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의 진의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오직 은혜 2019. 6. 19. 20:57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처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이 고백은 예수님의 완전한 신성과 인성을 받아들이는 신앙고백이다. 그분은 성령으로 잉태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또한 하나님이시다. 육신으로는 우리와 똑같이 인성을 가지신 ‘인자’ 이시다.

성자 예수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몸소 죄인의 몸속까지 뚫고 들어오셨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의 신비이다. 그분은 창조주이시며 만물을 통치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그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죄인의 육신 안으로 뚫고 들어오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향한 그 구원이 얼마나 온전하시며 얼마나 위대한 사랑을 품고 있는지를 나타내기 위함이며, 참으로 인간의 상상으로는 이해될 수가 없는 능력과 기적이다.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그분의 신비와 지혜와 능력을 인간이 어찌 측량할 수 있겠는가! 그분은 그렇게도 세밀하게 완전하게 우리 인간의 모든 죄를 영원히 철저히 없애 주시기 위하여 친히 죄인의 몸속 안에까지 뚫고 들어오셨다.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 안에 뿌리박고 있는 모든 죄의 유전을 송두리째 뽑아서 자신에게 전가시킴으로 우리의 죄를 짊어진 죄인의 몸이 되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의 뿌리를 깡그리 철저히 도말하여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죄를 뒤집어쓴 육신을 십자가에서 영원히 죽게 하심으로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죄의 모든 유전이 철저히 영원히 죽어서 소멸된 것이다.

히 10: 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히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하나님이신 그분은 인간의 육신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먼저 인간과 똑같은 육신을 입고 인간으로 태어나셔야 하셨다. 인간의 육신을 입으셔야 인간을 대표하여 인간의 죄를 자신에게 전가시킬 수가 있으며, 죄를 짊어지신 육신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으로 십자가에 처형당함으로 우리를 영원히 죄와 사망에서 구원할 수가 있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 3-4).

이와 같이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율법에 의해 죄인으로 정죄당하시고, 율법의 몸으로 십자가에 못을 박으신 것이다. 하나님을 향하여서는 율법의 완성자로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시고, 우리를 향하여서는 율법을 페하여 주심으로 다시는 율법이 우리를 죄인이라 정죄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옙 2:15),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율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1-2). 이렇게 우리에게 향하신 구원은 영적인 진실과 육신적인 현실을 포함하여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전히 영원히 이루어진 것이다. 즉 육신으로는 우리의 모든 죄의 뿌리를 제거하시기 위하여 인간으로 오셔서 인간으로 십자가에서 영원히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멸하시고, 영으로는 자신의 본체이신 성령으로 잉태하셔서 우리에게 영원히 함께 사는 영생을 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죄와 전혀 상관없는 자신의 거룩한 영인 성령으로 잉태하심으로 그분 안에 있는 우리도 그분의 의의 생명, 죄가 없는 거룩한 영으로 잉태됨으로 죄가 있을 수도 죄를 짓을 수도 없는 영원한 생명을 전가 받아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신’ 것이다 (고후 5: 21). 즉 자신의 의로운 영으로 우리 안에 침투해 들어오셔서 자신의 의로운 생명의 씨를 우리 안에 심어 주심으로 자신의 영을 입은 새로운 피조물, 즉 아들로, 신부로 태어나게 하셨다. 아들, 신부로 태어났다는 것은 그 안에 예수의 생명 씨를 가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명 되신 하늘의 신랑이 이 땅의 죽음에 처해 있는 죄인의 몸 안으로 들어오심으로 죽음이 삭제되고 영원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룬 신부로 탄생시켜 주신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께로써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써 났음이라” (요 1 3:9) 함과 같다.

이와 같이 그분은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죄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버리기 위해 인간의 육신 안에 친히 들어오신 구세주이시며, 우리를 죽도록 사랑하시는 신랑이시다. 오직 그분만이 우리를 죄와 상관없는 영원한 의로운 생명으로 잉태 시킬 수가 있다. 그분은 죄와 전혀 상관없는 자신의 본체인 성령으로 오셨기에 자기 백성의 죄를 감당할 수가 있었으며, 우리도 그분의 영이신 성령으로 죄와 상관없는 의인으로 태어나 예수 안에서 하나로 연합을 이룰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잉태하사”, 이 고백은 우리도 성령으로 잉태된 하늘나라의 아들임을 믿는 고백이다. 즉 죄의 종으로 살던 육신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영원히 죽고, 내 영은 그리스도의 영, 성령으로 잉태되어 아버지의 의로운 자녀로 탄생된 것이다.

롬 6: 6-10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

음이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

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그러므로 처녀 마리아의 출산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탄생을 증거하기 위함이었다. 즉 창세기 3장 15절에서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케 하시기 위해 남자와 관계없는 처녀 마리아가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은 것이다. 세례 요한의 역할이 자신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오실 구원자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듯이, 처녀 마리아는 다만 예수님의 성육신의 탄생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쓰임을 받아 창세전 인간 구원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주도적인 구원사역을 증거하는데 도구로 쓰임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카톨릭에서 ‘성모’ 혹은 ‘동정녀’로 지칭하며 마리아의 무죄성이든가, 신이라고 까지도 주장하는 우상숭배와 같은 망령된 오류는 분별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인간의 죄적 사고와 상상으로 파악하고 판단하려는 그 시도 자체가 하나님을 인간의 수준으로 끌어 내리려는 망령된 짓이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형상으로 처녀에게서 태어나셔야만 했던 그 사실 속에서 죄인들을 구속하기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지혜와 우리에게 향하신 한없는 사랑과 전능하신 창조의 능력을 깨닫는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만일 성육신의 방법이 아닌 다른 신비로운 방법으로 구속사를 전개하셨다면, 그분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동일한 입장에서 인간의 죄를 대속할 수도, 또한 우리 인간과 한 몸이 되는 연합을 이루는 신랑이 될 수가 없을 것이며, 기독교는 예수 자체를 부정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성령에 의해 잉태되고, 처녀 마리아에게서 출생되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에게서 인간으로, 하늘에서 땅으로, 영원에서 인간의 시간 속으로 들어오신 하나님의 고귀한 지혜와 만물에 전능하신 신비로운 기적이며, 태초로부터 영원하신 사랑으로 성취하신 구속임을 증거하여 우리를 믿게 하여 구원과 영생을 입혀주시기 위함이다. 즉 죄와 사망에 처해 있는 인간을 구원하여 다시 자신의 영원한 생명으로 살려 내기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차원을 포기하시고 인간이 되셔서 이 역사 속으로 죄인의 몸 안에 뚫고 들어오신 놀라운 지혜와 사랑과 능력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자신에게 기적을 보여 달라는 무리에게 악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꾸지람 하시면서 나에게는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 라고 단호하게 오직 십자가의 죽음만이 기적이요 표적이라고 말씀하셨다 (눅 11: 28-30).

성육신은 우리에게 향한 하나님의 배려와 사랑의 기적이며 은혜이다. 즉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셔서 (요 3:16)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게 하시고, 십자가에서 죄인으로 못 박혀 죽으시게 하심으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심으로’ (롬 8: 32) 죄인에게 향한 완전한 사랑을 확증하여 주신 것이다. 자신의 의의 생명을 죄인에게 내놓은 그 고귀한 사랑을 요한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요일 4: 8-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 3: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은 모든 인류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분은 오직 창세전 선택한 자기 백성에게만 ‘성령으로 잉태되는’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의 특권을 입혀주신다. 그래서 주님은 거듭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요 17:2).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요 17: 7-8).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요 17: 9).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요 10:27).

하나님은 창세전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된 자만 자신의 거룩한 영인 성령으로 잉태케 하여 세상과 구별하여 주신다. 그리고 선택에서 제외된 자들은 역사에 끄집어 들여서 선택받은 하나님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 각자 맡은 역할을 하다가 정해진 지옥 불에 떨어지게 하신다. 처음부터 하늘의 백성과 마귀의 종을 성령의 잉태로 구별하시고, 그들의 결과를 영생과 영원한 지옥불로 분리하셨다. 그들은 분명 멸망하기 위해 창조된 그릇이었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롬 9: 39-23). 분명 하나는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 하나는 ‘영광을 받기 위한 그릇’으로 정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그분의 뜻과 계획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그분은 본체가 선이요 생명이시며 둘로 나뉠 수 없으신 ‘하나’의 통일체로 존재하시는 진리이시기에 인간처럼 선과 악이라는 구조로 둘로 쪼개는 일이 없으신 한 인격체이시다. 오직 인간만이 자기 스스로 선 과 악이라는 두 가지 구조로 모든 것을 둘로 쪼개서 인식하고 판단하고 정죄한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있어서 만물은 오직 ‘하나’의 본질을 따라 ‘선’의 통일체를 이루기 위한 진리이시기에 그분이 하시는 모든 일은 선이시며 의로우시며 공의로우시며 거룩하시며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합력하여 그분의 선을 이루시기에 합당한 일이기에 인간의 죄악된 선악구조의 사고와 판단으로 그분의 일을 예측할 수도, 의문을 가질 수도, 옳다 그르다고 판단할 수가 없다는 것이 사도 바울의 논리이다. 자신의 한 치 앞도 못 보는 죄인이 어찌 의로운 창조주의 ‘선’에 토를 달수가 있단 말인가!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잠 16: 4-5). 하나님은 모든 것을 자신의 임의대로 쓰시기 위하여 지으셨다는 것이다. 멸망으로 정해진 자가 있고, 선택된 자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 멸망에서 구원하여 주시며 은혜를 입혀 당신의 나라로 이끌고 가신다. 이것이 은혜이다. 영원한 죽음의 지옥에서 그 많은 죄인들 중에서 무조건적으로 선택받아 건지심을 받은 자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오직 기쁨과 감사뿐이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 시대에 열 왕, 열 민족이 있었고 아브라함보다 더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있었다. 그럼에도 아무런 자격과 조건을 갖추지 못한 우상신들을 만들어 장사하는 아브라함을 세상 죄인들로부터 불러내셨고, 믿음을 주셔서 하늘나라 백성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셨으며,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오직 아브라함 한 사람을 위해 열 왕과 열 민족들을 역사에 개입시키셨다. 그리고 오직 아브라함에게만 눈을 돌리시고, 관심을 쏟고 그 인생에 친히 개입하셔서 당신이 뜻하신 목표로 아브라함을 이끌고 가신 것이다. 마찬가지로 온 세상에서 하나님은 노아 한 사람에게만 은혜를 입혀주시고, 노아 한 가정만 구원하셨다. 그리고 선택에서 제외된 온 인류는 기식하는 모든 동물과 식물들과 함께 물의 심판으로 하나도 남김없이 멸망으로 쓸어버리신 것이다.

이러한 사건을 어찌 인간의 선악구조로 하나님을 악하다고 판단할 수가 있으며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그분은 처음부터 자신이 택한 백성만을 위해 선택에서 제외된 자들을 역사에 끌어들였기 때문에 그들의 역할과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이지 피조물인 인간이 스스로 자신을 주관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당신의 구원사역이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함이 아니라 창세전 아버지께서 택하여 주신 자들만을 위함이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요 17: 9).

이와 같이 하나님은 오직 자신이 선택한 자녀에게만 당신의 의로운 영으로 잉태되는 영생의 은혜를 입히시고 하늘나라로 인도하신다. 그리고 그 선택에서 제외된 모든 인간은 죽음이라는 심판의 표를 받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 잠시 이 세상에서 죄가 무엇이며, 그 죄가 얼마나 추악하며, 그 죄의 결과는 저주와 죽음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악의 역할을 하는 것뿐이다. 그리하여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음이라는 전제적인 운명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역할을 하는 것뿐이다. 언제, 어떻게, 무엇을 하다가 죽을지 그 누구도 알 수가 없다. 태어나면서 죽는 자도 있고, 태어나기도 전에 죽는 자도 있고, 꽃다운 청춘에 죽는 자도 있다.

인간은 죽음이라는 심판 앞에서 무용지물이며, 아무도 죽임이라는 운명을 피할 수 없게 함으로 인간의 생사 환난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주만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고, 오히려 오만한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롬 1:28). 그러한 자들의 갈 곳이 바로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이며 그들에게는 공평 지당한 일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온갖 악행을 서슴없이 행하게끔 내버려 두었다고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다.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롬 1: 28).

하나님의 은혜를 벗어난 선택 외의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는 존재 자체가 ‘없음’ 이라고 성경은 반복하여 말씀해주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흙에서 나왔기에 존재 자체가 없어지는 먼지이며, 그 먼지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잠시 쓰시는 도구일 뿐이다. 그들은 본래부터 ‘진토’ 와 ‘거름 더미’ (삼상 2: 8) 와 같은 없음의 존재이기에 땔감으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보라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리니 레바논은 땔감에도 부족하겠고 그 짐승들은 번제에도 부족할 것 이니라” (사 40: 15-16).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에 사는 사람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 같이 펴셨으며 거주할 천막 같이 치셨고 귀인들을 폐하시며 세상의 사사들을 헛되게 하시나니 그들은 겨우 심기고 겨우 뿌려졌으며 그 줄기가 겨우 땅에 뿌리를 박자 곧 하나님이 입김을 부시니 그들은 말라 회오리 바람에 불려 가는 초개 같도다“ (사 40: 22-24).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삼상 2: 6-7).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물 한 방울, 티끌, 먼지, 메뚜기, 초개, 거룸 더미와 같이 존재 자체가 죽어있는 상태이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삼상 2: 8). 이것이 구원받기 전 죄인들의 실체이다. 인간은 본래 “흙, 땅, 먼지” 로 지음을 받은 티끌이며, 하나님 보시기에는 진토, 거름 더미, 쓰레기와 같은 악으로 채워져 있는 더러운 존재이다. 우리가 바로 그런 쓰레기요 거름더미 와 같은 자리에서 구원 받았다고 확실히 말씀하여 주고 있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인간은 죄와 허물로 이미 죽어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엡2: 1). 그 ‘진토와 거름더미’ 중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가 있으니 그들이 바로 창세전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도 빠짐없이 보존하신다고 주님은 약속하셨다.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요 17: 12).

이와 같이 하나님이 택하신 자는 한 명도 빠짐없이 주님이 보전하시지만, 멸망의 자식은 처음부터 ‘거름 더미로 땔감으로’ 정해져 있다고 성경은 명확하게 정확하게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창세전 선택받은 하나님의 자녀만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하나님의 아들과 그리스도의 신부로 탄생되는 특권을 받아 영원히 아버지와 신랑과 함께 천국의 삶을 누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