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와 십자가의 필연성
누가복음 13: 6-9
13:1 그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13: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13: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이와같이 망하리라
13: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13: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13: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13:7 포도원 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13:8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13:9 이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이 비유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비유 앞전에 일어난 사건부터 살펴봐야 한다.
13장 서두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갈릴리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고 있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빌라도가 그 제사를 드리고 있던 사람들을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린 것이다. 그 일로 제사를 드리고 있던 제단 위의 제물에 사람의 피가 섞여 버려진 일로 그 제사를 드린 사람들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하나님에게 저런 벌을 받는가 하는 의문을 갖고 예수님에게 온 것이다.
두 번째 사건은 예루살렘 사람들이 실로암 못가에서 공사를 하다가 실로암 망대에 깔려 죽은 사건이다. 갈릴리 사람들은 제사를 지내다가 칼에 맞아 죽고, 예루살렘 사람들은 공사를 하다가 망대에 깔려 죽은 이 두 사건으로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주님은 이 두 사건을 ‘회개’ 와 연결시켜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라고 두 번씩이나 거듭 반복하시고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그들에게 들려주신 것이다.
전혀 예상치 않았던 이 두 가지 사건의 죽음을 통하여 모든 인간의 목숨은 티끌들의 운명이며, 하나님의 은혜가 가입되지 않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존재들은 그들이 종교 행위에 열심을 부리든, 육신의 생존을 위해 열심을 부리든, 정해진 죽음 앞에서 자신을 지킬 수가 없으며, 언제 어떻게 죽을지 그 누구도 예상할 수가 없음을 말씀해 주신다. 그렇게 예상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필연성을 구하는 ‘회개’가 일어나지 않으면 절대로 자신을 구원할 수가 없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주님은 이 두 사건의 결말을 모두 ‘회개’와 연관 시키신다.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 13:5). 여기에서 ‘회개’는 이제 죄인을 심판하려 오신 예수그리스도와의 ‘화해’를 의미한다. 즉 죄와 죽음에서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죄인을 구원하려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긍휼과 은혜를 구하는 참된 ‘회개’로 하나님과의 화해를 비유로 설명하신 것이다. 그리고 죽음이 문 앞에 와닿고 있음에도 회개하지 않는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고 다시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십자가 구원의 필연성을 무화과나무의 비유로 설명해 주신 것이다.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어떤 사람이 등장한다. 포도원에는 포도를 심어야 하는데 포도원에 포도가 아닌 엉뚱한 무화과나무를 심었다는 것은, 그들이 주인을 거역하여 자기 마음대로 자기들이 원하는 나무를 심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처음 시작부터 포도밭에 포도씨를 뿌리지 않고, 엉뚱한 무화과 씨를 뿌렸기 때문에 주인이 원하는 포도를 맺지 못한 것은, 이들에게 주인이 원하는 포도씨가 없었거나, 아니면 주인의 말씀을 거역하여 자신들이 맺고 싶은 무화과나무를 심었음을 의미한다. 처음부터 잘못 심겨진 나무이지만 주인은 이들을 용서하시고, 무화과나무를 심었기에 그 열매를 기대하고 있었다. 주인은 인내하여 3년 동안이나 열매 맺기를 기다렸지만 열매를 맺지 못함으로 “찍어버리라”라는 명령을 내리신 것이다. 그런데 포도원 지기가 나서서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13:9)라고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부탁하신다. 주님은 지금 포도원에 포도를 심지 않고 무화과나무를 심은 잘못된 어울릴 수가 없는 소재에 자신을 개입시켜 십자가 구원을 설명하시고 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줄곧 포도와 무화과로 비유하심을 볼 수 있다.
호9:10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같이 하였으며 너희 열조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같이 하였거늘 저희가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의 사랑하는 우상같이 가증하여 졌도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같이’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열매 봄같이’ 사랑스럽게 보아주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려 우상과 같이 가증 해졌다고 말씀하신다. 그게 바로 하나님이 주신 포도원에 포도를 심지 않고 자신들의 탐심과 욕망으로 엉뚱한 무화과나무를 심어놓고 엉뚱한 열매를 구하는 가증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레미아를 통하여 말씀하신다.
렘 2: 21~22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찜이뇨 주 여호와 내가 말하노라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수다한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오히려
내 앞에 그저 있으리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순정한 참 종자, 귀한 포도나무’로 심으셨는데 그 포도나무가 이방의 악한 가지가 되었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귀한 포도나무가 되기를 거절하고 이방인의 악한 가지가 된 그들이 아무리 잿물로 씻고 수다한 비누로 씻어도 그들의 죄악이 하나님 앞에 낱낱이 드러나더라는 것이다. 이사야서 5장 1절 이하에도 동일한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님께서 기름진 포도원에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으시고 망대까지 세워서 최상의 환경을 만들어 주셨음에도 그들은 그 극상품 포도나무에 자신들의 욕망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들 포도, 즉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자신들의 이름과 영광을 추구하는 들포도를 맺더라는 것이다.
사 5:1-6
1:1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1: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었도다
1:3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
1:4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1:5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1”6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포도나무라 칭하시고, 친히 그들의 농부가 되셔서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으시고’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포도나무인 이스라엘이 계속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들포도만 맺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아예 포도원을 경영하지 못하도록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하고 밭을 황폐하게 하고 찔레와 가시가 나게 하고…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신다’고 심판을 선고하신 것이다.
주님은 지금 구약에서 나오는 포도나무의 말씀을 인용하여 그렇게 찔레와 가시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황폐한 포도원에 주인이 원하는 포도를 맺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자신이 죽어서 거름이 되는 십자가 구원 외에 다른 방법이 없음을 제시하고 있다. 주님은 지금 십자가 구원의 필연성을 끄집어내기 위해, 포도원에 엉뚱한 무화과나무가 심어지고, 그럼에도 길이 참으시고 3년이나 기다리신 주인의 노하심을 가로막는 포도원 지기의 약속을 비유로 말씀하시고 있다.
본문 7절에 “과원 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라고 주인이 열매 맺기를 3년간 기다렸다고 말씀하고 있다. 레위기 19: 23 에서 동일한 말씀을 하시고 있다. “너희가 그 땅에 들어가 각종 과목을 심거든 그 열매는 아직 할례받지 못한 것으로 여기되 곧 삼 년 동안 너희는 그것을 할례받지 못한 것으로 여겨 먹지 말 것이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각종 과목을 심게 하시고 삼 년 동안 나무에서 맺는 과실은 먹지 말라고 명하시는데 원인은 ‘그 열매가 아직 할례받지 못한 것으로’, 즉 3년 미만의 과실은 할례받지 못한 부정한 것이기에 먹지 말라는 말씀이다.
나무가 할례를 받아 쪼개지는 것으로 말씀하신 것은, 그 나무를 대신하여 다른 존재가 쪼개지고, 그 다른 존재의 쪼개짐의 할례로 그 나무의 실과가 온전하여진다는 은유의 말씀이다. 즉 그 과실이 온전하여 먹을 수 있는 것은 그 나무 자체의 할례로 인해서가 아니라, 어떤 이가 쪼개짐으로 그 쪼개짐의 희생으로 그 과실나무에 아무런 손상이 없이 은혜가 입혀져서 먹을 수 있는 온전한 과실로 여겨주신다는 말씀이다.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할례를 상징하고 있다. 십자가에서 그분이 쪼개지심으로 아무것도 한 것도 아무런 손상이 없이 전적으로 십자가의 공로와 은혜의 덮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죄가 영원히 도말되어 온전히 깨끗한 자가 되는 십자가 구원을 말씀하고 있다. 바로 점도 흠도 없는 의인되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쪼개지는 할례의 공로로 은혜로 입혀지는 영생의 열매이다. 그 열매가 바로 주인이 원하시는 열매이며, 그 열매는 오직 십자가의 구원 성취로 맺게 됨을 주님은 자신을 포도원 지기로 묘사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포도원 지기는 3년이 되어도 열매를 맺지 못함으로 찍어버려움을 당하여야 할 나무를 살려내기 위해 주인의 진노를 막아 나서서 변호하여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어서’(눅13:8) 열매를 맺게 하겠다고 다짐을 하신다. 여기에서 ‘거름’은 죽음을 의미한다. 예수님 자신의 십자가 죽음으로 죽은 나무를 살려내어 열매를 맺게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한 알의 밀알로 묘사하고 그 밀알이 썩어야 거름이 됨으로 말라비틀어진 나무에서 생명이 잉태되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게 되는 십자가 구원 성취를 제시하신 것이다. 그렇게 말라비틀어져 전혀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가지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의 몸에 접붙여 그분의 생명으로 살아나 열매를 맺게 되는 구원의 은혜를 가리킨다. 그렇게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그리스도에 접붙임을 받은 자들은 이제 다시는 자신들이 원하는 엉뚱한 무화과나무를 심거나 엉뚱한 들포도를 맺을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셨다:
요 15: 4-6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어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가지가 열매를 맺는 것은 전적으로 참 생명의 뿌리이신 예수그리스도에게 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라고 말씀하심으로 가지는 다만 그분이 맺은 열매를 거저 전가 받는 것뿐이라는 말씀이다. 즉 하나님이 친히 농부가 되셔서 심으시고 가끄시며, 그 나무의 뿌리는 예수그리스도이시기에 그 열매는 하나님에게 속한 열매라는 것이다. 성도는 예수그리스도에게 속한 한 몸이며 그분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존재이다. 이와 같이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죄인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죄와 사망에서 살아나서 하나님과 화해되는 참 복음을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