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2: 28-29) [2] 성령님에 의한 마음의 할례: 그리스도의 할례
롬 2:28-29
28 유대인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참 유대인이 아니며 육체에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참 할례가 아닙니다.
29 오히려 마음에 참된 변화를 받은 사람이라야 참 유대인이며 기록된 율법이 아닌 성령님에 의한 마음의 할례가 진정한
할례입니다. 이런 사람은 칭찬을 사람에게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받습니다.
구약에서 말씀하시는 마음의 할례
할례란, 바로 하나님 자신이 십자가에서 쪼개져 피를 흘리심으로 그 피의 공로로 우리가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것으로 살아 올라와 복된 언약의 백성이 되었다는 흔적을 남기는 것, 즉 성령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인처주심으로 하나로 연합을 이루게 되는 성령님의 거듭남을 미리 예시하신 상징이며 표시이다. 그 십자가의 쪼개짐으로 나의 육적 자아가 부정되고 삭제되고, 즉 내 옛사람 죄인이 죽고, 그리스도의 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새롭게 태어나게 됨을 상징한다.
하나님이 제시하신 진정한 할례는 육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임을 구약 선지자들을 통하여 반복하여 제시하셨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신 30:6).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장차 성령을 통하여 마음에 할례를 주심으로 마음과 뜻을 다하여 영혼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 거듭나게 만드시겠다고 미리 약속하여 주셨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이시기에 그분의 사랑이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인애와 오래 참으심과 희생으로 죄인에게 부어져 구원과 영생이 임하기 때문에 할례의 궁극적인 의미가 바로 ‘사랑’임을 모세를 통하여 미리 제시하여 주신 것이다. 그 약속대로 죄와 사망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그리스도의 임재로 이 세상에 나타나셨고, 십자가 할례로 성취하여 주셨으며, 아무 조건 없이 오직 사랑으로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는 은혜를 입혀주셨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으로 오직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그리스도만을 죽도록 사랑하는 아들로 신부로 새롭게 거듭나게 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율법의 총 강령이 바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며, 그 사랑의 계명을 ‘새 계명’이라 부르고 우리에게 영생을 입혀주시기 위한 유익으로 실천 강력으로 명하여 주신 것이다(마 22:37, 요13:34).
하나님의 구원은 사랑에서 출발하여 사랑으로 성취하여 주셨기에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라고 구원의 핵심을 제시한 것이며; 사도 바울은 사랑은 예수그리스도의 본질이며 사랑으로 모든 계명을 이루어 주셨기에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10) 라고 하나님의 사랑이 곧 율법의 마침이라고 말한 것이다.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는 유일한 길이 바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그분에게서 떨어지지 않게 꼭 붙어 있는 믿음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미리 모세를 통하여 마음의 할례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을 죽도록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여 주신 것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라"(신 30:6). 이를 바울은 “성령님에 의한 마음의 할례”라고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할례를 또한 “마음 가죽을 베는”것으로 말씀하셨다.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 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렘 4:4).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은 최초로 아브라함에게 남성의 표피를 자르는 할례를 명하셨고, 그 할례의 뜻이 곧 마음의 가죽을 베는 것임을 명백히 제시하여 주신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할례는 마음의 불신과 죄악에서 돌이키는 마음의 가죽을 베는 진정한 회개였으며, 언약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며,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믿고 의지하는 자로 거듭나는 마음의 할례였다. 하지만 유다 족속은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수시로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며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으며 할례를 자신의 공로로 업적으로 챙겨가지는 교만에 빠져 있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날이 이르면 할례받은 자와 할례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렘 9: 25-26). 하나님은 할례를 받았던 받지 않았던 상관없이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 있으며, 그 이유는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말씀하신다. 그리하여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신 10:16)라고 책망하심으로 돌처럼 굳은 고집과 뿌리박힌 죄의 습성을 잘라내는 마음의 가죽을 벗겨내는 할례를 명하신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이 돌처럼 굳어진 패역한 마음으로 회개를 거부하며 육신의 할례를 자랑하는 끈질긴 고집에 대하여 바울은 ‘개’라고 부르고 ‘손할례당’이라고 부른 것이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빌 3:2-3). 즉 육체에 대한 신뢰를 차압당하고 육적 자아가 잘려나가는 것이 바로 진정한 마음의 할례임을 제시한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명하신 육신의 할례는 생식기 표피를 자르는 의식으로서, 이는 생명의 근원을 상징하는 생식기 끝이 잘라짐으로 생명을 잉태치 못한 자로 죽은 자와 다름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즉 죽은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입혀지지 않으면 스스로 생명을 잉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생명을 잉태치 못하는 마른 장작으로 만들어 버리시고, 99세에 할례를 받게 하신후 100세에 아들 이삭을 잉태케하여 주신 것이다. 이와 같이 할례는 죄로 죽은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만이 생명이 탄생됨을 아브라함을 통하여 미리 보여주신 것이다. 즉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쪼개지셔서 피를 흘림으로 그 피의 공로를 힘입어 죄로 죽은 인간이 새로운 피조물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탄생되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계시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에 할레를 받는다는 것은 자신의 육체를 신뢰하지 않고 자기 부인과 자기 죽음의 십자가, 즉 육신의 몸이 십자가와 함께 쪼개져 육적 자아가 제거되고, 그리스도의 영으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로 새롭게 탄생됨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오직 십자가에서 쪼개지신 예수의 피의 공로를 의지하고 믿는 믿음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바울은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골 2:11)라고 말한 것이며, 때문에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롬 2:29)라고 말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할례는 육신에 행하는 할례가 아니라 마음에 할례를 받는 것이며, 그 할례가 바로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바울은 확실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한 자들
마음에 할레를 받지 못한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하여 사도행전에서 스데반이 폭로한 것이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행 7:51-53).
예수그리스도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오셨음에도 그들은 교만과 영적 무지로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고, 오히려 끝까지 고집과 불신과 완고한 교만으로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멸시하고 거역하며, 끝내는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죄까지 범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함으로” 진리를 대적하여 하나님을 죽이고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들을 무자비하게 박해하고 죽이는 유대인의 완악한 마음 상태이다. 그들이 비록 육체로는 할레를 받아 하나님의 택하신 선민이라 자처하였지만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함으로 마귀의 조종 아래 있어 마귀의 행사를 하는 마귀의 자식이 되어 죄를 떠나지 않고 진리를 대적하며 탐심과 욕망으로 육체의 일을 추구하였음을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행 7:51)이라고 스데반이 지적한 것이다. 그러므로 할례의 근본정신은 그 마음의 할례에 있는 것이며, 육체에 거행하는 할례는 오히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걸림돌이 되어 스스로 심판을 자초하게 됨을 스데반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패역한 마음 상태를 책망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스데반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들의 죄악을 폭로함을 견디지 못하여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목이 굳은 손할례당의 죄악이다.
우리의 마음은 온통 나의 유익만을 계수하는 ‘자아’라는 이기심으로 빈틈없이 꽉 차있다. 우리의 귀는 이 세상 온갖 더러운 소리, 남을 비방하고 비난하고 정죄하며 자신을 자랑하는 교만한 말에 익숙해 있다. 우리의 입술은 온갖 비방과 정죄로 익숙해 있으며 쓰레기처럼 쏟아내는 온갖 더러운 말, 음란한 말, 악독한 말에 익숙해 있다. 이것이 바로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함으로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행 7:51) 육신에 속한 자들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사야를 부르실 때 먼저 숯불을 가져다가 그의 부정한 입술을 지지는 입술의 할례를 거행한 것이다. 하나님은 마음에 할레를 받지 못한 이스라엘에게 마음에 할레를 주어 새 마음을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할례)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겔 36:26-27). 죄인으로 태어난 인간이 죄로 굳어진 악한 마음을 스스로 잘라낼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이 십자가에서 쪼개지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잘라내시는 마음의 할례를 주실 것이며, 그 마음의 할례가 바로 “새 영을 너희 속에 두시는” 성령님의 거듭남임을 제시하신 것이다. 즉 성령으로 우리 마음 안에 친히 뚫고 들어오시는 방법으로 마음에 할례를 주어서 굳은 마음을 제하시고 새 마음을 주어 믿음으로 당신의 규례를 지킨 자로 의롭다 칭하여 주시겠다는 불가항력적 은혜를 미리 제시하여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아직 예수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시기 전에 성령님이 행하시는 마음의 할례를 약속하여 주셨고, 그 약속대로 당신의 아들을 율법의 완성자로 보내주셔서 십자가에서 쪼개지게 하심으로 우리의 완악한 굳은 마음을 제하여 버리고, 그리스도의 영으로, 즉 성령으로 거듭나는 새 마음을 부어주셔서 의롭다 칭하여 주신 것이다.
비록 우리는 영적으로 할례를 받아 영생을 얻은 자이지만, 아직 육체를 벗지 못하고 잠시 이 세상을 살고 있기에 육신이 원하는 죄의 성향, 습관, 고집 등에 수시로 노출되어 있음을 어찌할 수가 없다. 그래서 몸은 죄의 삯을 받아 죽는 것이며, 성도는 그 몸의 구속, 즉 그 몸마저도 죄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그날을 간절한 소망하며 기다리는 자들이라고 말한 것이다. 성도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까지 완전히 사하여 주신 은혜 안에서 살고 있음에도 현제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죄의 습성에서 벗어나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다. 나의 새사람이 짓는 죄가 아니라 옛사람의 죄의 습성 때문에 그 죄는 내 것이 아니라고 우리 성도를 위해 바울은 말해주고 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 내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면, 그것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롬 7:19~20). 때문에 성도는 매일 여전히 우리 몸속에 남아 있는 옛 습관과 부패한 마음을 잘라내는 마음의 할례가 필요한 것이며, 그 마음의 할례는 우리가 매일 먹는 생명의 말씀으로만이 가능한 것이며 영혼이 새로워지는 것이다.
신약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할례: 성령님에 의한 마음의 할례
29 오히려 마음에 참된 변화를 받은 사람이라야 참 유대인이며 기록된 율법이 아닌 성령님에 의한 마음의 할례가 진정한 할례입니다. 이런 사람은 칭찬을 사람에게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받습니다(현대인 성경).
죄인으로 태어난 인간은 죗값으로 저주의 십자가에서 쪼개지는 심판을 받아 마땅한 자들이다. 인간은 죄인으로 태어난 그 상태를 바꿀 수도 또한 죄와 죽음에서 자신을 구원할 수도 없는 무력한 흙의 존재이다. 그리하여 예수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의로운 생명을 대속물로 바쳐 모든 죄의 대가를 지불하는 공의와 죄인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의를 십자가 할례로 성취하셨다. 우리의 죄와 허물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쪼개지는 할레를 받음으로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탄생된 것이다. 이사야가 이르기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사 53:5). 정확하게 우리의 죄와 허물로 인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찔림, 즉 쪼개심을 받은 것이다. 우리는 그분께서 지불한 극심한 고통과 죽음의 대가로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되었으며(갈 3:13),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며(롬 5:7),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은혜를 입어 아들이 되었고, 신부가 되었고, 아버지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다(갈 4:4-7). 즉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온전케 하시기 위해 피의 할례로 영원한 제사를 드려 우리 죄를 영원히 없애주심으로(히 10:10-14),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자”(롬 6:10,11)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에서 할례 의식이 필요 없게 됨으로, 바울은 할례가 반드시 없어져야 함을 갈라디아서에서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할례 언약이 신약에서 십자가 할례로 완성되었기에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성령의 법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하나가 되는 영적 할례로 이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할례 의식은 당연히 율법과 함께 폐지된 것임을 바울은 강력하게 주장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자기 육체로 페하셨으니”(엡 2:15), 이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롬 10:4). 우리는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함이라” (갈 2:19) 함과 같이, 옛 죄인은 율법의 정죄로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할례와 함께 죽었다. 동시에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성령님에 의한 마음의 할례로’ 새사람으로 거듭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 것이다. 성령으로 할례를 받은 성도는 이제 “하나님의 영으로 예배하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하며,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우리야 말로, 참으로 할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빌. 3:3)라고 성령으로 진정한 예배를 드리고, 그리스도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자들이 바로 마음에 할례받은 자들이라고 바울은 확실하게 말해 주고 있다.
그렇게 마음으로 할례받은 자, 즉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합당한 살을 추구하게 된다. 사도 바울은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뚫고 들어오는 그 순간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보증하는 인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고후 1:22). 우리는 예수를 믿고 성령으로 인침을 받아 하나님에게 속한 자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육신의 할레가 참 할레가 아니며 할레는 신령 즉 마음으로 한다고 주장한다. 오직 성령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는 말씀이다. 그 이유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온몸이 쪼개지는 할례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다시는 육신의 할례가 필요 없게 되었으며 오직 성령으로 거듭나는 마음에 할레를 받는 은혜의 시대가 도래되었기 때문이다. 즉 옛 언약 육신의 할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배로운 피로 인친 성령의 인으로 대치되었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 2:11-12). 즉 성도는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어 예수와 함께 옛사람 죄인이 십자가에서 할레를 받아 죽은 것이며, 동시에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성령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탄생하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즉,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갈5:24-25). 즉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다”(롬 6:6). 지금의 나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아 새 생명으로 잉태된 의인이요, 아버지의 영화로운 자녀이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롬 6:8),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 2: 12).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산”자 (벧전 2:24)가 된 것이다. 이것을 바울은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말하는 것이다.
마음의 할례를 받은 성도의 삶
바울은 성령으로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는 오로지 그리스도 예수만을 자랑하며 신뢰하며 그리스도의 흔적, 즉 성령으로 거듭나 열매를 맺는 흔적을 가지게 됨을 말하고 있다.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새사람으로 태어났기에 더는 육체를 신뢰하지 않으며, 혈통이나 율법의 행위를 추구하지 않으며,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만을 자랑하며 신뢰하게 됨을 자신의 체험으로 말해주고 있다. 빌립보서 3장에서 바울은 마음의 할례를 받지 못한 자신이 비록 혈통적으로나 율법적으로나 열심으로나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으로 육체를 신뢰하고 자랑하였지만,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여 예수그리스도를 핍박하고 죽이는 일에 가담한 죄인 중의 괴수였음을 고백함으로, 오직 마음에 할례를 받아야 만이 구원과 생명이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
바울은 8일 만에 율법으로 완전한 할례를 받음으로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유대인이며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육체를 자랑한 것이다. “열심히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빌 3:6). 그는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자로 자칭하면서 실상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예수그리스도를 핍박하는 원수요, 자신의 말대로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다”(딤전 1:13). 할례를 자랑하며 율법으로는 흠이 없다고 자랑한 바울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정체성마저 깨닫지 못하였고,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여 오히려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께 대적하여 진리이신 예수그리스도를 핍박하고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사신 교회를 핍박하는 원수가 된 것이다. 그런 무지한 바울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먼저 찾아와 불러주시고 은혜를 입혀주셨기 때문에 그의 엄청난 죄가 용서되고, 눈과 귀와 마음에 할례를 받는 성령님의 거듭남으로 옛 죄인을 벗고, 새로운 피조물로 복음의 선구자가 된 것이다. 바울 자신의 고백처럼 사울이 바울이 되어 완전히 예수에게 잡힌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였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고전 15:10).
성령으로 거듭난 바울은 육체를 자랑한 그 모든 것들을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겼다고 고백하며, 십자가 예수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일에 자신의 그 어떤 생애도 희생하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여긴다고 고백한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를 전파하는 복음이 너무나 귀중하고 너무나 영광스럽기에 그동안 열심을 내어 추구하던 혈통도, 할례도, 명예도, 바리새인이란 체면도 그 해박한 지식이나 학문도 모두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하게 된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체험을 통해서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보다 더 고상한 지식은 없으며 그리스도의 의보다 더 온전한 의는 없다는 진실을 그리스도 안에서 깨닫게 됨으로 그리스도의 흔적을 지니고 살아가게 됨을 자랑한 것이다.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갈 6:17). 이와 같은 체험으로 바울은 성령으로 거듭나는 마음의 할례를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르기를, “율법이 아닌 성령님에 의한 마음의 할례가 진정한 할례 입니다”(롬 2:29 현대인 성경).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롬 8:16)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고배하기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4-39). 이보다 더 확실한 신앙고백이 또 있겠는가! 이와 같이 할레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쪼개지심으로 그분 안에 있는 우리도 그분과 함께 쪼개심을 당하여 옛 죄인이 죽고, 그리스도에게 속한 새 신부로 탄생하는 성령의 거듭남으로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영원한 언약을 뜻하고 있다. 그리하여 바울은 마음의 할례를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명백하게 제시해 준 것이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할레의 언약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할레로 성령님의 거듭남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전히 영원히 이루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