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으로 읽는 아버지의 마음

선악과나무에 대한 의문 ?

오직 은혜 2019. 7. 24. 09:10

 

 

“선악과나무”에 대한 의문과 논의는 끝임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왜 인간에게 선악과나무를 주셔서 죄짓게 하셨을까?

처음부터 주시지 않았더라면 애초부터 죄라는 것은 없었을 것이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며,

그곳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았겠는가?

왜 아담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죄에 빠지게 놔두셨을까?

만약 하나님께서 인간의 불순종을 아시면서도 선악과를 주시고 사단의 유혹을 허락하셨다면,

인간의 실수를 묵인하신 하나님의 책임이 더 크신 것이 아니겠는가?

만약 선악과를 따 먹은 불순종 때문에 죽음의 저주를 내리신 하나님이시라면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이러한 의문과 질문들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육의 관념에서 보면 선악과 사건은 모순되며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첫 인간인 아담이 자유선택권을 잘못 행사하여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죽음의 저주가 내려졌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또 그렇게 가르침을 받아왔다. 그래서 모든 죄의 근원과 고통의 책임이 아담에게 있다고 인식하여 왔고, 나아가서 하나님까지 원망하며 불평하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이 먼저 인간에게 자유선택권을 주셨고, 인간은 다만 그 주신 선택권을 행사하였을 뿐인데 고통과 죽음의 저주를 내리신 분이라면 그분은 사랑이 아니라 독재자이시며 심판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에 대한 그분의 사랑은 처음부터 조건적이며 인간을 공제하기 위한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의 선택과 행함에 따라 축복과 심판을 행사하시는 피동적인 하나님이 되시며, 창세전 이루어놓으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무산이 되고 만다. 왜냐하면 인간의 선택에 따라 하나님은 수시로 자신의 계획과 뜻을 바꾸셔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인간의 시각에서 선악과나무를 육으로 풀이한다면, 영이 계시하는 참된 진리를 알지 못하여 하나님의 일을 인간의 추리와 상상과 인식 속에 집어넣고 그분의 진리의 말씀을 왜곡하고 난도질하는 여러 가지 인간 신학설이 나오게 된다. 예를 들면, 영이 덥혀있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아직도 선악과나무를 다만 하나의 순종과 불순종의 시험 대상으로만 해석하고 가르치는 등 동문서답을 주고 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보편적 해석은 이렇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자유 선택권을 주셨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 자유선택을 납용하여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금지된 과실을 먹었기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저주와 죽음의 심판을 내리시게 되었다. 그 결과 세상은 온통 죄 와 고통과 질병과 그리고 죽음에 빠지게 되었다. 아담과 이브의 잘못된 선책으로 결국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하였다.” 이러한 잘못된 신학들을 다시 돌이켜 보기 위하여 먼저 육의 개념에서 선악과 나무를 해석할 때 어떠한 오해와 착오가 있게 되는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육의 개념에서 선악과나무를 풀이하는 오해

육의 관념에서 보는 선악과나무는 아담의 불순종과 잘못된 선택으로 저지른 인류 역사상 가장 비참한 비극으로 인식 되여 있다. 그리하여 신앙생활의 초점도 순종에는 축복, 불순종에는 심판이라는 율법적 신앙에 맞추고 스스로 자신들을 종으로 묶여놓고 있다. 믿음 생활이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무궁무진한 구원 계획과 참 사랑과 그분이 이루어 가시는 열심을 알고 깨닫는 일에서 진리를 소유하는 자유이다.

선악과나무는 처음부터 인간의 순종과 불순종을 시험하기 위해 주신 미끼가 아니다. 또한 인간이 선택을 잘못하여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저주와 죽음의 심판이 내려진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창세전 계획하신 뜻대로 독립적으로 당신이 쓰신 각본대로 역사를 엮어 가신다. 그분은 하나하나의 사건들을 일으켜서 점진적으로 친절하게 구체적으로 여러 가지 모형과 그림자로 당신의 나라를 보여주시고, 당신을 우리에게 알리시며, 마음으로 체험하게 하시며, 영으로 실상이 되는 증거를 주신다. 우리는 그분이 주시는 계시, 즉 성경 말씀과 성령의 가르침으로 깨닫고 이해하며 실상으로 내 안에서 구원과 생명이 이루어지는 열매를 먹게 되는 은혜를 입는 것뿐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일을 알 수 없는 것은, 인간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신학 교리와 육신으로 읽는 이 세상 지식과 원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육의 관념으로 영의 일을 판단하고 인식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결국 자기가 만든 이론에 자기모순으로 혼돈되여 자신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무지한 시각으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비평하며 마치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잘못하시고 역사를 잘못 이끌고 가시는 것같이 변론한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땅의 비천한 존재가 어찌 하늘나라에서 계획하신 그 원대한 뜻을 다 알 수 있으랴. 개미가 아무리 영리하다고 한 듯 어찌 사람의 일을 헤아릴 수가 있겠는가! 

 

그리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오직 택함을 받은 자에게만 영을 열어주어 알게 하시며 구원과 생명을 소유하게 하신다고 사도바울은 말씀해 주고 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게” (고전 2:9; 사 64:4) 정해 놓으셨으며,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 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고전 2:10-11). 그러므로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고전 2:16)라고 반문하고 있다. 때문에 인간이 육의 관념으로 선악과를 풀이하려고 하면 아래와 같은 오류들을 범하게 된다.

첫째, 만약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어 놓고 인간의 순종을 시험하기 위하여 선악과나무를 주셨다면,
인간은 하나님의 시험 대상과 희생품이지 하나로 연합되는 사랑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둘째, 만약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에서 인간이 창조주를 배신하고 사단의 말을 받아들여 죄에 빠져 죽음의 저주가 내려졌다면, 인간은 시험에서 실패하였기에 죽음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된다. 또한 하나님 자신도 인간 창조와 인간 시험에서 실패하신 분이 되며, 자신의 실수를 보상하기 위하여 독생자를 보낸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셋째, 만약 인간의 불순종을 심판하는 하나님이시라면 인간은 매일 죄를 택할 수밖에 없는 죄인으로 태어났기에 매일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됨으로 저주와 죽음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간이 죄를 택할 것을 모르셨다고 한다면, 그분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될 수가 없다.


넷째, 만약 인간의 순종에 따라 복을, 불순종에 따라 저주와 죽음의 벌을 내리시는 하나님이시라면, 그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요 구세주도 아니요 구원도 있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계속하여 죄를 짓을 수밖에 없는 나약한 육으로 태어났기에 하나님이 내리시는 벌과 죽음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의 선택과 행위에 따라 움직이시는 피동적인 하나님이 되시며, 역사는 하나님이 주체가 아니라 인간이 주체가 됨으로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지배권을 상실한 무능한 신이 되고 만다.

이와 같이 육의 차원에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상상하고 판단한다면, 하나님은 사랑이 아니라 불공평하신 분, 심판 주, 독재 주, 믿을 수 없는 변덕스러운 분이 되고 만다. 이것이 바로 그분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일이며 그분의 전지전능하신 능력을 모욕하는 일이며 이 세상 이방신으로 끌어내리려는 망령된 짓이다.

인간 창조와 구원은 만세전부터 하늘나라에서 이루어놓으신 그분의 선하신 뜻이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셨다 (옙 1: 4,5).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진 뜻이 이 역사를 통하여 펼쳐지는 두루마리이기 때문에 인간의 선택과 의지, 행위와 노력에 전혀 상관없이 오직 그분 홀로 자신의 뜻대로 역사를 주관하시며, 구원을 이루셨다. 인간의 그 어떤 요소가 전혀 섞이지 않는 완전한 사랑으로 성취하신 의로운 구원이며 은혜로 말미암아 대가와 조건 없이 우리에게 임하는 선물이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인간에게 행위로 의롭게 되는 육신을 주시지 않으셨기 때문에 인간의 행위로 쌓는 공로와 업적에 따라 혹은 인간의 선택에 따라 행사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인간을 티끌로 만드심으로 비천한 흙과 같이 부서지고 깨지고 더러워지는 즉 타락할 수밖에 없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육을 주셨다. 목적은 인간의 육을 통하여 영의 영원한 실상을 보여주시기 위함이며 그분의 의로운 구원 성취로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함이었다. 오직 그리스도 한 분의 의로운 행위로 인간의 모든 죄가 사하여 지고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복음을 주시기 위함이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롬 5:18-19).

 

한 인간이 타락함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세상에 들어온 것은 사실이다 (롬 5: 12). 하지만 하나님의 의로운 목적은 타락으로 죄와 죽음에 빠져있는 인간을 자신의 의로운 생명으로 구원하여 살리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타락으로 모든 것을 잃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타락이 궁극적으로 아버지의 긍휼과 사랑의 극치에 도달하는, 구원과 영생을 얻는 은혜에 은혜를 더한 축복이 되였고, 모든 것을 최고의 이상적으로 회복시키는 영광이 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사도바울이 정확하게 정립하기를,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롬 5:20-21).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전개되는 모든 일들은 그분께서 계획하시고 그분께서 주인공이 되시어 역사를 섭리하시는 드라마다. 선악과나무속에 숨겨져 있는 아버지의 이 위대한 구원의 진리는 학문으로 신학으로 깨닫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그분이 주시는 성령의 계시를 따라 진리의 말씀이 내 마음에 파고들어옴으로 아버지의 원대한 뜻과 사랑을 아는 하늘에 속한 지혜이다.

‘선 과 악’ 은 선악과나무 전에 이미 존재하였다

창세전 원시적 우주에는 두 가지 상반되는 영역이 있었다. 즉 하나님에게 속한 선과 사단에게 속한 악이 공존하고 있었던 사실을 전제하여 선악과를 보아야 한다. 그래야 선악과나무를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진정한 의도를 알게 될 것이다.

첫째, 천지창조와 인간 창조 전 ‘죄’의 기원은 하늘나라에서 천사들의 반역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성경은 이들을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하는 자가 되어” (계 12: 9),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었다” (벧후 2: 4)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아직 천지가 창조되기 전 우주는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에 차있었다 (창 1:2). 이는 죄의 근원이 인간이 아니라 사단이며 악을 상징하는 사단이 창조 이전에 먼저 있었음을 계시하고 있다.

둘째, 천지창조 전 우주는 온통 “어둠과 공허와 흑암”으로 덥혀있었다. 하나님은 이러한 어둠과 공허와 흑암들을 제거하시고 창조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빛을 내리셔서 이 우주의 원상태를 환히 드러내어 폭로하시고, 하나님에게 속한 것과 이 땅에 속한 것들을 구별하시고 분리시키시는 일들을 먼저 하셨다. 그리하여 그 위에 빛이 임재하게 되자 어둠이 드러나게 되고 그 어둠을 밤이라 칭하시고, 하늘과 땅을 분리시키시고, 낮과 밤을 구별하셨다. 동시에 빛의 임재로 새 생명의 창조를 개시하셨다. 만물의 창조가 빛의 임재로 시작된 것은, 만물은 빛이 있어야만이 존재라는 가치를 가지게 되며, 그분이 빛을 거두어 가시면 우주는 다시 원래의 상태인 ‘어둠과 공허와 흑암’ 으로 멸망을 고하게 될 것임을 미리 계시하여 주셨다.

 

마찬가지로 인간을 무가치한 비천한 흙으로 만드신 것은, 인간의 본체는 죽은 흙이며 그 죽은 흙에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 살아있는 인간이 되었으며, 하나님을 떠나서는 흙, 티끌이며 오직 하나님의 생명력으로만이 살 수 있음을 선악과나무를 먹게 하심으로 깨닫게 하셨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고 인간을 위한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곧바로 죄를 상징하는 선악과를 주셨다. 즉 그 선악과가 바로 이 세상의 ‘어둠과 공허와 흑암’이며, 그 선악과를 먹게 될 때 인간은 곧바로 ‘어둠과 공허와 흑암’으로 뒤덮인 저주와 죽음의 상태에 빠지게 됨을 미리 계시하신 것이다.

 

이러한 전제하에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물을 선과 악을 바탕으로 상대적으로 만드셨다. 즉 서로 반대되는 영역인 두 가지 인격체, 두 가지 특성, 두 가지 성품, 두 가지 현상, 두 가지 사물... 등 두 종류로 나뉘어 선한 것과 악한 것이 함께 공존하게 하셨다. 그리하여 먼저 빛과 어둠을 분리시키시고, 낮과 밤을 분리시키시고, 하늘과 땅을 분리시키셨다.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은 빛과 생명의 소유자이시며, 사단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데 있어서 악역으로 흑암과 죽음의 권세자로 하나님의 통치하에서 잠시 세상을 잡게 하게 하셨다. 그리하여 천지와 인간 창조 전에 하늘에서 먼저 천사의 타락이 일어났고, 그들이 하늘에서 쫓겨나 이 우주의 어둠에 갇혀있었기에 우주의 상태를 “어둠과 공허와 흑암”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 타락도 천사의 타락과 같은 문맥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저주가 내려지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계획과 뜻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모든 일들을 섭리하시며 자신의 의와 사랑과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처음부터 모든 사물을 상대적으로 분리시켜 만드시고 서로 반대로 반응하며 영향을 주며 의존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인간 창조에서 처음부터 자신의 영의 형상을 따라 영의 영원함을 주심과 동시에 육은 비천한 흙으로 만들어 처음부터 영과 육을 구별하셨다. 이에 따라 인간 마음도 선과 악으로 구별하셨다. 예를 들면, 순종과 거역, 사랑과 미움, 겸손과 교만, 성결과 부패, 지혜와 미련, 진실과 거짓, 진리와 오류... 등으로 구별되며 매일 매 순간 이러한 선과 악의 선택에서 인간은 좌절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절망과 죽음에 빠져들어 간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의 육체도 여자와 남자. 아이와 노인으로 구별하셨으며, 동물도 사나운 동물과 온순한 동물, 식물도 가지각색으로 다양하게 구분하셨다. 자연도 낮과 밤, 바다와 육지, 겨울과 여름, 산과 평지, 물과 불, 동서남북 등 자연의 상대성과 연결성은 참으로 신비스러우며 무궁무진하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주의 모든 물질을 상대적으로 반드시고 서로 반대로 반응하며 영향을 주며 의존하여 이 우주에는 선과 악이라는 두 가지 영역이 함께 공존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데(롬 8:28) 목적을 두셨기에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 1:31) 라고 하나님은 자신이 만드신 만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데 완벽하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 창조가 일어나기 전에 먼저 이 세상이 ‘어둠과 공허와 흑암’으로 뒤덮인 것을 보여주신 것은, 장차 그러한 죄악된 저주와 죽음의 세상에서 죄인이 구원을 받게 됨을 알려주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그 세심한 계획, 즉 하늘에서 이룬 묵시대로 이 땅에서 역사로 가시적으로 재현되는 것임을 말씀하여 주시고 있다.

사 46:10-11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내가 동쪽에서 사나운 날짐승을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뜻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반드시 이룰 것이요 계획하였은즉 반드시 시행하리라

그러므로 만물의 신비스러운 상반 성과 연결성의 법칙을 통하여 이 우주에는 선과 악이라는 두 가지 영역이 서로 배척하고 대적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면서 함께 공존함을 사실 그대로 보여준 것이 바로 선과 악이 한 괴실 안에 함께 있게 하신 ‘선악과 지식 나무’ 임을 계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