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 (7)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태복음 5:8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주님이 주신 산상수훈의 내용은 모두 창세전 복받기로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적용되는 영생에 관한 복음이다. 즉 영생의 복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필연적인 삶으로 나타나게 되는 지향적 신앙 핵심이다. 영생의 복을 받은 하나님 자녀가 추구하게 되고 살아가게 되는 삶이란 바로 자기 부인과 자기 죽음의 십자가 삶이며, 그 삶은 심령의 가난과 애통과 온유와 의에 주리고 목마름의 삶이며, 긍휼함과 마음이 청결한 자로 화평케하는 자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게 되는 자의 삶으로 이끌려가게 되며, 오직 그들만이 천국의 백성으로 위로를 받으며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주님이 말씀하시는 팔복은 이미 택함을 받은 당신의 백성에게만 임하게 되는 복음이다. 즉 ‘율법의 시대’, ‘제사의 시대’, ‘내 옛사람 죄인’이 끝나는 마침의 선포이며, 이제 ‘은혜의 시대’ ‘성령의 시대’ ‘새사람 의인의 시대’가 도래된 엄청난 복음의 선포이다. 즉 율법의 산, 내 옛사람의 장막이 무너지고, 새 생명, 새 피조물의 창조가 선포되는 산상수훈이다.
‘청결’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청결이며 성령으로 거듭남을 가리킨다.
청결의 사전적 의미는 티 없이 맑고 정직하며 사특함이 없는 선한 마음 상태를 말하지만,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청결’은 오직 청결의 근본이시며 당사자이신 점도 흠도 없으신 오직 한 분이신 예수그리스도이시며(벧전 1:19),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막 10:18)라고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성도를 ‘청결한 자’라고 불러주시는 이유는 청결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도가 그리스도의 신부로 하나의 연합으로 영생을 사는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사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과 영생을 주시기로 섭리하셨으므로 우리 안에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의만을 담은 흠이 없는 청결한 마음을 주시기로 정하셨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즉 하나님의 의와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우리를 택하시고, 예수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청결한 마음으로 그분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는 말씀이다. 육이 이 세상에 내려오기 전에 우리의 영이 이미 예수그리스도 안에 청결한 마음으로 하나로 있었다는 말씀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며(요 15:19) 하나님께 속한 자(요일 4:4)라고 확실히 밝혀주셨다.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당연히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따라 마음이 청결한 자이며,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가 된 자들이기에 당연히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만을 의존하며 아버지의 손을 잡고 동행하는 삶을 살기 때문에 그 하나 된 연합의 관계를 ‘하나님 아버지를 본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영으로 거듭나지 못한 자는 그리스도와 분리된 죄인의 상태이며, 이 세상에 속한 마귀의 자녀이기에 그들은 마귀를 ‘아비’로 보게 됨으로 주님은 그들을 가리켜 ‘너희 아비는 마귀다’ ‘너희는 독사의 새끼’라고 확실히 분리시키셨다.
그러므로 마음의 청결은 바로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난 그리스도의 마음을 담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신부들을 가리킨다. 성령의 거듭남은 바로 죄가 없으신 그리스도의 영으로 태어난 영의 사람을 말한다. 즉 그리스도께로 난 영이기에 범죄 할 수가 없으며 점도 흠도 있을 수가 없는 영생의 생명을 가리키기에, 그리스도의 영으로 난 자를 청결한 자, 의인, 신부, 천국의 아들이라고 불러주신다. 왜냐하면, 영은 죄 없는 하나님의 속성이므로 그분은 자신의 의로운 생명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죄 없는 의인으로 만들기 위하여 자신의 영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영은 죄를 짓을 수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 3:9).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1-2).
때문에 성령, 즉 그리스도의 영으로 거듭난 자는 깨끗하기에 정죄함이 없으며, ‘청결한 자’, ‘의인’이라 칭함을 받게 되며,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입혀주시는 은혜이다. 인간의 그 어떤 것도 보탬이 없는 창세전 하나님이 뜻하신 계획이며, 오직 의인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룰 수 있는 ‘의’이기에 그분 홀로 십자가를 지시고 자신의 의로운 생명으로 구원의 의를 성취하셨다. 그리고 그 성취하신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켜 주시기 위해 그분은 성령으로 친히 우리 안으로 뚫고 들어오셔서 당신의 영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탄생시켜 마음이 청결한 의인이라고 인처 주셨다.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롬 5:18). 오직 의인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으로 우리가 의인이 되었고 구원받아 생명을 얻었다. 그러므로 마음의 청결은 오직 의인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성도에게 입혀지는 은혜의 선물이지 인간의 노력으로 성화로 이루어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주님이 당신의 의로운 생명으로 십자가 구원을 성취하시고 우리를 당신의 영으로 탄생시켜주신 영생을 사는 생명이기에 점도 흠도 없는 ‘청결한 자’ ‘의로운 자’가 된 것이다. 즉 무상으로 오직 은혜로 입혀주신 복이기에 주님은 당신의 신부를 향하여 ‘복받은 마음이 청결한 자’라고 선포하여 주신 것이다. 다윗은 이 복음을 깨닫고 복이 대하여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시 51:1-10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복받은 자에 대하여 고백하기를, '나는 죄 중에 잉태되어 죄악만 생산함으로‘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는 어쩔 수 없는 죄인이지만, 주께서 꺾으신 뼈와 우슬초, 즉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내 죄악이 말갛게 씻겨 깨끗이 제하여짐으로 눈보다 흰 정결한 자로, 흠 없는 순전한 자로, 의로운 자로, 당신이 나를 여겨주심으로 내가 바로 당신의 복을 받은 자입니다' 라고 복음을 찬양하고 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32: 1-2). 이 고백이 바로 구원받은 성도의 고백이다. 우리는 죄 밖에 내놓을 것이 없는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임에도 그분이 우리의 모든 죄를 완전히 사하여 주시고, 당신의 청결한 마음을 우리에게 부어주심으로 당신의 영으로 새사람으로 태어나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된 것이며,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오직 사랑과 은혜로 입혀주신 선물이기에 그 선물을 받은 성도를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당신의 신부에게 아무 조건 없이 은혜로 입혀주시는 복이다. 그래서 바울은 다윗의 고백을 인용하여 말씀하시기를,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 4:6-8).
복은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에게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무상으로 입혀지는 죄 사함과 구원과 영생의 선물이다. 예를 들면, 다윗은 시편 51편에서 복음을 고백하기 전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간음 죄와 살인죄를 범한 죽어 마땅한 자였다. 다윗이 아무리 회개하고 아무리 의로워지려고 열심을 부려도 이미 저지른 죄악은 덮어 감출 수도 없어질 수도 없으며, 간음 죄와 살인죄로 정죄 받은 다윗을 그 누구도 깨끗한 자, 마음이 청결한 자, 의로운 자로 볼 수가 없다. 다만 율법의 심판을 받아 돌로 쳐 죽여 마땅한 죄인이다. 그런데 다윗은 시편 51편에서 자신의 모든 죄악이 사하여지고, 정결한 마음과 정직한 영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주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의 공로를 깨닫고 복음을 찬양하고 있다. 그래서 다윗은 아주 당당하게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32: 1-2)라고 자신이 바로 그렇게 복받은 자라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외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을 심령이 가난한 자로 애통하는 자로 생명의 말씀에 주리고 목마른 자로 청결한 자로, 철저한 자아인식으로 하나님 앞에 온전한 자로 진짜 복받은 자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기 위해 다윗의 범죄를 허락하신 것이다. 만약에 다윗의 밧세바 범함이 없었더라면, 다윗은 물맷돌로 불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무너뜨린 용맹한 자로, 백전백승으로 이름을 날린 용사로, 자신을 핍박하고 죽이려는 사울 왕을 두 번씩이나 복수하지 않고 살려준 의로운 자로, 회개할 것 없는 교만한 왕으로 있었을 것이며,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과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깨닫지 못하였을 것이며, 시편 51편과 같은 진리의 복음이 터져 나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사실 다윗은 자신이 그렇게 엄청난 죄를 지었음에도 선지자 나단이 와서 그 죄를 지적하기 전에 자신의 죄에 대한 의식과 죄책감이 전혀 없이 죄 없는 자처럼 잘 살고 있었다. 하나님은 다윗을 사랑하셨기에 다윗 자신의 본래 존재가치를 인식하고 깨닫게 하여 주심으로, 오직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과 자비와 사랑의 은혜를 입어야만 이 살 수 있는 하나님 의존적 존재로 순전한 의인으로 만들어 내신 것이며, 이것이 바로 복받은 자의 삶이며, 그 삶은 심령이 가난한 자로, 애통하는 자로, 구원의 의에 목마르고 굶주리는 자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로 마음이 청결한 자로 새사람을 입게 되는 성도의 지향적 삶이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거듭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함과 같이, 나라는 옛사람 죄인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기에’ 더는 내가 나를 주장할 수가 없게 된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으로 사는 영의 사람이기에 내 영은 죄를 짓을 수가 없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의 의와 영광만을 추구하는 청결한 새 마음으로 순종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비록 인간의 육은 죄의 본능을 따라 거듭난 후에도 여전히 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내 새로운 영혼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거룩함과 의로움과 선과 진리를 지향하게 된다. 그리하여 말씀하시기를,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라”(겔 11:19). 그분은 영으로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나를 성전 삼고 계시기에 끝없이 나를 도와주셔서 “유혹의 욕심을 따라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엡 4:22-23) 입는 청결한 그리스도 신부의 완성으로 이끌고 가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으로 거듭난 성도는 죄 없는 마음이 청결한, 즉 그리스도만을 마음에 담은 영의 사람이며,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내 육신의 자아가 죽는 고통과 고난으로 몸이 찢어지는 것과 같은 도살당하는 양처럼의 십자가 자기 부인과 자기 죽음의 삶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롬 8:36). 이제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 봐 되었기에’ 성도는 ‘종일 주를 위하여’ 심령이 가난한 자로, 애통하는 자로, 주리고 목마른 자로, 온유한 자로, 긍휼한 자로, 마음이 청결한 자로, 핍박을 받는 자로, ‘도살당할 양 같은’ 삶으로 끌려간다는 말씀이다. 하지만 그 어떠한 고난과 시련이 있어도 영생의 복을 입혀주시기 위하여 내 안에서 주장하는 삶이기에 반드시 겪게 되는 삶이며, 그분이 우리를 꼭 붙들고 계시기에 참고 견딜 수 있도록 인내심과 격려를 주시며, 환경을 초월하여 모든 일에 순종하는 청결한 마음을 주시며, 자기 부인의 십자가 삶으로 하늘나라를 소망하는 평강과 기쁨과 감사를 주신다. 그리하여 바울은 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일이기에 범사에 오직 감사로 기뻐하라고 격려하여 주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새 생명을 입은 청결한 자는 하늘나라로 이끌려 감을 깨닫게 됨으로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며, 진리의 말씀 속에서 그분이 진정 내 아버지가 되심을 깨닫게 되며, 그분의 의로운 인도에 자신을 부인하는 순종을 지향하게 된다.
청결은 죄인에게서 절대로 나올 수가 없다
불결한 마음이란?
마음이 불결하다는 것은, 하나님만을 담아야 하는 한 마음이 둘로 갈리어 그 마음에 하나님을 담지 못하고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신을 주장하는 온통 ‘나’로 채워진 사악한 마음 상태를 가리킨다.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라 이것은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전 9:3). 이 세상 모든 인간은 평생 나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악한 미친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결국은 죽음으로 돌아간다는 말씀이다. 인간은 본래부터 마귀의 사악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며, 그 마음이 너무나도 부패하여 하나님의 선한 법마저 이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갈취하며 자신들의 의와 가치와 존재성을 챙겨 이 세상에서 왕으로 군립하기 위하여 하나님마저 살해하는 최악으로 창조주의 대적자로 서더라는 것이다. 때문에 인간은 절대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자기 부인으로 '없음'으로 내려가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의만을 나타내는 삶을 살려고 하지않는다. 이것이 바로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불결한 마음이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며, 진리의 말씀을 대적하는 마음이 불결한 자들을 하나님은 마귀의 정욕대로 행하여 죽음으로 멸망하도록 놔두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롬 1:24). 이들은 처음부터 진리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들이며, 자신의 의를 세워 하나님의 영광을 갈취하는 사악한 마음의 소욕대로 행하며,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롬 1:25)는 자들이다. 즉 인간은 그 안에 나가 주인으로 들어가 나 자신을 숭배하고 있기에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며, 오직 나라는 존재의 확장으로 자신의 유익과 이름을 높이는 데에 마음이 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상실한 마음대로’ 즉 더러운 마음 상태로 두심으로 그 부패로 스스로 멸망하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즉 죄인으로 태어난 부패한 마음은 아예 없음의 티끌로 다시 돌아가는 ‘사망’으로 삭제하시기로 정해 놓으셨다는 것이다.
성경은 모든 인간은 죄인이기에 의인이 없다고 단정을 내리고 있다. 죄인의 마음은 죄로 차 있기에 당연히 죄인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은 다 더러운 죄일 뿐이다.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 싫어하는, 즉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자에 대하여 바울은 이렇게 진술하고 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롬 1:29-31). 이것이 바로 불결한 마음을 가진 죄인의 실존이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마음에서 절대로 선한 것이나 깨끗한 것이 나올 수가 없다는 증거이다.
그리하여 예레미아는 이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것이 바로 죄인의 마음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렘 17:9). 바울은 인간의 마음은 열린 무덤과 같으며 저주와 독사의 독이 가득하기에 절대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깨끗함이 나올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주님은 사람이 더러운 것은, 밖으로 들어가는 요소 때문이 아니라, 바로 부정한 마음의 근본에서 나오는 더러운 것들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마 15:19-20). 이와 같이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의 마음에서는 절대로 청결, 선, 의, 자비, 긍휼, 사랑과 같은 하나님의 성품들이 나올 수가 없음으로 바울은 모든 인간은 죄와 허물로 죽었다고 (엡 2:1) 표현하고 있다.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3: 10-12).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들의 패역한 마음을 들여다보고 죄가 얼마나 악하고 더러운 지를 깨달으라고, 그리고 자신이 바로 그렇게 패역한 죄인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의와 은혜를 입어 구원을 받으라고 선하고 의로운 율법을 주셨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의 선한 율법을 악용하여 열심히 지키고 행하여 도리어 자신들의 가치와 자존감을 챙겨 하나님 앞에 자신을 의로운 자로 깨끗한 자로 힘써 세워 하나님의 은혜를 망령되게 하더라는 것이다.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분명 율법은 “죄와 사망의 법”(롬 8:2)이기에 율법의 행위로는 의로운 자가 없다고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음에도 그 죄와 사망의 율법을 지켜 행하여 자신들의 죄 된 의를 세워 스스로 죄와 사망을 자초하더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의는 하나님 앞에서는 죽은 시체의 행실이기에 ‘더러운 걸레이며, 먼지이며, 초개이며, 회칠한 무덤이며, 배설물’임을 성경은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인간의 옛 마음은 타고나면서 사악하고 심히 부패하고 더럽기에 마귀의 탐심이라고 부르며,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과 행위들을 ‘마귀의 행사’라고 부르며, 마귀가 주는 마음을 성경은 거만한 마음 (잠 16:18), 계교를 꾀하는 마음 (잠 6:18), 교만한 마음 (사 9:9), 대적들의 마음 (시 105:25), 멸시하는 마음 (겔 25:15), 사악한 마음 (시 101:4), 악인의 마음 (잠 10:20), 완악한 마음 (사 9:9), 음란한 마음 (겔 6:9), 허탄한 마음 (사 44:20)이라고 부르며, 때문에 인간을 ‘마귀의 종’ ‘마귀의 자식’ ‘독사의 새끼’라고 부르고 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더럽고 패역한 마음은 세상을 향하여서는 살아있으나 하나님을 향하여서는 죄와 허물로 죽은 마음이다. 하나님만이 선하시며 의로우시며 거룩하시며 영생의 진리 이심을 들어내어 나타내시기 위해 처음부터 인간을 티끌로 만드심으로 인간의 존재가치가 바로 ‘없음’임을 제시하시고,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어 두셨으며’(갈 3:22),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롬 11:32)이라고 바울은 진술하고 있다. 때문에 죄인을 변화시키고 발전시켜 성화로 마음을 깨끗게 하는 인간 행위를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인으로 태어난 마귀의 탐심과 욕망의 마음 뿌리는 육신의 죽음으로 ‘없음’으로 삭제하신다. 그리고 오직 당신의 택한 백성만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셔서 점도 흠도 없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청결한 마음을 담은 새사람, 즉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신부, 하늘의 존재로 탄생하게 하신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
이와 같이 내 옛사람 죄인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그리스도의 영으로 잉태된 새사람은 그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기에 청결이다.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롬 6:6-7).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롬 6:11).
그러므로 주님이 말씀하시는 청결한 마음은 절대로 인간이 열심히 닦아서 성화로 청결하게 되는 행위의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님을 확실히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죄 아래 가두어 두셨기에(갈 3:22) 죄인에게서는 절대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선과 의가 나올 수 없다고 성경 전체가 이를 증거하고 있다. 즉 인간의 마음은 처음부터 모태 중에서 죄인의 마음으로 형성되고 죄인의 마음으로 태어나 죄만을 생산해내는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임을 나타내기 위해 티끌로 ‘없음’의 존재로 만드시고, 선악과를 물고 죄인으로 살게 하셨으며, 죄가 무엇이며, 왜 인간은 하나님의 의와 영광에 도달할 수가 없으며, 구원자가 필요한지를 깨달으라고 율법을 주신 것이다. 즉 처음부터 인간을 청결한 마음으로 만드시지 않으셨기에 청결한 마음을 만들기 위한 성화를 요구하시지 않으신다. 죄인이기 때문에 그 어떤 조건도 대가도 요구할 수가 없으며, 열심과 노력과 공로 같은 죄인에게서 나오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은 받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인간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들은 근본적으로 심히 더럽고 부패한 마음의 뿌리에서 나오는 것들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는 배설물, 더러운 걸레, 진토, 먼지, 열린 무덤과 같은 것들이며 절대로 용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렇게 율법을 지켜 청결한 마음으로 의인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열심히 성화의 길을 가고 있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주님은 독사의 새끼, 마귀의 탐심으로 행하는 마귀의 자식, 외식하는 자, 돈을 좋아하는 부자. 회칠한 무덤, 사악한 자, 악독이 가득한 자라고 저주하신 것이다. 이들은 죄의 근본, 즉 죄의 뿌리가 바로 인간의 마음임을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할 수 있다고 열심히 죄악된 행위로 자신을 정결한 자로, 의로운 자로 자칭하는 마음이 교만한 자를 하나님은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벧전 5:5),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약 4:6).
만약에 조금이라도 청결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도를 닦는 자가 하나님을 본다고 한다면, 그렇게 목숨 걸고 율법을 지켜 행하여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바리새인의 의를 주님은 칭찬하셨을 것이고 그들을 우리 성도의 모델로 세워주셨을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20)라고 율법의 의로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음을 말씀하셨다. 주님이 말씀하신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란 바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성취하신 구원의 의를 가리킨다. 죄인은 바리새인들이 행하는 의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원의 의를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라고 바울은 말씀하고 있다. 그리하여 주님은 그렇게 목숨 걸고 율법과 제사를 지키며 죄를 억제하기 위해 마음을 수련하여 청결한 자로 자칭하며 공로와 업적들을 쌓아서 구원의 의에 도달하려고 하는 이들을 향하여 독사의 새끼, 마귀의 자식, 회칠한 무덤, 외식하는 지옥의 자식들이라고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하셨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 23:33). 왜냐하면 이들의 죄악된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이 바로 외식이며 불법이며 탐욕과 방탕이며 썩은 무덤에서 나오는 것들이기 때문이라고 주님은 확실히 지적하시고 있다:
마 23: 13-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 23:23-28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성경 전체는 모든 인간은 부패하고 더러운 마음을 가진 사악하고 거짓된 존재로 ‘죄와 허물로 죽은 자’라고 부르고 있다. 인간은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 절대로 선 한자가 될 수 없으며, 자신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할 수가 없다. 이 세상에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것을 증명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어 두셨으며, 그 이유는 예수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생명이요, 진리이요, 영생임을 제시하시기 위함이며, 십자가 구원 성취로 하나님의 의와 선과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정해놓으심에 인정하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용서와 구원의 의를 구하지도 아니하고, 도리어 자신의 노력과 힘과 열심으로 의인이 되겠다고 한다면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는 자이며 하나님의 구원사역과 은혜에 반기를 드는 멸망의 자식들이며 독사들이다.
사도바울의 고백
사도 바울은 율법으로 의인이 될 수 있다고 굳게 믿었고, 목숨을 걸고 지키고 행하여 ‘나, 바울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빌 3:6)라고 당당하게 자고 하던 사람이었다. 바울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식하지 못하였고,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일에 집착하여 자신을 의로운 자, 깨끗한 자로 세우는데 목숨을 걸었다. 하지만 그가 집착한 율법의 의, 즉 행위의 의는 그를 청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아는 의인으로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반대로 마음이 더욱 간퍅하고 사악하여 진리를 거슬러 구원과 생명으로 오신 메시아 예수그리스도를 율법의 의로 핍박하고,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사신 교회를 박해하는 원수로 하나님의 대적자가 된 것이다. 이런 바울을 어떻게 청결한 자, 의로운 자라고 불러줄 수가 있겠으며, 이런 원수를 어떻게 복음의 선구자로 쓰실 수가 있단 말인가. 이는 오직 하나님께서 먼저 그를 찾아가 주셔서 은혜를 입혀주셨기에 그의 죄가 용서되고, 옛 죄인을 벗고,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났기에 마음이 청결한 자, 진정한 의로운 자로 거듭나 오직 십자가 구원만을 선포하는 복음의 선구자가 된 것이다.
바울은 복음을 깨닫게 되자 자신이 목숨으로 고수하던 율법으로는 절대로 구원과 생명이 없음을 인식함으로,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갈 2:19)라고 자신은 율법에 의해 죽은 자라고 진의를 깨달은 것이다. 즉 율법으로 살았다고 한 그가 이제 율법에 의해서 죽고,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의 사람으로 탄생됨을 깨달은 것이다.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20).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 3:28)라고 우리에게 진리를 말해주는 진리가 된 것이다. 바울 자신의 고백처럼 사울이 바울이 되어 완전히 예수에게 잡힌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와 하나님의 믿음 때문이다.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9-10).
사도바울이 복음에 붙들린 자가 된 후, 처음에는 자신을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께서 친히 세워주신 ‘사도’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한다. 그 후, 그의 자아인식이 점차적으로 ‘성도 중에 가장 작은 자’, 즉 성도라고 부르기도 감당치 못하는 자로 내려가고, 나중에는 자신을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로 지극히 부족한 자로 자신을 낮추게 되며, 말년에 그의 신앙 여정이 다하여 성숙한 신앙인으로 설 때 그에게 터져 나오는 자아인식이 바로 ‘나는 죄인 중의 괴수’라는 철두철미한 자각이다. 바울은 신앙 여정에서 자신이 성장하고 성화되어 청결한 마음을 가진 의인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리의 말씀이 그를 철저히 해부하는 예리한 칼이 되어 그의 ‘혼과 영과 골수와 관절와 뼛속까지 찔러 쪼개어(히 4:12) 죄인 중의 괴수로 풀어내어 폭로하더라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속 깊이 숨겨져 있는 죄악된 뿌리에서 끊임없이 솟아 나오는 죄악들을 떨쳐 버릴 수가 없음을 깨닫고, ‘내가 바로 죄의 조성자로 죄 만을 생산하는 불가능한 존재’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투명하게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진심으로 한탄하여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롬 7:19-20). 내 육신 속에 절대로 선한 것이 없음을 깨닫는 이 진실 된 고백이 바로 현재 우리 성도가 겪고 있는 고백이며, 오로지 나만을 위한 죄의 법에 잡혀있는(롬 7:23) 육적 현실이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지체 속에 선과 악이 함께 대적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그것 때문에 애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내 속사람, 영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기뻐하지만 내 육신 속에 뿌리박고 있는 죄의 욕망이 끝없이 그를 괴롭히고 있기에 바울은 자신의 육적 욕망을 ‘사망의 몸’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그 죽은 시체에서 나오는 행위가 너무나 악하기에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도바울이 마지막 죽음을 앞두고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 바로 처음 시작부터 마지막 끝까지 죄인은 오로지 은혜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십자가 공로만 의지하는 철저한 자기 부인이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 15:1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사도바울은 자신이 믿음의 경지에 이른 것은 자신의 노력과 행위의 의로움과 공로와 업적으로 된 것이 아니라, 바로 철두철미한 자각과 해부를 통하여 세밀하게 들여다보게 되는 죄에 대한 자각과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한 철저한 부정임을 깨달은 것이다. 즉 자신의 마음을 주장하는 이는 자신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이심을 깨닫는 자기 부인의 항복이다. 그는 아무리 청결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고 열심을 부려도 어떤 법이 그의 마음을 계속 더럽히고 있으며 자신의 마음대로 마음이 고쳐지지가 않음을 깨달은 것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으며,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을 완전히 포기하고 오로지 십자가 구원의 의만을 목숨 걸고 붙드는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바울은 인간의 실존을 너무나 확실하게 깨닫게 됨으로 인간에게서 나오는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으며, 오히려 육신에서 나오는 모든 행위는 죄의 법을 섬기는 더럽고 추악한 사망의 근거들을 쌓는 “배설물”로 인식된 것이다. 모든 인간은 끊임없이 배설물을 토해내는 열린 무덤이기에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롬 3:13-15)라고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롬 3:4)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철저히 해부하는 그 투명한 애통함으로 바울이 집요하게 붙든 것은 십자가 구원의 의이다. 즉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주실 이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임을 깨닫게 됨으로 그분 앞에서 자신을 전적으로 내려놓고 그분의 이끄심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기 부인의 십자가 삶을 받아들임으로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만 알기를 원하며 오직 십자가만 자랑한다고 진리를 외치고 있다. 그분이 못 박힌 십자가만이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시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 하니” (갈 6:14). “내가 너희 중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라는 고백이 터져 나오게 된다. 이것이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진리가 된 심령의 가난한 자에게서 애통으로 터져 나오는 십자가 구원의 진리에 주리고 목마름의 호소이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고전 15:10).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주님께서 성도를 마음이 청결한 자로 불러주신 것은, 그분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기 위하여 먼저 찾아와 주셨고, 곧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청결한 자로 만들어 주실 것이며, 곧 성령으로 우리 마음 안에 뚫고 들어오셔서 자신의 영으로 새사람으로 탄생시켜 점도 흠도 없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따라 마음이 청결한 자로 인을 쳐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즉 마음의 청결은 우리 마음에 예수의 피가 뿌려짐으로 성취되는 것임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새롭게 태어난 새사람은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며, 우리 마음속에 새 영을 주셨기에(겔 11:19), 우리는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롬 6:11)로 새롭게 영의 사람으로 탄생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로 난 자이기에 하나님의 씨가 우리 안에 거함으로 죄를 지을 수가 없다(요일 3:9). 즉 우리 마음에 하나님을 담고 있기에 당연히 마음이 청결한 자이며, 그래서 우리를 그리스도를 닮은 신부, 하나님의 아들, 청결한 의인이라고 불러주시는 것이다.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마음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 9:14). 그렇게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마음이 정결케 된 자는 오직 예수의 피만을 의지하게 되는 자기 부인의 십자가 삶을 지향하게 되며, 이제는 나라는 존재에 의존하는 자가 아니라, 내 안에 영으로 와 계시는 영의 사람을 추구하며 내 마음이 오직 신랑이신 예수그리스도에게만 쏠리게 됨으로 그분의 모든 이끄심에 순종으로 나아가게 되며 십자가만 자랑하게 된다.
주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본다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모태에서부터 죄인으로 조성되었기에 부패하고 패역함으로 하나님을 볼 수가 없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것은 바로 우리의 죄 때문이라고 이사야는 말씀하여 주고 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워졌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냄이라”(사 59:2-3). 이것이 죄인의 실존이다. 우리의 죄악이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어서 하나님을 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본다고 말씀하신 것은, 그리스도의 영으로 새롭게 태어나 그리스도의 청결한 신부가 되었기에 그리스도 안에서만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말씀이다. 즉 그리스도의 청결한 마음으로 태어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의 신부이기에 영원히 함께 사는 하나로 연합을 이룬 자이기에 당연히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영광을 입게 된다.
그러므로 주님이 말씀하시는 청결한 마음은 바로 주님 자신이 십자가로 구원을 성취하여 주시고 우리 안에 뚫고 들어오셔서 당신의 영, 성령으로 잉태하여 주신 새 생명이다. 그래서 마음이 생명의 근원(잠 4:3)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 생명의 근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하여 주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요 14: 6-7)라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난 자는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보았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그러므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먼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로 택함을 받은 자들이며, 이 역사 속에서 전 인생을 통하여 옛사람의 죽음으로 세상 오물로 차있는 부패한 마음을 삭제하시고, 점도 흠도 없는 그리스도의 의의 영으로 새롭게 탄생시켜 오직 하나님만을 담은 청결한 새 마음으로 그분의 영원한 자녀와 신부가 되게 하신다. 이는 내 의지와 노력으로 죽고 살아나는 일이 아니다. 처음 시작부터 끝나는 완성의 지점까지 그분이 행하시는 일이기에 택함을 받은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속한 자는 자신이 자신을 주장하는 주인이 되어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사는 자들이기에 절대로 나를 부인하고 삭제시키는 십자가 죽음을 받아들일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오직 그분에게 속한 자만 그분을 알아보고 그분만을 바라보는 눈과 그분의 음성을 듣는 귀를 열어주신다. 그들만이 자기 부인과 자기 죽음의 십자가 삶에서 가난하자, 애통하는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온유한 자, 긍휼을 받는 자로 이끌림을 받아 마음이 청결한 자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됨으로 그들이 하나님을 보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리하여 야고보는 성도에게 이르기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약 4:8-10).
청결한 마음은 세상으로 향하여 있던 마음이 하나님에게로 한마음으로 향하여 나 중심의 삶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옮겨지며, 점차적으로 나라는 존재가치가 차압당하여 자기 부인의 자리로 내려가게 됨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 순응하게 되며, 하나님의 믿음으로 이끌려가기 때문에 자신을 온전히 맡겨드리는 신뢰로 그분의 생명력으로 살아가게 되는 완전한 의존적 존재로 그분 안에 함몰하여 하나로 연합을 이루게 된다. 이를 위하여 그분이 성령으로 내 안에 뚫고 들어오셔서 나의 모든 삶을 주장하시며, 그분이 거하실 처소를 내 안에서 완성하심으로 천국이 내 안에 임한 그 상태가 바로 청결이다. 하나님 자신이 거하실 처소이기 때문에 우리를 반드시 청결한 자로 만들어 내신다.
오직 성령의 권능에 의해 청결한 마음으로 새롭게 탄생됨을 말씀하고 있다.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겔 36:26). 육신의 굳은 마음, 즉 죄인의 마음은 죽음으로 제거하시고, 새 영으로 탄생하는 새 마음을 주신다는 말씀이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겔 11:19-20). 새 영으로 청결한 새 마음을 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가 된다는 약속이다. 하나님의 영, 성령이 우리 마음에 뚫고 들어오면 오직 나만을 위해 살던 그 옛사람의 마음은 십자가에 못을 박음으로 삭제되고, 성령으로 새사람, 하나님의 사람으로 태어나기에 그 새사람의 마음에는 오직 하나님만을 담은 마음이기에 청결이며,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이 그들의 아버지가 되는 새로운 관계를 말씀하시고 있다.
즉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피로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도말하여 주셨기에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받은 성도는 마음이 이미 청결한 자이며, 예수그리스도의 신부로 새롭게 탄생한 자이기에 의인이라 칭하여 주신다.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히 9:14). 즉 마음이 정결케 되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의 피밖에 없다. 계시록 7장 14절에 보면 큰 환란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청결한 흰 새마포 옷을 입고 있는데 그 청결은 어린 양의 피에 빨았다고 한다. 우리가 깨끗함을 입어 청결한 마음으로 탄생하여 의인이라 칭함을 받은 것은, 전적으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친히 제물이 되셔서 하나님 아버지께 받쳐지는 십자가 피 흘리심 때문이다. 그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하여져서 깨끗한 자가 된 것이며, 그분이 부활하셔서 우리를 당신의 영으로 탄생하여 주심으로 청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게 하실 것이요”(요일1:7).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벧전 1:19). 오직 점도 흠도 없으신 예수의 피만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게 하여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을 담은 순결한 마음을 주심으로 그 청결로 하나님을 본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청결한 마음을 가진 성도는 그 청결함이 그리스도의 마음이기에 그분이 내 안에서 그 청결함을 유지하도록 나를 붙들고 계시며 시작부터 완성까지 모두 그분이 행하시는 의로움이다. 때문에 그 어떠한 시험 속에서도 요동할 수가 없다. 이를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롬 8:35-39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처럼 성도는 모든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강한 능력으로 붙드심을 확실한 증거로 감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 어떠한 시험과 고난과 음침한 절망 속에 빠져있더라도 결국은 요동함이 없이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며 의지하는 자로 그분이 나를 굳게 붙들고 계시며 이것이 바로 은혜이며 복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 찌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시편 46편 1-3). 역사 속의 현실은 성도에게 땅과 바다가 흉흉하고 요동치는 환난으로 다가오고 감지된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주시기에 우리의 마음은 이 세상의 요동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만히 있어라는 것은 예수그리스도가 바로 나를 강하게 붙드시는 뿌리이시기에 요동하는 물결은 지나가게 되고 나를 삼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방주인 예수그리스도 품 안에 거하고 있기에 홍수가 세상을 삼키더라도 방주이신 예수 안에 있는 성도는 절대로 삼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한결같은 청결한 마음이며 믿음이다. 우리가 그 자리에 있으면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이 나타나게 됨으로 복받은 자이며, 그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본다는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