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의 진의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

오직 은혜 2019. 6. 19. 20:49

성도의 소망은 부활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고전 15: 17-18) 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셨으므로 나의 죄가 영원히 도말 되었음을 믿으며,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잉태시켜 주신 부활신앙으로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잠시 이 세상을 사는 자들이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 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있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벧전 1:3-4) 함과 같다.

주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 11: 25-26) 라고 자신을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선포하셨고 그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약속하셨다. 주님이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기에 부활 이후의 삶이 바로 영생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내 옛 사람이 죽고, 그와 함께 새 사람으로 부활하여 하늘나라의 영생을 추구하는 자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신부이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엡 2: 5).

그러므로 우리의 현 주소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사는 하늘나라이다. 성도는 십자가의 첫째 부활을 지니고 배움과 양육의 터로 주신 이 가시적 역사 속에서 그분의 나라에 대하여 배우며, 영원히 함께 사는 아버지와 신랑 되신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배워 아버지의 거룩한 자녀로 그리스도의 영화로운 신부로 지어져가는 삶을 살게 된다. 그 삶은 세상과 대립되는 내가 철저히 부인되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과하는 삶이며,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일에 순종하는 자로 내려가 오직 그분의 영광만을 드러내는 삶으로 정착된다.

우리는 날 때부터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요일 2: 16) 을 쫓아 육신을 갈아 먹는 이 세상의 힘과 가치와 부를 내 마음에 쌓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성령의 검으로 뚫고 들어오셔서 문둥병처럼 썩어 들어가는 것들을 잘라 내시며 영원히 썩지 아니하는 자신의 생명으로 새롭게 탄생시키는 일을 하신다. 바울이 말씀하기를,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 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고전 15: 42-45).

탐심과 오만의 악으로 끝없이 썩어짐의 배설물들을 생산해 내는 이 육신은 반드시 썩어짐의 흙으로 다시 돌아가게 됨으로 바울은 ‘썩을 것으로 심는다’는 표현을 한 것이다. 이 땅에서 육신으로 심는 온갖 쾌락과 재물과 성공과 명예와 같은 눈을 즐겁게 하는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들은 육신을 갈아 먹는 마귀의 미끼로 모든 인간은 마귀의 먹거리로 정해져 있다. 그래서 처음부터 하나님은 마귀에게“너는 종신토록 흙을 먹고 산다” 라고 인간의 결국은 마귀의 먹거리라고 선포하신 것이다. 즉 인간은 결국 마귀에게 먹혀서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지게 된다. 

 

마귀의 독살에 뜯겨 곰아가고 썩어져 가고 있음에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이 세상 사람들이 바로 영적 문둥병 환자이며, 자가면역 질환에 걸린 자들이다. 그러나 성도는 문둥병 환자가 아니다. 그 고통을 느끼고 그 살점이 떨어져 나갈 때 하나님의 구원을 갈망하며, 하루속히 옛 사람이 죽기를 소원하며, 썩어 짐에서 벗어나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새 사람으로 부활하기를 학수고대한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 6:8) 함과 같다.

창세기 3장에서 첫 인간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곧 바로 행한 일이 바로 육신의 눈이 밝아져서 자기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는 주체가 된 것이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아담과 하와에게 옷을 입혀주지 않으셨다.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것 없는 그 투명한 상태가 ‘심히 좋았더라’의 순결한 상태이다.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그 원래의 상태가 ’선’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담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고 선하시다고 하신 그 원래의 형상을 스스로 ‘악’ 이며 수치라고 판단하고, 스스로 무화과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어서 하체를 가린 것이다. 하나님이 ‘선’으로 주신 것을 ‘악’으로 인식하여 자기 힘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덮어 감추려는 시도였다. 즉 인간이 선악구조의 주체가 되어 하나님의 자리를 꿰차고 자신들의 선악구조로 진리이신 하나님의 ‘선’ 을 둘로 쪼개서 ‘악’으로 판단하는 비 진리의 주체가 된 것이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그 영이 죽고, 세상에 대해서는 왕으로 군림하려는 육체가 된 것이다. 즉 하나님의 선은 죽이고 육체의 욕심을 추구하는 악의 조성자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육체의 욕심을 따라 하나님이 선하시다고 하신 동생 아벨을 죽이는 가인의 살인 사건이 곧 바로 등장한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마귀의 본성을 따라 살인자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구원자이신 진리의 생명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자신들의 선악구조로 ‘악’이라 판단하고 ‘죄인’이라 정죄하여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여 버리는, 하나님마저 살인하는 악행까지 가더라는 것이다. 때문에 주님은 그들을 향하여 마귀의 자식이라 하시고,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자였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요 8: 44).

그러므로 죄악으로 차 있는 이 저주의 세상에서 추구하는 성공은, 다른 이를 짓밟고 죽여야 자신이 왕으로 군림할 수 있는 전쟁의 연속이기에 이 세상에서의 성공은 성공이 아니라 더 큰 저주와 멸망의 촉구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사악함이 세상에 가득 차게 되자 첫 심판으로 온 인류를 홍수로 쓸어 버리신 것이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 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창 6: 5-7).

이와 같이 우리는 본래 오직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악한 존재로서 심판과 진노의 멸망으로 정해진 자들이다. 오직 그분의 선택으로 은혜로 말미암아 악을 도모하던 육신의 옛 사람은 영원히 죽어 장사 지내고, 예수그리스도의 거룩한 영으로 부활한 영생을 사는 하나님의 귀한 자녀가 된 것이다.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창조되어가는 것이 바로 이 땅에서 완성되어가는 부활 신앙이다. 하박국에서,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감람나무 소출이 모두 없어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참된 성도의 고백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이와 같이 성도는 없어도 가난해도 아파도 망해도 그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그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게 되며, 이 모든 것은 합력하여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기 위함이며, 영원한 부활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됨으로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함께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라는 확실한 부할 신앙을 고백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