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사하여주시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심을 믿습니다’ 이 고백은 기독교 핵심적인 고백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받았음을 믿는 죄인으로부터 의인으로 새 생명이 탄생되는 획기적인 전환이다.
우리는 본래 태중에서부터 죄인으로 잉태되었기에 죄만 생산해내는 불의 한 자이며 도저히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마귀의 자식이라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래서 주님은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요 8:33) 라고 말씀하셨고, “마귀의 자식” (요 8:44) 이라고 부르셨다. 우리는 모두가 마귀의 자식이었고 죄의 종이었다. 그 마귀는 바로 나 자신을 상징한다. 즉 나를 세상 왕으로 쌓아 올리려는 ‘나’에 대한 우상숭배이다. 하나님의 생명 관계에서 끊어져 나간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자리에 ‘나’를 신으로 올려 놓고 세상을 지배하려는 마귀의 본성으로 오직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악한 존재이다. 타락한 인간의 심령과 육체 속에 심어진 ‘나’ 라는 뿌리로 인하여 인간은 태어나면서 생리적인 본능으로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나 행복’, ‘나 탐심’을 채우기 위한 올인의 삶을 인생의 목적으로 살아 간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인생을 다 투자하였음에도 자신이 원하는 행복을 누린 자는 단 하나도 없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나 행복을 누리는’ 목적으로 이 세상을 주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다고 하여도 하나님 없이는 절대로 행복할 수가 없으며, 세상 무엇으로도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대신할 수가 없다는 진리를 천하에 알리기 위해 처음부터 악으로 차있는 이 세상을 우리에게 던져주신 것이다. 그리하여 아직 천지를 창조하시기도 전에 하나님은 먼저 ‘어둠과 공허와 흠악’을 있게 하심으로 이 세상은 타락과 지옥으로 멸망할 것임을 정하여 주셨다.
그러므로 이 죄악된 세상에서 태어난 인간에 대하여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3: 13) 라고 인간을 정확하게 정립하고 있다. 인간이 추구하는 인생은 솔로몬의 고백과 같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전 1: 1-3) 함과 같다.
모든 인간은 저주를 받아 고해로 인생을 살게 되며 결국 행복 대신 저주와 죽음으로 끝나게 된다. 그래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바울이 말하고 있다. 죄는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빗나가서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의 행복과 영생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자리를 꿰차고 자기가 주인이 되어 자기가 원하는 삶을 시도하려는 모든 허무한 생각과 결실이 없는 먼지와 같은 허무한 행위를 말한다. 하나님을 밀어버리고 자기가 주인이 되어 오직 자신의 유익만을 시도하는 모든 허무한 생각과 결실이 없는 먼지와 같은 허무한 인생을 말한다. 그리고 그들의 결국은 계시록에서 말한 것과 같이 유황불에 영영 타는 지옥의 고통으로 떨어지는 심판이다.
창세기 3 장에서 인간이 마귀에게 먹힘으로 마귀와 한 몸이 되어 결국 저주와 죽음이 선포된다. “너는 종신토록 흙을 먹을 지니라"(창 3:14). 마귀의 집단적 생존방식이 바로 흙인 인간을 먹음으로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여 우주 권세를 잡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은 마귀의 악한 본성을 따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먹고, 높은 자가 낮은 짓누르는 먹고 먹히는 순환 계도에 따라서 움직이고 있다. 마귀의 삶의 원리가 바로 서로 잡아먹고 늑탈하고 빼앗고 살인하는 전쟁의 연속으로 죄를 쌓아서 결국은 멸망과 지옥의 심판으로 끝나는 저주이다.
성경에서 마귀가 이 세상 공중 권세를 잡고 있다고 말씀 하신 것은, 이 세상 삶의 방식이 바로 마귀의 원리로 움직이고 있으며, 모든 인간은 마귀의 조종 아래에서 마귀의 먹거리로 먹히는 귀신들린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의 사역에서 유독 귀신들린 자를 많이 고침으로 우리도 본래 마귀의 자식으로 귀신들린 자였음을 상징으로 보여주고, 그러한 우리를 구원하여 오신 분임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마귀의 자식은 아비의 악한 모습 그대로 행하기 때문에 이 세상은 악으로 찬 세상이며 오직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서슴없이 끝없이 악을 도모하는 악인들이 사는 세상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악인에 대해 말하기를,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롬 3:12-18).
이와 같이 이 세상은 하나님의 허락으로 잠시 마귀가 주관하는 원리로 돌아가고 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마귀의 세상에 집어넣으신 것은 그 마귀의 세상이 얼마나 추악하고 폭력적이고 악질적이며 결국 멸망과 지옥으로 끝나게 됨을 경험하고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마귀의 세상에서 자신이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는 선한 일을 이루심으로 성도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음을 깨닫게 되며,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 만을 사랑하는 자로 정착되어 간다. 마귀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정착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시험, 연단, 성숙을 위해 잠시 사용되는 이용물이다. 그들의 결국은 처음부터 저주와 죽음과 지옥으로 정해져 있다.
우리 주님은 죄와 죽음이 없는 영원한 하늘나라의 왕으로 오신 분이시다. 하지만 죄인에게 향한 죄에 대한 용서와 그 죄인의 모든 죄를 완전히 철저히 없애기 위해서는 죄 없으신 그분의 죽음이 필요했던 것이며, 이는 창세전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가장 합리적인 공의의 방법이셨다. 그 공의를 충족시킬 수 있으신 분은 오직 죄 없으신 생명의 주관자이신 당신 자신이었다. 그리하여 그분은 직접 육신을 입으시고 이 죄악된 세상과 죄인들 속에 들어오셔서 자신을 죄의 희생 제물로 드리신 것이다. 그분은 이 타락한 세상에 머리 둘 곳이 없었고, 죄인들에게 온갖 수모을 당하시고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서 죄인들에게 죽임을 당하여 속죄의 은혜를 마련하여 주셨다. 그분에게 있어서 이 세상에서 죄인들과 함께 있는 그 자체가 지옥이었다. 그래서 주님이 돌아가실 때 3시간 동안 세상은 어둠으로 덮여 있었다.
천지가 흑암으로 덮어져 있었다는 것은, 이 세상이 바로 저주와 죽음과 모든 추악을 상징하는 지옥임을 드러내어 보여주신 것이다. 이 캄캄한 세상 지옥에서 우리를 건지 시기 위해 그분이 친히 우리를 대신하여 지옥을 경험하셨음을 의미하며, 예수그리스도가 없는 이 세상이 바로 그 흑암으로 덮인 지옥이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우리가 바로 그 지옥의 상태에서 구원받은 것이다. 우리가 져야 할 모든 저주와 우리가 겪어야 할 그 지옥을 그분이 친히 내려오셔서 우리 대신 겪으시고 창세전 계획하신 하나님의 선한 뜻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완전히 성취하시고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셨다. 그리고 자신의 본체인 의의 영으로 부활하시고 성령강림으로 자기 백성들을 죄와 죽음에서 불러내고 계시며, 자신의 생명으로 새 생명을 잉태하여 영생을 받기에 합당한 하나님의 자녀와 신부로 끝까지 우리를 이끌어 가시고 계신다.
이와 같이 그분은 저주의 십자가에서 우리를 죄 없는 의인으로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의 모든 죄를 뒤집어 쓰고 십자가에서 죄인으로 죽으심으로 근본 된 죄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서 완전히 멸하신 것이다.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10:14-18).
그러므로 십자가의 죄 사함은 완전한 것이며 영원한 것이다.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까지 철저히 도말하여 주심으로 그 사함은 영원한 것이다. 이를 증거하여 그분은 우리 안에 직접 뚫고 들어오셔서 우리를 거룩한 백성, 의인이라고 성령으로 인을 쳐 주심으로 장차 짓을 죄까지 ‘죄 없음’으로 보증하여 주신 것이다. 칭의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이미 피 값으로 단 한 번으로 영원히 우리의 모든 죄를 도말하셨기에 다시는 우리를 죄인이라 정죄할 수가 없게 된 것을 증거함이며, 우리를 죄 없는 의인으로 인을 쳐 주셨기에 죄 없으신 그분이 내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심의 증거이다. 그분이 내 안으로 뚫고 들어오셨다는 것은 바로 내 안에 모든 죄가 도말되어 의의 상태로 그분이 만들어 주셨다는 증거이다.
기독교는 자신의 죄성, 자신이 처해있는 지옥을 경험하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깨달음부터 출발한다. 우리 안에 있는 그 마귀의 속성이 낙낙히 폭로되고 질식하게 되고 인정하게 됨으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하고 의지하며, 그분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는 자기 부인의 십자가 삶을 지향하게 된다. 이 세상은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늑탈하고 다른 이를 죽여야 내가 사는 먹고 먹히는 마귀의 원리로 마귀의 집단 세력이 확장되어 가고 있다. 즉 마귀는 인간을 먹거리로 살인하는 방법으로 악의 세력을 확장하여 간다. 그래서 주님은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자라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요 8:44).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원리는 하나님 자신을 자기 백성에게 내어주어 먹게 하는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는 희생으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여 가신다. 우리 주님이 몸서 자신을 세상에 내어주는 방법으로 하늘나라의 삶의 원리를 실천하여 보여주시고 동일하게 우리에게도 그분의 삶을 본 받기를 원하신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십자가 삶의 원리를 제시하여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약함으로 강함, 천함으로 고상함, 무력함으로 유력함, 선으로 악을, 즉 세상을 향하여 내가 부인되고 내가 죽음으로 새 생명이 잉태되는 십자가 원리로 그분의 나라가 확장되어 간다.
우리는 끝없이 마귀에게 발 뒷 꿈치를 물리면서 살고 있다. 마귀로 태어난 그 성향과 끈질긴 죄의 습성을 하나하나 벗겨내고 해체당하고 부인당하여 십자가에서 내 옛 사람 죄인을 못 박아 영원히 죽음으로 끝나게 하신다. 그리고 그분의 거룩한 영으로 의인으로 태어나 당신의 거룩한 성품을 지닌 자로 새 창조를 이루시기 위해 친히 내 안에 성령으로 뚫고 들어오셔서 나의 삶을 주관하시고 계신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 5: 24). 라고 확신을 주고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야망과 성공과 이름을 날리는 삶을 추구할 수가 없다. 오히려 기각 당하고 부인 당하고 낮아지는 시련과 고난의 삶으로 이어지며, 나그네의 객체 삶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의 필요성과 필연성을 절감하면서 오직 하나님의 이끄심에 순종으로 그분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인간은 하나님이 있으라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지 말라는 것을 하지 않고 맡겨진 일에 의무를 다할 때가 가장 의로운 상태이다. 그분은 먼저 자신의 생명으로 우리를 영원한 죽음의 형벌과 지옥에서 건져 주심으로 우리에게 향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고 증거로 보여주셨다. 그리고 하나님과 영원한 관계 속에서 그분이 부어주시는 영원한 복을 입게 하기 위해 우리에게 목숨을 다하여 영생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명하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죄 된 행위와 노력으로 절대로 하나님 앞에 설 수도 더더욱 그분을 사랑할 수가 없는 존재들이다. 그런데 한 의가 나타나서 구원의 의를 이루심으로 우리를 값없이 의롭다 하신 것이다. 우리는 예수의 공로로 의롭게 된 자들이다. 그 은혜를 아는 자는 그분의 생명으로 존재하는 자이기에 스스로 하나님만을 사랑하는자로 이끄심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요일 4:9).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자 우리와 화목하게 하기위해 자신을 우리에게 받친 그 영원한 사랑이 하나님에게 향한 사랑을 격발하여 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