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마태복음 10: 5-20
10:5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10:6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10: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10:8 병든자를 고치며 죽은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10:9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 나 가지지 말고
10:10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 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 이니라
10:11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10:12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10:13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 이니라
10:1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 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
10: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10:17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10:18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하려 하심이라
10:19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때에 무슨 말 할 것을 주시리니
10: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주님은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면서 세상과 맞서 싸워 이길 방법과 무기로 전신 무장하여 가라 하지 아니하시고, 반대로 모든 것을 다 해제시키고 아무것도 가지지 말고 홀몸으로 연약하고 무력한 양으로 가라고 명하신다. 그리고 다른 길로 가지 말고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 가라”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복음은 이 세상 모든 자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택함을 받은 잠시 잃어버려진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국한되어 있으며 그들만이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은유의 말씀이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눅 19:10).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 나 가지지 말고” 라고 명하신 것은,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기에 이 세상 힘과 권력을 상징하는 은과 금과 같은 이 세상 물질을 의존하거나 구하지 말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공급하여 주시기에 육신을 위한 이 세상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는 말씀이다. 기적과 이적의 능력을 상징하는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라고 명하신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도용하여 너희 자신을 자랑하고 이름을 높여 세상으로부터 숭배를 얻어내는 그 어떤 시도도 하지 말라는 것이며, 또한 세상 사람들이 열광하는 기적과 이적들을 행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 입에서 나오는 진리의 말씀만을 전하라는 뜻이다. “두벌 옷이나 신도 가지고 가지 말라” 라고 명하신 것은, 하나님이 입혀주신 은혜의 옷 위에 세상 옷을 덧 입지 말라는 것이며, 오직 주님이 입혀주신 진리의 겉옷과 주님이 신겨주신 복음의 신발만 신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곳에 머물러 성령님이 주시는 복음의 말씀만을 전파하라는 말씀이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마10:20).
이스라엘 40년 광야 생활에서 하나님은 불기둥과 구름 기둥이 되셔서 이스라엘을 친히 인도하시고, 하늘에서 신령한 양식을 내려 먹이시며, 40년 동안 입어도 떨어지지 않는 옷을 입혀 주셨다. 바로 은혜의 옷을 상징한다. 그렇게 은혜의 겉옷을 입고 양으로 보내지는 성도의 삶이 반드시 그를 이끌고 가시는 선한 목자에게 초점이 맞추어져야 함을 주님은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양으로 자신을 우리를 기르시는 목자로 표현하신 것이다. 다윗이 영감으로 목자와 양의 관계를 시편 23편에서 정확하게 그리고 있다.
시 23:1-6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3: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23: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주님이 우리의 영원한 목자가 되셔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며”, 영원한 하늘나라의 영생을 입혀주시기에 부족함이 없으며, 다만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분의 선한 인도와 말씀에 순종하는 그분과의 동행이다.
주님은 제자들을 세상 속으로 들여보내실 때, 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을 다 빼앗아 버리고 홀몸으로 보내시면서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 하라” (마 10:16)라고 말씀하신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무력한 양으로 세상 속에 들어가게 되면 세상은 너희를 영접하고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마 10:17), 즉 세상 이리들이 너희를 핍박하여 결국 순교의 삶으로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됨으로 (마 10:17) 땅 끝까지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섭리라는 말씀이다.
그렇게 주님이 선한 목자가 되셔서 양을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삶은, 선지자들과 제자들과 사도들과 믿음의 선배들이 살아낸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의 삶이었고, 그 양의 삶을 주님이 먼저 살아 내셨으며, 우리도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 그 양의 삶을 살아가게 됨을 미리 말씀하여 주신 것이다. 즉 그렇게 양으로 세상 속에 들어가게 되면 그 삶이 어떠한가를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고 있다.
마 10:16-23
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10:17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10:18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하려 하심이라
10:19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때에 무슨 말 할 것을 주시리니
10: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10:21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10:22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0: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주님은 우리를 세상 속에 들여보내시는데 세상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사자로 범으로 전신 무장하여 주신 것이 아니다. 목자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제일 연약하고 미련한 양으로 세상 속에 들어 보내신다고 말씀하신다. 양이 이리 속에 들어가게 되면 당연히 이리에게 찢기고 뜯기고 잡아먹히게 되어 있다. 즉 한 마디로 세상과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무력하게 세상에 당하는 삶으로, 잡아먹혀 죽게 되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세상 권세를 무력하게 하는 즉 세상을 이기는 삶이며 또한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그 양의 삶으로 세상 이리에게 도살되었지만, 그들이 죽인 우리 주님이 자신의 권세로 다시 부활하셔서 우리의 주가 되셔서 우리에게 영생을 입혀주셨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은 이 세상에 하나님으로부터 양으로 보내심을 받아 양으로 세상 권세 자들인 총독들과 임금들에게 넘겨져 핍박과 매 맞음과 온갖 고난과 조롱을 다 당하시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으로 죽임을 당하셨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 하였도다” (사 53: 7).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도도 예수그리스도의 양의 삶을 본받아 세상 속에서 양으로 사는 삶을 “우리가 종일제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롬 8:36 / 시 44: 22) 라고 명백하게 제시하여 주시고 있다.
주님은 제자들을 양으로 세상 이리 속으로 들어 보내시면서 이리에게 찢기고 죽임을 당할 때 그러한 고난과 핍박과 죽음을 막아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시지 않으시고,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라는 말씀만 주셨다. 그 말은 양은 끝까지 양의 신분을 지켜내는 것이 순결이며, 그렇게 양의 자리를 고수하여 양으로 죽는 것이 바로 뱀처럼 지혜로운 것이라는 말씀이다.
‘뱀처럼 지혜로 워라’ 라는 말씀은 뱀의 지혜를 능가하여 다시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는 경고이다. 즉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저주와 죽음에 빠지게 된 것을 교훈으로 삼아, 다시는 그 뱀의 꼬임에 넘어가 양의 자리를 이탈하여 이리 와 싸우기 위해 사자로 범으로 변하는 그 어떤 시도도 능력도 기적도 구하지 말며, 그냥 그대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으로 끝까지 참고 견디어 내며 이리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 바로 뱀의 지혜를 능가하여 뱀의 유혹을 이기는 하나님의 지혜임을 미리 알려주시는 말씀이다. 즉 세상을 향하여 양으로 죽는 것이 바로 사단의 세력을 이기는 진리임을 계시하고 있다. 주님이 바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이 되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세상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여 영생의 목자가 되셔서 자신이 기르는 양에게 영생을 입혀주셨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8).
그러므로 뱀의 지혜를 능가하여 다시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뱀이 어떤 지혜로 인간을 죄에 빠지게 하였는지를 잘 파악하여야 한다. 뱀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라는 유혹으로 피조물의 자리를 이탈하여 신이 되고 싶어 하는 망상을 여주어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 먹게 함으로 죄와 죽음에 빠지게 하였다. 그러므로 이리들 속에 양으로 보내지는 제자들에게 ‘뱀같이 지혜로 워라’ 라고 말씀을 하신 것은, 다시는 아담과 하와처럼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주님이 주신 양의 자리를 이탈하지 말고 끝까지 양의 자리를 고수하라는 말씀이다. 그렇게 주님이 주신 양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것이 바로 뱀의 지혜를 능가하여 세상을 이기는 진리임을 제시하여 주신 것이다.
우리 주님이 앞서 양의 삶을 살아내시고 그 양의 삶의 결국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셨다. 그분은 양으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구원자이시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 1:29) 라고 선포하신 것이다.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님은 세상 이리에게 채찍으로 맞고 수치와 조롱을 당하셔도 자신의 전지전능의 권세와 능력으로 자신을 위한 그 어떤 기적도 능력도 행하지 아니하시고, 말 한마디 없이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으로 세상 이리에게 죽임을 당하셨다.
우리의 목자이신 그분이 먼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양으로 오셔서 먼저 세상 이리로부터 능욕과 핍박과 찢김을 당하시고 도살당하셨다. 그리고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그분이 먼저 살아내신 그 양의 삶인 십자가의 길로 이끌고 가실 것을 미리 제시하여 주셨다.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 16:24).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마 10:16).
마 5:10-12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비둘기의 순결함도 마찬가지이다. 비둘기의 첫 등장은 노아 홍수의 사건에서이다. 홍수가 끝나갈 무렵 물이 얼마나 줄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방주 안에서 노아가 첫 번째로 내어보낸 것은 까마귀였다. 그런데 까마귀는 돌아오지 않고 물 위를 날아 다녔다고 한다. 까마귀는 아직 먹이도 없고 발붙일 곳도 없는 창공에서 분명 죽은 시체를 뜯어먹고 살았기에 다시 노아에게 돌아와 노아가 주는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었음을 암시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추악한 죄를 심판하기 위해 홍수로 쓸어버린 그 썩은 저주의 시체를 까마귀가 양식으로 먹은 것이다.
반면에 비둘기는 아직 물이 많아 정착할 곳과 양식이 없을 때 저주로 죽은 썩은 고기를 먹지 않고 다시 노아에게 돌아와 노아가 주는 깨끗한 식물을 먹으면서 자신의 삶을 노아에게 맡긴 것이다. 이것이 바로 비둘기의 순결이다. 칠일 후에 두 번째로 날려 보낼 때는 금방 딴 올리브 잎을 물고 노아에게 돌아왔다. 비둘기는 노아의 뜻을 알았기에 노아가 기다리는 기쁜 소식을 전하여주는 행보였다. 그러므로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는 말씀은 이 세상이 주는 썩은 고기를 먹지 말고 오직 목자가 주는 하늘의 신령한 양식만을 먹으라는 은유의 말씀이다.
이 비유에서 주님은 서로 어울릴 수 없는 이리 와 양, 뱀과 비둘기를 들어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라고 명하여 주신 데는 이와 같은 깊은 영적 의미를 말씀해주고 있다.
먼저 양과 이리는 절대로 어울릴 수 없는 동물로서 이리는 양을 잡아먹는 포악한 동물이다. 그래서 주님은 양을 늑탈하여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는 거짓 선지자 ‘삯꾼 목자’를 ‘이리’로 묘사한 것이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 7:15). 이리는 죽어 썩어져가는 시체를 먹고사는 동물이다. 양이 이 세상 이리들 속에 들어가 살게 되면 목자로 가장한 삯꾼 이리들이 죽은 시체들을 떡으로 포장하여 끝없이 먹으라고 유혹을 던지게 되어 있다. 그때 그것을 덥석 집어먹는 까마귀가 되지 말고 오직 목자가 주시는 생명의 말씀만 먹으라는 것이 바로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라는 경고의 말씀이다.
왜냐하면 양은 오직 목자가 인도하여 주시는 푸른 초장의 풀과 시냇물을 마셔야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목자가 주는 양식은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비록 이리 속에서 살아가지만, 뱀의 지혜를 능가하여 다시는 양의 자리를 이탈하여 이리들과 맞서 싸우지도 말며, 또한 양들을 늑탈하기 위해 던져주는 썩은 고기를 먹지 말라는 은유의 말씀이다. 그래서 주님은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라는 말씀으로 오직 목자가 주시는 생명의 양식만 먹어서 순결을 지키라고 명하신 것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마태복음 4:4).
우리는 이미 탐심으로 가득 찬 죄인의 육으로 태어나 이 세상 썩은 고기에 익숙 하기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양으로 자신을 부인하고 목자만을 쫓아가는 십자가의 삶을 살아낼 수도 또한 비둘기처럼 세상을 등지는 순결한 삶을 살아 낼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주님이 친히 성령으로 우리 안에 뚫고 들어오셔서 우리의 영원한 목자가 되셔서 모든 삶에 개입하시며 인생 전체를 주관하심으로 이리 앞에서 사자로 변신하려는 모든 시도를 묵사발 내시고, 세상이 주는 썩은 고기를 덥석 물려고 하는 탐심을 버릴 수 있도록 하늘의 신령한 양식을 먹이신다. 이리 속에서 사는 성도의 삶은 고난과 시험으로 ‘매일 도살당하는 양’ (롬 8:36) 처럼 보이고 살아가게 된다는 말씀이다. 양은 그렇게 이 세상 이리에게 먹힘으로 내 옛사람이 세상을 향해 죽는 죽음을 통과하게 된다. 그때 두려워하거나 당황하지 말라고 주님은 미리 말씀하여 주신다.
마 10:17 / 19-20
10:17 저회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저회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10:19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10: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그분이 이미 성령으로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나와 함께 계시고 있기 때문에 그때 우리가 해야 할 일과 해야 할 말을 그분이 주신다는 약속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분이 모든 것을 친히 주관하여 주시기에 그분이 나와 함께 동행 하시는 그 증거 하나로 모든 것을 넉넉히 이기게 하여 주신다는 약속이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미리 말씀하여 주셨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 10:22).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성도는 연약하고 아무 힘도 없는 어리석은 양의 모습으로 세상 이리에게 보임으로 당연히 찢기게 되고 핍박과 조롱과 죽음을 당하게 됨으로 세상은 절대로 그렇게 힘없고 미련하게 보이는 아무런 볼품이 없는 연약한 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일 수도 또한 알아들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마 10:14-15) 라고 말씀하심으로 그렇게 복음을 거절하는 이 세상 사람들의 멸망을 미리 선고하셨다. 즉 주님을 증거하는 복음 전파는 절대로 세상 이리들을 설득하여 선한 양으로 전환시키는 사역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이리가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양으로 변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가 없다. 양은 양으로 태어난 삶을, 이리는 이리로 태어난 삶으로 처음부터 하나님이 이미 정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그렇게 복음을 거절하고 배척하는 이리들을 “발의 먼지”로 묘사하고 “떨어버리라”, 즉 그들은 처음부터 발에 묻은 더러운 먼지와 같은 존재이기에 그대로 멸망으로 내버려 두라는 무서운 경고이다.
하지만 그중에 복음을 영접하는 자가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그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마 10:11)라고 말씀하심으로 너희는 모든 자에게 보내진 자가 아니라, 그중에 구원받기로 선택된 잃어버려진 당신에게 속한 양을 찾아가라는 뜻이다. 그래서 주님은 한 마리 잃어버린 처음부터 당신에게 속한 양을 찾기 위해 99마리의 양은 버려둔다고 말씀하심으로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오직 당신에게 속하여 있었던 잃어버린 양을 찾아 데리고 가려고 오셨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마 15:24).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 (눅19:10).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을 세상 속에 양으로 보내시면서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10:7-8) 라고 당부하신 것이다.
주님은 모든 것을 다 해제시키고 맨몸으로 이리 속에 보내시면서 오직 진리의 복음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시고, 그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질병의 증상들이 기적과 능력을 상징하는 지팡이로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역사하시는 진리의 말씀에 의해 치유됨을 말씀해 주신다. 그래서 이 비유 앞장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전파되는 곳마다 죄와 사망의 질병에 묶여있는 자들이 저주의 증상에서 풀려나 자유와 생명을 얻게 되는 기적들로 도배되어 있다. 복음의 말씀이 전파되자 저주의 질병으로 묶여있었던 자들이 고침을 받아 소경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가 듣게 되고, 귀신이 쫓겨나가고, 문둥병 환자가 고침을 받고, 앉음뱅이가 일어나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이 모든 죄의 증상에서 풀려나와 목자이신 예수에게로 돌아오는 구원과 생명이 임하는 복음의 시대가 열리는 기적들이 일어난 것이다.
인간은 처음부터 자력으로 자신을 죄와 죽음에서 구원할 수가 없는 티끌의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 인간은 오직 티끌의 존재임을 인정하고 구원자의 긍휼과 은혜를 받아야만 이 살 수 있는 존재이다. 오직 생명을 주관하시는 생명의 근원이신 그분만이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살려낼 수가 있다. 이것이 바로 기적과 병 고침의 의도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복음 전파에 열두 제자들을 불러 동참을 시키시면서 제자들에게 당부하셨다.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 10:7-8).
주님은 그동안 목자 잃은 양들이 죄와 사망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유리하는 것을 보시고 장차 십자가의 죽음으로 그들을 살려내어 자유와 생명을 주실 것임을 설명하시기 위해 첫 사역에서 이적과 기적들을 행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마 9:35-36). 주님은 장차 제자들이 주님이 하신 사역을 그대로 본받아 잃어버려진 양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게 될 것임을 말씀하여 주셨다. 그래서 주님은 12제자들을 부르시면서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마 4:19).
하지만 이 세상 이리들은 처음부터 양이 아니기에 이리의 탐심과 야망의 삶으로 끝없는 시기와 질투, 폭력과 싸움의 연속으로 서로 잡아먹고 먹히는 전쟁의 순환으로 자기 멸망을 자초하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힘과 노력을 동원하여 자아를 건설하여 자신을 방어하며, 이 세상의 돈, 명예, 관계 등으로 자신을 신으로 구축하고 있다. 오직 창세전 선택받은 양만이 자신을 이끌고 가시는 목자만을 바라보고 따라가며, 목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는 자기 부인의 십자가 삶을 추구하며, 그분과 동행함을 최고의 기쁨과 행복으로 감지하게 된다. 성도는 이 세상 속에서 오직 목자이신 예수그리스도 안에 거하여야만이 생존할 수 있는 그 이유를 깨닫고 나에게 구원과 생명을 주시는 그분을 깊이 알아가는 일에 열심을 부리게 된다.
그렇게 진리를 배우고 터득하는 과정에서 성도는 이 역사 속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내려가기도 하고, 푸른 초장으로 이끄심을 받으며, 또한 이리들의 조롱과 핍박을 받기도 한다. 다윗이 시편 23편에서 고백한 것과 같이 성도는 그러한 광야의 시험을 겪어내고 통과하게 됨으로 더디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라’라는 진실 된 고백을 하게 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그 관계성으로 평강과 참 기쁨을 누리게 되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성도를 양으로 부르고 양의 자리를 이탈하지 말고 끝까지 양으로 있어야 만이 영생이 보장됨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뱀의 지혜를 능가하여 다시는 양의 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오직 목자만을 의지하는 양의 삶임을 명쾌하게 비유로 제시하여 주신 것이다.
10장 12절과 13절에서 주님은 “평안을 빌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단순히 그 집의 평안을 빌어주라는 말이 아니라, 구원과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그 집에 전해주라는 말씀이다. 이 세상은 온통 재물의 부와 명예와 육신의 평안만을 추구하고 찾는 자들로 가득 차 있기에 진정 예수그리스도가 주는 그 영원한 생명의 평안을 찾는 자가 아주 드물기에 많은 이들이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기에,” 그때 놀라지 말고 그들을 떠나 “너회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 (10:14-15) 라고 말씀하신다.
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 버리는 것은 유대인들이 이방인의 땅을 지나고 나서 더러운 이방인 땅의 먼지조차도 자기들의 땅에 용납을 할 수 없다는 결벽증에 가까운 종교 행위였다. 따라서 주님이 그 유대인의 결벽증 행위를 인용하여 쓰신 것은, 그렇게 율법의 행위로 깨끗하다고 자칭하고 다른 이들을 더러운 죄인이라고 정죄하는 그들이야말로 발에 묻은 더러운 먼지와 같은, 하나님으로부터 용납할 수 없는 멸망의 존재들이기에 그들에게는 복음이 허락되지 않았음을 암시하신 말씀이다.
이 세상 사람들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으로 볼 때, 유대인들의 율법 지킴과 선한 행위와 하나님에게 향한 열심은 다른 이들의 본보기이며 의인의 모범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종교 행위를 했고, 열심을 다해 구제를 했으며, 경건하고 깨끗하게 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던 사람들이다. 행위로는 회개할 것 없이 의롭다고 자칭하는 그들에게 세례요한과 주님은 ‘회개하라’라고 외친 것이다. 즉 너희들의 모든 노력과 열심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는 시도들을 버리고, 먼저 너희들의 무력함과 불가능함과 교묘하게 감추어둔 추악한 외식을 인정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너희를 구원하려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라는 말씀이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구하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이때껏 열심히 쌓아놓은 그 모든 공로와 업적들을 그들은 절대로 부정할 수도 내려놓을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 대표로 주신 비유가 바로 부자 청년의 이야기다 (막 10:17-22).
부자 청년은 어려서부터 지키고 행하여 쌓아놓은 그 공로와 업적들을 다 버리고 주님을 쫓는 길이 바로 영생이라고 제시하여 주어도, 영생을 주시는 메시아가 바로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 ‘내가 곧 영생이니 나를 따르라’ 라고 초청하여도, 그 청년은 스스로 영생을 거절하고 자신의 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멸망을 택한 것이다. 그들은 절대로 자신들의 가증한 의를 내려놓을 수도 또한 영생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는 그림이다.
그렇게 외식하는 그들의 가증함과 추악함을 한마디로 ‘훼칠한 무덤’ 이라고 부른 것이며,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고 자고 하는 그들을 향하여 ‘독사의 새끼’ ‘마귀의 자식’이라고 부른 것이며, 그들이 열심히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섬기는 그 ‘하나님’이 바로 그들의 아비 마귀라고 저주를 내리신 것이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요 8:44). 그리하여 주님은 그들에게 심판의 말씀을 주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마 10:16).
마 23: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마 23: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이와 같이 인간은 하나님의 절대적 의존으로 살아가는 존재이며,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입어야만 살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티끌로 만들어진 존재이며 타락과 죄로 죽어있는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양으로 있어 목자이신 예수그리스도만을 의지하며, 그분이 이끄시는 길만을 고집하며, 그분이 주시는 진리의 말씀을 매일의 양식으로 먹으며, 그분의 선하신 계획과 뜻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어떻게 이루어져 가는지를 열심히 배우고 깨달아 그분의 생명 안에 거하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바로 성도가 지향하게 되는 신앙생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