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의 진의

로마서 (1:26-32) 바울이 제시한 ‘동성애’의 진정한 의미? /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오직 은혜 2022. 5. 21. 02:23
 
롬 1:26-32
26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도 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바울은 그 많은 죄 중에서 특별하게 ‘동성애’라는 성적 타락을 소재로 삼아 인간이 쏟아내는 죄악들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경고한다. 죄의 본질은 피조물이 자기 자리를 이탈하여 하나님 노릇 하는 것, 즉 인간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며,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고, 이 세상 마귀와 한 몸이 되어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며, 피조물이 피조물을 섬기는 역리로 행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이 선악과를 입에 물고 신처럼 군립 하며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질서 체계를 뒤엎고, 순리로 써야 할 것을 역리로 쓰면서 온갖 추악한 죄악들을 토해내는 그 역겨운 저주의 상태를 성적 타락인 ‘동성애’로 표현한 것이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섬기는 것이 순리임에도 불구하고 피조물이 피조물을 섬기는 역리를 행하며,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주인으로 남편으로 모셔야 생명을 유지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밀어내고 내가 주인이 되어 나를 주장하는 그 행위가 바로 역리이며, 바울은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주신 순리를 역리로 행하여 진리를 거스르는 모든 불의의 상태를 ‘동성애’라는 성적 타락과 성적 음란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정하여 주신 순리란? 자기 이탈이 곧바로 생명력에서 끊어져나가는 저주와 죽음이다

하나님께서는 첫 인간 아담을 만드시고, 그 아담을 돕는 배필을 아담의 갈비뼈로 만드심으로 둘은 본래 사랑으로 묶여진 하나임을 제시하셨다. 즉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낳아서(요 1:13)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존재임을 계시하셨다. 그리하여 아담은 여자 하와를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 (창 2: 23)이라고 하나로 부른 것이다.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사 54:5)라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바로 당신 백성을 그토록 사랑하시는 남편이 되시기 위해 인간을 지으셨음을 제시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둘이 하나로 연합되어 새 생명이 잉태되는 영의 속성을 나타내시기 위해 모든 생명 있는 피조물들은 한 쌍씩 만드셨다. 그리고 연합을 통하여 끊임없이 새 생명을 잉태하게 하심으로 생명으로 충만하고 하셨다.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그 생명의 충만과 번창은 오직 하나님께서 정하신 연합의 질서에 수 응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순리대로 행하며,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며 사랑할 때에만 가능하게 하셨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남자 아담을 먼저 만드시고, 그 남자를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자신이심을 제시하셨다. 그리고 남자에게서 여자를 탄생시킴으로 여자는 본래부터 남자에게 속한 ‘하나’임을 제시하시고, 둘이 한 몸이 되어 생명을 잉태하여 끝없이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셨으며, 자연과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는 제사장의 역할을 주셨다. 즉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와 순서는 “하나님, 남자, 여자, 생물"이었다. 하나님께서 먼저 남자 아담을 만드시고 아담의 모든 삶을 통치하시고 주관하심을 ‘에어던 동산’을 통하여 나타내셨다. 그리고 남자 아담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심으로 여자는 본래 남자에게 속하여 ‘하나’로 있어야만 이 생명이 유지됨을 나타내셨다. 이는 오직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있을 때에만 생명이 유지됨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다. 그분을 떠난다는 것은 곧바로 생명력에서 끊어져나가는 저주와 죽음임을 선악과를 통하여 나타내셨다.

하지만 인간은 처음부터 나약하고 불가능한 생명 없는 무익한 티끌로 육을 업었기에 육신으로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지킬 수가 없음을 선악과를 통하여 보여주셨다. 그리하여 남편에게 순종하여야 할 여자가 먼저 뱀의 유혹을 받아 생명의 말씀을 거역하고 ‘죽음’으로 선포한 선악과를 따먹고 남편 아담을 꼬셔 죄에 끌어들임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순리의 질서는 깨지기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피조물의 자기 자리 이탈, 즉 과녁을 벗어난 ‘죄’이다. 그 결과,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여야 할 남자 아담이 하나님께 대들어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12)라고 자신의 죄를 하나님과 여자에게 전가시켰고, 여자는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13)라고 뱀에게 자신의 죄를 전가함으로 사단이 여자를 지배하고 여자가 남자를 타고 넘어 하나님이 정하신 “하나님, 남자, 여자“의 질서가 “사단, 여자, 남자”의 순서로 뒤바뀌는 역으로 ‘파괴와 멸망과 죽음’으로 향하는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즉 뱀 사단이 여자를 꾀하여 죄를 짓게 함으로 여자를 지배하게 되었고, 마귀와 한 몸이 된 여자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가 되어 결국 자신을 구원하려 오신 남편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극도로 패역한 살인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여자의 대표로 선 유대인들을 향하여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4)라고 그들이 마귀에게 속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게 됨을 미리 말씀하여 주셨으며, 그들에게 향한 심판을 선고하신 것이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 33).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요 8:21-24).

바울이 제시한 ‘동성애’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바울이 말하는,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1:26-27), 이 구절을 동성애를 지적하는 구절로 해석하는데, 그보다 더 본질적인 영적 타락과 음란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인간들의 자기 자리 이탈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피해 숨어있을 때 그들에게 ‘무엇을 하였느냐?’라고 행위를 물은 것이 아니라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라고 그들의 자기 자리 이탈을 질문하셨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품을 떠나 이 세상 마귀와 하나가 되어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에게 죽음이 선포된 것이다. 이제 마귀와 한 몸이 된 인간은 이 세상 온갖 더러운 썩어질 것들을 끌어다가 육신의 탐욕을 채워주는 남편으로 모시며, 온갖 피조물들을 신으로 혼합하여 섬기는 음란한 우상숭배를 하게 된 것이며, 바울은 이를 ‘동성애’라는 소재로 표현한 것이다.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후 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섞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도 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1:22-25)라고 바울은 인간의 우매함과 패역한 우상숭배를 지적하고, 곧바로 그다음 구절에서 이러한 음란한 우상숭배가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순리를 역으로 바꾸어 쓰는, 즉 ’여인이 여인을, 남자가 남자를 쓰는’ 동성애로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 백성들의 사랑의 대상은 오직 나를 만드시고 나를 사랑하셔서 영생을 입혀주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이시며 우리를 낳아주신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이르기를, .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사 54: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명기 6:5. 막 12:30). 즉 하나님 아버지께서 먼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생명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영생을 입혀 주셨기에, 우리가 살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확실하게 제시하여 주셨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된 존재이며, 하나님 안에 있어 오로지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하며 남편으로 모시고 그분의 영광만을 구하는 자로 영생을 살아가도록 지음을 받은 존재임을 제시하셨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창조의 순리를 거스려서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며,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마귀와 한 몸이 되어 진리를 대적하며, 온갖 쓰레기 같은 죄악들을 쏟아내어 생명을 파괴하고 죽이는 일로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켜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고 있다. 인간은 육신이 살아있는 동안 오로지 자신만을 사랑하며, 하나님께서 다스리라고 주신 짐승들을 신으로 남편으로 형상화하여 섬기며, 사람이 사람을 신으로 숭배하며, 육신의 정욕대로 이 세상 온갖 잡신들을 혼합하여 섬기는 음란한 우상숭배에 완전히 젖어 있다. 이를 바울은 음란한 성적 타락으로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동성애’로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4000여 년이란 구약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인간이 ‘자아’에 집착하는 그 ‘자기 사랑’이 얼마나 추악하고 더럽고 집요하며 도저히 끊어낼 수 없는 끈질긴 거머리같이 패역한지를 낱낱이 드러내어 인간의 정체성을 확실히 깨닫게 하셨다.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는 모든 인간의 온갖 패역함과 죄악들이 낱낱이 드러나고, 인간의 불가능함과 무능함과 우매함과 무지함이 완전히 드러나는 역사이며, 인간의 모든 가능성이 철저히 기각되는 역사이다. 그리고 신약에 와서 저희 조상들의 죄악된 혈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유대인들이 그들의 조상보다 더욱 완악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대적하고 멸시하고 박해하며, ‘나’라는 우상을 섬기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살인까지 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말하는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도 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1:28)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순리로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하나로 영생을 살아야 하는 인간이 자기 자리를 이탈하여 끊임없이 세상 마귀와 간음하며, 자신을 신으로 모시고 자신과 간음하며, 이 세상 온갖 피조물들을 남편으로 섬기는 도저히 용서치 못할 음란한 죄악들로 극도로 패역한 저주의 상태가 되도록 하나님께서 내어 버려두셨다는 것이다. 이를 바울은 ‘동성애’라는 가장 적합한 성적 타락으로 표현한 것이며, 인간의 이와 같은 음란하고 방탕한 죄악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이미 내려져 있음을 제시한 것이다.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1:26-27).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한 쌍이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생명을 잉태하여 번성하며 충만하여야 하는데, 여인이 자기 짝인 남자를 버리고 여인을 쓰며, 남자가 자기 짝인 여인을 버리고 남자를 쓰는 자기 짝이 아닌 동성에, 즉 피조물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만을 사랑하라’(신명기 6:5. 막 12:30)는 생명의 말씀을 거역하여 피조물이 피조물에게 음욕을 발사하여 숭배하고 섬기는 역리를 행하여 생명을 잉태치 못함으로 스스로 멸망을 자초함을 바울이 지적한 것이다. 그렇게 순리로 써야 할 것을, 역리로 쓸 때, 하나님께로 향해야 하는 사랑을 자기에게로 쏟아부을 때, 인간들은 어처구니없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온갖 죄악들을 쏟아내어 스스로 지옥으로 떨어지는 보응을 받더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음욕(정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1:27). 여기서 정욕이란 곧 생명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밀어내고 이 세상 마귀와 한 몸이 되어 자신을 신으로 삼는 ‘자아’에서 출발한 탐심으로 자기 소견대로 행하는 통제가 안 되는 육체적 욕망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이 토해내는 것들이 얼마나 더럽고 음란한지를 보여주시기 위해 불타오르는 정욕으로 부끄러운 일들을 행하도록 더러움에 내버려 두셨으며, 스스로 자신들이 행한 추악한 죄악들로 ‘상당한 보응을 받게 하셨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바울이 말하는 ‘보응’은,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타락한 모든 인간들을 이 세상 죄악에 넘겨준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 인간이 동성애라는 죄로 인하여 ‘에이즈’라는 벌을 주셨다는 그런 해석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들, 그것이 생각으로 나오든 마음으로 나오든, 인간 자체가 죄 덩어리이기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에게 ‘죽음’이라는 보음을 받게 하셨다. 이에 바울은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1:32)이라고, 즉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을 저희 죄와 죽음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도록 장치하셨음을 말하고 있다.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갈 3:22). 때문에 이 세상 육신에 속한 자는 영원한 멸망으로 보음을 받게 되고, 오직 택함을 받은 하나님에게 속한 자만 그 보응을 통하여 구원과 생명으로 이르게 하셨다는 것이다.

바울이 특별하게 ‘동성애’라는 성적 타락으로 인간의 죄악들을 묘사한 것은, 인간이 선악과를 입에 물고 자신을 창조하여 주시고 생명을 공급하여 주시는 하나님을 밀어내고 자신이 신이 되어 자신을 주장하며, 하나님에게 향한 사랑을 자기 사랑으로 돌려놓고 탐심과 욕망에 이끌려 하나님께서 정하여 주신 창조의 원래 질서를 역으로 행하여 진리를 거역하는 불의의 상태가 되어버렸음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자리를 쳐들어와 자신을 신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짓밟고 육신의 탐심과 정욕에 끌리는 대로 온갖 추악한 배설물과 같은 더러운 죄악들을 쏟아냄으로 그 죄가 관영 되자 하나님께서는 전 인류가 진멸하는 ‘홍수의 심판’이라는 보음을 받게 하셨으며, 지금도 스스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자초하고 있다. 마귀와 한 몸이 되어 저주 아래 놓인 인간들은 만물에 임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부인하고, 자신과 온갖 피조물들을 우상으로 섬기는 역겨운 행위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다. 즉 피조물이 피조물을, 자신이 자신을 섬기며 사랑하는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죽음의 멸망을 자초하고 있음을 바울은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1:26-28)라고 표현하고 있다. 인간 스스로 신을 버린 그 상태가 바로 타락이며,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상태가 바로 저주와 죽음이며,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아 이 세상 마귀와 한 몸이 되어 온갖 죄악들을 쏟아냄을 29-31절에서 21가지 죄악으로 나열하고 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1:29-31).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며 자신들의 욕심에 이끌러 쏟아내는 죄악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마귀와 하나가 되어 끊임없이 가시와 엉겅퀴와 같은 온갖 더럽고 추악한 죄악들을 쏟아내고 있으며, ‘죽음’이라는 사형선고를 받았음에도 죄를 멈추고 하나님의 구원을 구하기보다는 오히려 고의로 죄를 행할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죄를 행하도록 조장하거나 옳다고 부추 켜서 함께 지옥으로 떨어짐을 바울은 지적하고 있다.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1:32).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난다”(1:18). 바울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인간의 부패한 마음 상태를 대표적으로 21가지 항목으로 열거하고 있다.

모든 불의

바울은 먼저 모든 인간은 “불의”의 행악 아들임을 지적하고 있다. 즉 인간의 마음 상태는 무덤같이 심히 부패하고 더럽기가 그지없으며 나오는 것은 오직 죄악일 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세상과 구별된 의로운 성품이 나올 수가 없다고 단정을 내리고 있다.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2). 왜냐하면 이 세상 모든 인간은 자신을 신 삼아 사는 존재이기에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으로 선악과를 따 먹고 이 세상 권세를 잡은(웹 2:2),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웹 6:12) 마귀와 한 몸이 되었기에 그 본성은 밑바닥이며, 더럽고 추악하고 부패하며, 마음이 강퍅하고 패역하며, 오직 자신만을 사랑하는 ‘자아’에 굶주려 있다. 오로지 육신의 탐심과 욕망을 추구하며, 이 땅의 썩어질 영광을 위한 집착에 사로잡혀 있다. 피조물이 자신이 있어야 할 피조물의 자리를 떠나서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여 하나님을 거부하며, 자신이 신이 되어 자신이 자신을 주장하는 그 타락한 마음이 곧 ‘하나님을 상실한 마음’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의 대적자인 이 세상 마귀를 남편으로 모시고 거침없이 온갖 추악하고 더러운 죄악들을 행하고 있음을 바울은 ‘정욕으로 여인이 여인을, 남자가 남자를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이 부끄러운 일을 행하는데’, 그것이 곧 순리를 역으로 행하는 ‘불의’이며, 대표적으로 20가지 항목으로 나열하여 설명하고 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1:29-32).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존재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의지하며 하나님께서 정하여 주신 순리대로 살아가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럼에도 선악과를 입에 물고 자신들이 신이 되어 자신들의 소견대로 진리를 거슬러 끊임없이 자신들의 탐심과 욕망을 채우는 바벨탑을 쌓고 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인간들의 죄악들로 쌓아올리는 바벨탑을 모래알처럼 흩으려 버리시며, 심판을 경고하고 있음에도 멈추지 않는 것이 바로 역사이다.

그렇게 하나님이 없는 상실한 마음에 마귀를 남편으로 모시고 사는 이 세상이 곧 불의의 세상이며 인간들이 쏟아내는 모든 것들이 곧 불의이며, 모든 것을 역으로 행하는 그 불의의 증상들이 바로 바울이 지적한 20가지 대표적인 죄악들이다(1:29-31). 즉 하나님께서 원래 창조하신 질서와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역행으로 진리를 거슬러 육신의 욕망을 채우는 끝없는 갈망으로 온갖 악행들을 쏟아내는 그 상태가 바로 ‘불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2)라고 선포한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셔서 마땅한 징벌을 받게 하셨다는 것이다 (26, 27). 즉 그들이 스스로 쏟아내는 더러운 배설물과 같은 죄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 자체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저주의 상태이며, 이미 징벌을 받고 있는 있다는 것이다. 즉 이 세상 마귀를 남편으로 모시고 마귀가 통제하는 육신의 정욕과 욕망으로 살도록 내버려 두시는 그 삶 자체가 바로 지옥이며 심판임을 ‘사형에 해당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악의, 추악, 탐욕 :

타락한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며, 오직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자아’가 작동하고 있기에 본성이 악함으로 악을 도모하며, 자신의 유익을 위해 다른 이를 해하려는 사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자신이 신이 되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끝없는 탐심과 욕망으로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온갖 추악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즉 끝없는 욕망과 무절제한 욕심과 한정 없는 이기심으로 자신과 타인을 파괴하며 생명을 죽이는 마귀의 사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르기를,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함과 같다.

시기, 살인 :

인간은 자신이 모든 것을 가져야 하고 자신이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마귀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천성이 남이 나보다 잘난 것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며 증오하는 비뚤어진 마음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다른 존재가 나에게 위험이 되거나 방해가 되거나 손해가 될 때 그 존재를 없애려는 가장 무서운 살인을 하게 된다. 첫 인간 아담의 후손인 가인이 의인 아벨을 시기하여 살인하는 사건으로부터 시작하여 이 세상 마귀의 세상이 바로 생명을 죽이는 살인의 세상임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마귀는 살인자”라고 마귀의 본성을 지적하셨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라”(요 8:44). 예수님은 또한 실제 살인에 이르지 않았더라도 다른 이에게 노하고 욕만 하여도 음욕을 품어도 죄가 되며 이미 살인한 것과 다름이 없기에 지옥불에 던져진다고 말씀하셨다(마 5:21-22).

 

분쟁, 사기, 악독, 수군수군, 비방 :

분쟁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생명을 끊어 버리려는 무서운 죄이다. 인간은 마귀적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모든 사물을 자신의 유익에 따라 해석하고 행사하는 사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허위와 거짓을 꾸미며, 모함하고 사기 치며, 악의적으로 음모를 꾸며 다른 이를 비방하며 다른 이의 삶을 훼손시키고 넘어뜨리는 일에 성취감과 쾌감을 느끼는 악독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 능욕, 교만, 자랑, 악을 도모하는 자:

인간은 자신을 신으로 삼고 있기에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며, 하나님의 간섭을 거부하며,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교만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적한다. 인간과의 관계에서도 다른 이를 멸시하고 업신여기고 능욕하고 억압하는 무례함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높이며 자랑하는 우월감에 빠져있다. 이러한 자들은 자신의 영광과 명예와 이름을 날리기 위해 고의적으로 악한 일을 계획하여 다른 이들을 해치는 악의 발안자들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신다"(약 4:5)고 말씀하신 것이다.

부모를 거역하는 자, 우매한 자, 배약하는 자, 무정한 자, 무자비한 자,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이런 일을 옳다 하느니라 

부모의 권위를 무시하는 자는 곧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무정하고 냉혹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타인에 대한 연민도 자비심도 용서와 긍휼한 마음이 없으며, 오로지 자신의 유익과 이름과 명예만을 추구하기에 자신의 부모 형제 친구마저 배신하고 팔아먹는 배은망덕한 자들이다. 육신의 행복을 추구하지만 그것이 곧 썩어 없어질 배설물이며 헛되고 헛된 티끌의 인생임을 깨닫지 못하는 우매한 자들이다. 악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악을 즐기며, 자기도 행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 일이 옳다 하여 죄를 부추기며 함께 악을 행하기를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죄의 쾌락 속에 빠져있다.

바울은 이와 같은 모든 죄악들은, 인간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며 마귀와 한 몸이 되어 하나님이 주신 순리를 역리로 행하는 결과물임을 지적한다(1:28-32).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도 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며…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며”(1:24,26),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께서 정하셨다’(1:32)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에 대하여 “각자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으며 사망과 지옥 불 못에 던져지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0”12-14)라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선포하셨다. 인간이 자신들이 토해내는 가시와 엉겅퀴와 같은 온갖 죄악들로 스스로 자신들을 올가 매도록 내버려 두셨다는 것이다.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도 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다”(1:28). 즉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그 죄와 죽음에서 빠져나올 수 없도록 장치하셨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갈 3:22). 하나님을 경배하며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로 영생을 살아야 하는 인간이 마귀와 한 몸이 되어 하나님이 주신 순리를 역리로 거슬러 육신의 정욕에 불타올라 온갖 추악한 죄악들을 토해냄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향한 징계조차도 거두어 가시고,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도 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1:28),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서 지옥에 떨어지는 무서운 ‘사형’을 내리셨다(1:32)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우리 인간은 죄인으로 태어났기에 육의 본능으로 죄만을 생산해 내는 패역한 자들이다. 바울이 지적한 바와 같이 불의 한 자이기에,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다”(1:28-31). 분명히 하나님께서 죄의 대가로 ‘죽음’이라는 사형을 선고하셨음에도 멈추지 않고 제멋대로 뻗어나가 순리를 역리로 행하여 진리를 거역하며 열린 무덤과 같이 악취만 뿜어내는 송장과 같이 그 본성은 더럽고 강퍅하며 자아에 굶주려 있다. 자신의 욕망, 야심, 목적을 성취하는 데 하나님을 이용하며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는 거침없이 다른 이를 해하고 살해하는 패역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선한 뜻을 거슬러 반항하며, 그분의 은혜로운 부르심에 대적하며, 그분의 말씀을 도둑질하여 자신의 이름을 높여 영광을 갈취하며, 자신들의 탐심과 정욕으로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온갖 더럽고 음란한 죄악들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우리는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끝없는 패역함과 범죄의 행악들을 보면서 그들의 모습이 곧 우리의 모습이며,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한 열매를 맺을 수가 없으며 지옥의 불사름에 던져지는 것이 마땅함을 구약을 통하여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가 지옥의 심판에서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예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뒤집어쓰시고 회생 제물이 되시어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당신 백성들을 이 세상 더러움에 내 몰아서 이 역사 속에서 자신들의 실체를 올바로 인식하고 인정하게 하시며, 오로지 하나님의 구원의 ‘의’만을 붙드는 자로 만들어 내신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인간들이 토해내는 그 죄가 얼마나 음란하고 추하고 교묘하고 끈질고 패역한지를 경험하며, 이 세상의 삶이 얼마나 부질없고 허황된 것이며, 고통과 고생의 연속임을 경험함으로 철저한 죄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올바로 직시하고, 자신의 불가능함과 추악한 본성을 자각하고 인정하고 깨닫게 하신다. 성도는 매일과 같이 죄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나약함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못하는 불가능함을 경험하면서 인간은 자신의 그 어떤 힘으로도 노력으로도 의지로도 하나님의 구원의 의에 도달할 수 없음을 철저하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긍휼과 은혜가 없이는 인간은 죽은 송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성도는 오직 하나님의 구원의 의와 은혜를 입어야 만이 죄와 죽음에서 살 수 있는 죄인의 상태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아무런 대가도 조건도 없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저주와 사망의 지옥에서 구원하시는 그분의 의로운 구원에 항복하는 자기 부인의 십자가 삶을 추구하며,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맡기는 순종을 매일 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놀라운 능력과 역사하심에 감사하고 기뻐하며, 우리에게 제시하신 진리의 말씀 속에서 그분의 뜻과 사랑의 마음을 헤아리며, 그분의 사랑에 함몰하여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나와 함께하시는 그분의 생각으로, 그분의 마음으로, 그분의 뜻으로 사는 순종의 삶을 지향하는 것이다. 성도의 소망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