더 많은 더 악한 귀신들을 불러들여 완전한 마귀의 소굴로 만들어 심판의 근거를 쌓더라는 것이 바로 일곱 귀신의 비유이다.
귀신은 오직 성령의 힘으로만 나갈 수 있음으로 성령이 우리 안에 임재한 그 상태가 바로 귀신이 쫓겨 나가고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임한 증거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12:28).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와 하나님의 은혜의 덮음으로 마귀의 세력이 물러나고, 죄인이 마귀의 종에서 풀려나와 영원한 자유와 구원이 임하는 복음의 새 시대가 왔다는 것이 바로 천국이 임하였다는 선포이다. 그 증거로 천국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 속에 뚫고 들어오시자 아무것도 행하지도 또한 행할 수도 없었던 저주의 대상으로 취급받은 죄인들이 각종 질병에서 풀려나고, 귀신들린 자가 귀신이 쫓겨나가고,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아 인간으로서의 삶을 박탈당한 문둥병 환자가 깨끗함을 받아 새 사람이 되고, 눈먼 자와 귀머거리가 복음이 들리게 되고, 죽은 시체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나는 능력의 이적들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귀신이 쫓겨나간다는 것은 바로 마귀의 종으로 살던 내 옛사람의 죽음을 가리킨다. 이는 인간의 자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 안에 뚫고 들어오심으로 내 욕심을 쫓아 마귀의 소굴로 살던 옛 죄인이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음으로 내 안에 있는 마귀의 세력이 철저히 죽고,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으로 예수그리스도에게 속한 새로운 피조물로 탄생됨으로 주님은 성령이 임하면 귀신이 쫓겨나가고 천국이 이미 내 안에 임하였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마 12:28).
이와 같은 사건들을 배경으로 주님이 행하신 축귀사역을 ‘바알세불의 힘’이라고 매도하는 그들에게 주님은 일곱 귀신의 비유를 주신 것이다. 즉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우월감을 내세워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행위로 자신을 의로운 자로 청결한 자로 자칭하는 율법주의 자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이 비유를 던짐으로 너희가 바로 일곱 귀신들린 바알세불이며, 너희들이 의롭다고 행하는 그 행위가 사실은 영원히 사함을 얻지 못하는 ‘성령 훼방죄’라고 단호하게 못을 박은 것이다.
마 12: 31-32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성령을 훼방한다’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영, 즉 살려주는 영을 모독하고 훼방하고 거역하는 일이며 당연히 살길이 없는 영원한 멸망이기에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라고 영원한 심판을 선고하신 것이다. 즉 그들이 추구하고 행하는 소위 청결한 삶과 의로움 삶은 자신들의 의를 세워 사람들의 칭찬과 인기를 얻어 영광을 챙겨 가지려는 외식이며, 마귀의 욕심을 따라 자신을 숭배하는 마귀의 행사이다.
그런데 주님은 ‘인자를 거역하는 죄는 사함을 받을 수 있다’ 라고 말씀하신다. 그건 주님이 이사야서 53장의 예언대로 연약한 어린 양으로, 감추어진 모습으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는” (사 53:2-3) 모습으로 오셨기 때문에 아직 말씀의 깨우침과 성령님의 인도가 없이는 예수님을 오해하게 되고 거역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짓은 모든 죄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와 하나님의 은혜의 덮음으로 용서와 사하심을 받는 새 시대가 왔다는 것이 바로 천국이 임하였다는 선포이다. 그 증거로 천국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 속에 뚫고 들어오셔서 복음을 선포하시는 곳마다 아무것도 행하지도 또한 행할 수도 없었던 정죄와 저주의 대상으로 취급받은 각종 질병과 귀신들린 자들이 깨끗한 자로 자유한 자가 되는 능력의 이적들이 일어난 것이다.
예를 들면,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로 예수님과 3년 동안이나 함께 먹고 마시며 그분이 행하시는 모든 일에 동참하였고 그분이 들려주시는 모든 진리의 복음을 듣고 “주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유명한 신앙고백을 남기기도 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예수님을 배신하고 저주까지 하게 된다. 다른 제자들도 십자가를 져야 하는 주님을 이해할 수가 없었기에 뿔뿔이 도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연약한 모습으로 폭로된다. 그러나 성령이 그들 안에 들어가 그들에게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과 행하심을 깨닫게 가르쳐주시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자 목숨을 다하여 복음을 전파하는 순교자로 새워진 것이다. 성령이 오셔서 그 연약한 모습으로 오신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이시며, 실패의 현장으로 보였던 십자가의 현장이 바로 구원과 생명이 임하는 은혜의 현장임을 깨닫게 하여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위의 열심으로 공로와 업적들을 쌓아서 자신들의 ‘거짓 의’ 를 주장하는 자는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덮으심의 은혜의 법칙을 거역하는 자들이며, 자신들의 의로 성령의 의를 밀어내는 행위이기에 주님은 그들의 행위를 성령을 훼방하는 영원히 사함을 얻지 못하는 죄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과 생명의 법칙이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에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누가복음 18장에서 한 바리새인이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공로를 나열하고 있다. 열심히 기도하며, 이레에 두 번씩 금식을 하고, 십일조도 꼬박꼬박 내고, 다른 사람들 같이 토색, 불의, 간음을 하지 않았다 (눅 18:11-12)라고 떳떳하게 자신을 다른 이와 비교하여 의인이라 자랑하며 인정과 칭찬받기를 원한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이 내어놓은 의로운 행위를 도리어 ‘불의’라고 하시며, 마귀의 욕심에서 나온 행위이기에 그들을 ‘마귀의 자식’으로 매도하신다. 왜냐하면 마귀의 세간으로 사는 육신에 속한 모든 행함을 하나님은 악으로 정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사 64:6).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한 사람도 없도다” (시 53:3).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사도바울은 말씀하시면서 그 마귀의 탐심에서 나오는 인간의 죄가 얼마나 추악한지를 폭로하고 있다.
롬 3: 10-16
3:10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3: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3: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3: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3:15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3:16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인간이 의롭다고 선하다고 내어 놓는 그 모든 것들은 사도바울이 지적한 바와 같이 열린 무덤 즉 썩은 송장에서 나오는 악독뿐이다. 아무리 열심히 율법 지킴으로 자신의 삶을 철저히 관리한다고 하더라도, 그 모양이 아무리 깨끗하고 선하게 보여도, 그 뿌리가 마귀의 탐심이기 때문에 모든 것들은 자기 영광과 가치와 자랑과 만족을 챙기기 위한 자아 확장의 시도일 뿐이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이 자칭하는 착한 행위를 ‘너회 아비 마귀의 욕심을 따라 행하는 마귀의 행사’라고 폭로하신 것이다.
12: 44에서 귀신은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라고 말하고 있다. 귀신은 인간 자체를 ‘내 집’ 이라고 부르고 있고, 자기 집이기에 인간의 허락 없이 자기 마음대로 나갔다 들어갔다 하고 있다. 즉 귀신이 인간의 통제를 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귀신이 인간을 지배하는 주인이 되어 인간을 종으로 부린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을 마귀의 종, 세간으로 부르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 외에 모든 인간의 주도권을 마귀가 쥐고 있다는 말씀이다.
요 8: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모든 인간은 마귀의 자식이기에 마귀의 욕심을 따라 행하며, 이들이 행하는 것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 아니라 죽이는 일이기에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그러므로 그렇게 자신들의 의지와 노력을 동원하여 제사와 율법 지킴과 헌신과 청빈과 도덕과 윤리로 깨끗한 자로 하나님 앞에 인정받고 사람들 앞에 칭찬을 받고자 하는 그 ‘깨끗함의 소제’는 귀신이 나간 것이 아니라, 반대로 더 악한 귀신 일곱을 초청하여 완전한 마귀의 소굴로 만들어 버리는 최악의 상태로 가더라는 것을 주님은 7의 완전수로 표현하신 것이다. 즉 ‘너회 자신이 바로 마귀의 세간’ 이기에 절대로 깨끗한 것이 나올 수가 없다는 말씀이다.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마 12:45).
주님은 일곱 귀신 들린 비유로 너희들이 의롭다고 열심히 지키고 행하고 있는 그 율법적 행위가 바로 ‘너회 아비의 욕심을 따라 행하는’ 마귀의 행사이며, 너희가 바로 일곱 귀신 들린 완전한 마귀 세간이라고 폭로하신 것이다. 그렇게 귀신들린 자의 모습이 어떠한 모습인가를 똑똑히 보여주시기 위해 무덤 사이로 벌거벗고 돌아다니며 시사 슬로 묶어도 감당이 안 되는 군대 귀신 들린 광인을 등장시킨 것이다. 너희들은 비록 거룩한 옷을 입고 성전에서 열심히 제사를 드리며 율법 지킴으로 자신을 의롭다고 자랑하여 사람들의 높임과 존경과 부러움을 한 몸에 지니고 의인의 행세를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너희는 미친 광인과 같이 벌거벗어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썩어빠진 무덤과 방불한 존재이며, 쇠사슬로 묶어놓아도 감당이 안 되는 목이 굳은 끈질긴 마귀라는 뜻이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을 향하여 저주의 말씀을 던진 것이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 23:33).
그리고 너희는 매일 씻는 정결 의식을 행하여 깨끗하다고 하지만 실상은 부정한 돼지와 방불한 존재임을 보여주시기 위해 그 광인 안에 있는 그 많은 귀신들을 돼지 안에 몰아넣고 그 2천 마리의 돼지 떼들을 물에 직사 시킴으로 이들의 결국은 멸망의 심판이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셨다. 광인 안에 그 수많은 귀신들이 나와 2천 마리의 돼지 떼에 들어가게 하신 것은 그들의 마음 상태가 노아 홍수 때와 소돔과 고모라의 때보다 더 악하여 더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경고의 선포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마 10:15). 그래서 세례요한도 그들을 가리켜 독사의 자식들아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너희에게 임박한 하나님의 진노를 더는 피할 수가 없다고 외친 것이다 (마 3: 7-10).
하지만 창세전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비록 이 세상에서 잠시 마귀의 세간이 되어 마귀의 종으로 살고 있었지만, 주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마귀를 결박하고 우리를 마귀의 세간에서 구출해 내셨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셨다.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마 12: 29).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요일 3:8). 그렇게 마귀의 세간으로 사는 우리를 구출하시기 위해,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해, 그분이 친히 이 마귀의 세상에 내려오셔서 그 마귀를 결박하고 멸하셔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출하셔서 우리의 주가 되셔서 우리의 모든 삶을 주관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주인이 되신 것이다.
이제 구원받은 성도는 반드시 성령의 검에 의해 마귀의 세간이 부서지고 마귀의 습성들이 털리고 짤려나가게 됨으로 아픔과 고통과 죽음을 겪게 된다. 하지만 내 눈이 되고 팔 다리가 되어 나를 주장한 그 마귀의 습성이 하나하나 짤려 나갈 때 주님은 나에게 ‘유익한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내 피가 되고 살이 되어버린 눈이 뽑히고 팔다리가 짤려나가 내 옛 사람이 반드시 세상을 향해 철저히 죽어야 만이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으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신부로 잉태되는 천국이 내 안에 임하기 때문이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 (막 9:43). 그 그림이 바로 세상 애급에서 탈출하여 광야에서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에 입성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이며, 또한 우리 전 인생에서 겪어내게 되는 모습이다.
그러므로 이제 구원받은 성도는 더는 자신을 위한 마귀의 세간으로 살 수가 없다. 마귀의 세간으로 살던 내 옛 사람은 예수의 육체와 함께 십자가에 못을 박아 영원히 죽고, 그리스도의 영으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신부로 새롭게 탄생하여 주셨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제 예수그리스도의 생명력으로 사는 신부로, 아버지의 아들로 새로운 피조물로 탄생된 자들이다.
골 1:13~14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 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와 십자가 은혜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저주에서 건지심을 받게 되는 구원의 이야기를 질병이 치유되는 것으로, 귀신이 쫓겨 나가는 것으로 알기 쉽게 설명해 주신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은혜의 법칙에 도전하여 티끌의 존재가 감히 자신들의 죄 된 행위로 귀신을 쫓아냈다고 깨끗한 자로 의로운 자로 둔갑하여 우월감을 누리며 자신들의 의를 내세워 하나님의 은혜에 흠집을 내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표적을 보여 달라는 바리새인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보여줄 표적은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 (마 12:39)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요나의 표적이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죽으심으로 그분의 보혈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씻김을 받아 영원히 사하여지고, 마귀의 세간에서 영원히 풀려나와 자유와 생명을 얻게 되는 십자가 구원 성취이다. 오직 그분만이 마귀의 세력을 물리칠 수도 멸하실 수도 있는 능력의 주 이시며 심판 주 이시다. 우리는 그 구속사에 아무것도 기여한 것 없이 오직 그분의 택함을 받았다는 은혜로 말미암아 마귀의 세간에서 구원받은 것뿐이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요일 3:8). 예수님이 행하신 십자가 구원의 표적은 오직 창세전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게만 해당되는 생명이 임하는 능력의 기적이다. 절대로 이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육신의 욕망과 탐심을 채워주는 기적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 (마 12:39)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는 오직 자기 부인의 십자가 삶과 하나님의 은혜의 법칙에 의해 운영되는 나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전제조건은 먼저 마귀의 습성으로 살던 내 육적 자아가 죽는 십자가의 삶이다. 그 십자가의 삶에서 나는 완전히 부인되고 마귀의 종으로 살던 내 옛 사람이 죽는 죽음을 통과하게 된다. 그래야 만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새로운 피조물 즉 하나님의 아들로, 예수그리스도의 신부로 태어나 하늘의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그 첫 시작이 바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깨달음이다. 즉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으며, 왜 이 죽음의 죄악 속에 던져져 있으며, 그러한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그리스도의 영생에 대한 깨달음과 우리에게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알아가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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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청년: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0) | 2019.06.21 |
탕자와 기독교의 회개란? (0) | 2019.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