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 그가 또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시니라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20:10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20:11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몹시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20:12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이 종도 상하게 하고 내쫓은지라
20:13 포도원 주인이 이르되 어찌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혹 그는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20:14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20:15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20:16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20:17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20:18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20:19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에서 청자는 누구보다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법을 목숨으로 지켜온 진지한 삶을 살았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이 비유를 던진 것은 그렇게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며 행위로 의롭다고 자칭하는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죽이고 결국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메시아 예수그리스도까지 죽이는 포악한 자들이라는 것을 폭로하기 위함이었다.
주님은 율법주의 대표인 바리새인과 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열심히 쌓아올린 율법적 행위와 공로를 전면 부정하셨다. 이들은 공로와 업적들을 쌓아서 자신들의 의를 세워 영광을 갈취하려는 가증한 욕구를 교묘하게 감추고, 죄를 인정하고 구원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라고 주신 선한 율법마저 이용하여 자신들의 추악한 탐심을 정당화시키며, 하나님을 섬기는 의로운 선민으로 가장하여 사람들의 칭송을 받고 있었다. 그렇게 교활한 외식으로 하나님마저 자신들의 욕구를 채우는 신으로 모셔놓고 열심히 종교행위를 벌이는 그들의 악한 마귀의 본성을 폭로하시고 부시고 저주의 욕설을 퍼부은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에게 무슨 권세로 이런 말을 하느냐고 물은 것이고 (눅 20:1-2), 그 묻는 권세에 대한 대답이 바로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이다. 그리고 주님은 자신이 이 땅에 내려오셔서 행하신 권세는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권세이며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권세라고 대답하신다 (요 10:17-18).
예수님은 구약 이사야서 (5:1-7)를 인용하여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악한 속내를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로 폭로하신다.
사 5:1-3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사 5:5-6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악한 농부의 비유에서, 한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에게 주고,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눅 20:10), 그렇게 3번째 종까지 때리고 쫓아낸 것이다. 그들이 종을 때려 쫓아냈다는 것은 그들이 주인이 맺으라는 열매를 맺지 못했기에 받칠 수가 없었거나 아니면 자신들이 원하는 열매가 따로 있었기에 주인이 원하는 열매를 맺고 싶지 않았음을 뜻한다. 그래서 아예 종들을 때려 쫓아냄으로 주인의 관함에서 벗어나서 자신들이 스스로 주인의 행세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주인은 목이 굳은 패역한 농부들의 행사를 다 알고 있었음에도 굳이 자신의 독자를 들여보내신다. 아들은 자신도 그 종들과 같이 농부에게 맞거나 능욕당하거나 죽을 것임을 알면서도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홀로 그 악한 농부들 속에 들어간 것이고 그 악한 농부들은 서슴없이 주인의 독자마저 죽여버린 것이다.
이 비유에서 주님은 너 회가 바로 그 악한 농부들이며, 자신이 바로 그들이 죽이려 하는 주인의 아들임을 비유로 말씀하여 그들의 극지에 도달한 악행을 미리 폭로하여 주신 것이다. 주님은 그렇게 주인의 독자마저 때려죽인 패역한 농부들을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고 다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물으신다. 그리고 그 대답은 곧 심판이다.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눅 20:16). 즉 그 악한 포도원 농부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진멸하시고, 그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신다는 말씀이다. 두 번의 기회가 없이 ‘가루로 만들어 흘려버리는’ (눅 20:18) 영원한 심판을 선고하신 것이다.
주님에게 “당신이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세를 준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눅 20: 2)라고 묻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이 비유를 답으로 주신 것은, 그들의 악한 외식을 폭로하기 위함이며, 그들의 악한 죄악을 심판하는 권세를 가진 이가 바로 예수님 자신이심을 확실히 알리기 위함이며, 그리고 하늘의 권세가 어떤 것인가를 확실하게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이 주시는 권세는, 하늘나라의 권세까지 내려놓고, 하나님 아버지에게 향한 순종으로 오직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자신을 철저히 부인하는 십자가의 죽음이 바로 하늘나라의 권세이며 능력이라는 말씀이다. 곧바로 너 회들이 때려죽인 그 아들이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하늘의 권세로 다시 부활하셔서 너 회를 심판하는 주가 되셔 너 회를 심판하게 되는 그 권세임을 제시하신 것이다. 즉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주님이 자신의 권세로 다시 부활하셔서 패역한 그들에게는 심판으로, 당신의 택함 백성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입혀주시는 그 십자가 구원의 권세와 부활의 권세를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자신이 바로 사망과 생명의 권세자라고 확실히 밝힌 것이다.
요 10: 17- 18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그리고 이 비유 마지막 부분에 주님은 그들이 죽인 아들, 즉 건축 자들의 버린 돌을 모퉁이 돌로 삼아 새로운 포도원을 건설하는 것으로 결론은 주신 것이다.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눅 20:17). 주님은 자신을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 묘사하고 있다. 즉 하나님이 보내주신 예수그리스도라는 모퉁이 돌로 성전을 짓지 않고, 반대로 자신들을 모퉁이 돌로 삼아 자신들이 원하는 세상 집을 짓기 위해 예수그리스도라는 모퉁이 돌을 성전 밖으로 던져 버리더라는 말씀이다. 저마다 하나님처럼 살겠다고 나선 인간들은 저마다 자신을 위한 집을 짓고 있기에 절대로 주춧돌로 보내주신 예수그리스도라는 모퉁이 돌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예수라는 모퉁이 돌을 교회의 담장 밖으로 던져 버리고, 저마다 자신의 가능성과 노력과 열심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구실로 사회개혁, 구제, 봉사와 도덕과 윤리와 같은 행위의 의로움으로 교회 이름을 높이고, 저마다 나의 인기를 추구하고 자랑하는 바벨탑을 교회 안에서 공공연하게 쌓고 있다. 또한 세상에서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부패를 막는 소금의 역할로 자신을 의로운 자로 건축하라고 설교로 선동하고 격려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자신의 바벨탑을 건축하는 자에 대하여 주님은 진노의 심판을 미리 선포하여 주셨다.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눅20:18). 예수그리스도의 모퉁이 돌 위에 세워지지 않는 모든 것들을 ‘가루로 만들어 흩어서’ 흔적마저 남기지 않고 없애 버리겠다는 무서운 심판을 선포하신 것이다.
하지만 택함을 받은 성도는 영생으로 부활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라는 ‘자아’를 주춧돌로 삼아 세운 이 세상 것들이 예수라는 돌로 인해 부서지고 가루가 되는 옛 사람의 죽음을 통과하게 된다. 내 옛 사람의 죽음이 바로 영생으로 태어나는 부활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도의 죽음을 복된 죽음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성도는 반드시 예수라는 은혜의 모퉁이 돌에 의해 ‘자아’라는 바벨탑이 가루로 부서지고 오직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영원한 그리스도의 신부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새롭게 탄생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오직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만 받으신다. 그런데 진리이시며 생명이신 예수라는 은혜의 터 위에 죄인에게서 나오는 배설물 같은 것들을 올려놓으면 당연히 ‘깨지고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눅20:18) 멸망을 자초하게 된다.
성도는 이미 육체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라고 사도바울은 말씀하고 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 5:24). 그러므로 성도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는 자기 부인의 십자가 삶으로 이끌려가게 되며, 그것이 바로 성도가 지향하는 신앙생활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성도가 지향하게 되는 신앙고백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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