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21-25)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롬 1: 21-25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25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만물을 통하여 보이셨다. 만물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기에 분명히 예수그리스도를 계시하며, 오직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영적 눈을 열어주셔서 하나님을 감지하며 십자가 복음을 믿어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 하지만 이 세상 모든 인간은 타락으로 그 영이 죽어 있는 상태이기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알아보는 영적 눈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하나님을 알 수가 없으며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롬 3:10-11). 그리하여 요한은 이 이 세상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유대인들마저 예수그리스도를 알아보지도 영접하지도 아니하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다”(요 1:11-13). 인간은 타락으로 그 영이 죽어있는 상태에서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하나님께로 나지 않으면, 즉 성령으로 다시 거듭나지 않으면, 티끌로 만들어진 육신으로는 절대로 영이신 하나님을 감지할 수도 인식할 수도 없다는 말씀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만물로 계시하여 주시고,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셨음에도 인간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하나님께 욕되는 일을 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1:21-23).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알고, 믿고, 구원을 얻는 유일한 길을 당신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로 정하셨다. 베드로는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심을 미리 정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미리 정하셨고” (벧전1:20). 이와 같이 천지창조 전부터 예수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은 정해져 있었으며,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된 만물에는 예수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복음’을 담고 있다. 이 역사 자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이며,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언약과 약속들을 근거하여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과 섭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며, 오직 구원과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만을 계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땅의 존재들은 빛과 생명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였다(요 1: 3-5).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이스라엘은 4000여 년 동안 구원의 언약을 받은 민족으로 율법과 제사로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며 메시아를 손꼽아 기다리던 자들이었지만 눈앞에 나타난 메시아를 알아보지도 영접하지도 아니하였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니”(요 1:11). 즉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언약과 약속과 율법과 제사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거역하고 대적하며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무시하며 하나님을 전해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들에게 핑계할 수 없는 수많은 증거들을 보여주셨음에도 끝까지 메시아를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이는 살인까지 저지른 것이다. 바로 이 상황을 바울은 ”그들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그분을 하나님으로서 영광스럽게 하지 않고 감사하지도 않으며 그들의 생각은 쓸모없고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은 어두워졌습니다"(1:21)라고 인간의 우매함을 지적한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보면, 그들은 하나님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고,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신하며, 이 세상 물질과 풍요를 가져다주는 바알신과 같은 이방 신들을 줄기차게 섬겨왔다. 자신들의 육적 욕망을 이루기 위해 그 어떤 신도 마다하지 않고 산당을 짓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세워 제사를 드리는 하나님과 이방 신을 혼합시키는 음란한 우상숭배로 수시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왔다. 이스라엘의 왕으로 지혜를 자랑하고 일천 번지 제사로 하나님만을 섬겼던 솔로몬의 말년에도 일천 명의 이방 여인과 간음하여 세상 온갖 잡신들을 다 끌어모아 산당을 짓게 하고 이방 신을 따르는 엄청난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다. 바로 이스라엘 전체 민족의 우상숭배와 극도로 타락한 죄악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하나님은 수시로 그들의 끝없는 우상숭배에 진노하셨고 징벌과 심판을 내리셨으며 결국 나라를 잃고 유리 방랑하는 민족이 된 것이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패역한 구약 역사에 대하여 바울은 그들이 분명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섬겨 왔지만, 줄곧 세상과 간음하는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기에,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1:21-25)라고 이스라엘의 패역한 음란을 지적한 것이다.
4000여 년의 이스라엘 역사는 끊임없이 하나님께 반항하고 대적하며 세상과 간음하는 우상숭배에 빠져 하나님을 배신한 패역한 역사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찜이뇨”(렘 2:21). 하나님께서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그 포도나무가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되었고, ‘들포도를 맺는 가지’가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여 친히 보살펴 주시고 지켜 주시고 사랑으로 품어 주셨음에도 그들은 하나님을 배신하고 이방 신을 섬기는 이방인의 악한 가지가 되어 버렸다는 말씀이다. 즉 하나님의 지키심과 은혜를 뿌리치고 이방의 힘을 얻기 위해 이방 우상 앞에서 절하며 제사를 드리는 악행들을 행한 것이다. 그 교만과 배신과 불순종과 이방 숭배에 하나님은 진노하신 것이며 그 악에 대한 심판을 선고하셨다(겔 17:9, 18-2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4000여 년이란 구약의 역사를 통하여 육신의 탐욕으로 ‘자아’에 집착하는 인간의 집요함과 도저히 끊어낼 수 없는 끈질긴 거머리 같은 패역한 죄성을 낱낱이 드러내어 인간의 정체성을 확실히 깨닫게 하셨다. 구약의 역사는 모든 인간의 온갖 패역함과 죄악들이 낱낱이 폭로되고 인간의 불가능함과 무능함과 우매함과 무지함이 완전히 드러나는 역사이며, 인간의 모든 가능성이 철저히 기각되는 역사이다. 그리고 신약에 와서 저희 조상의 죄악된 혈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유대인들이 그들의 조상보다 더욱 완악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대적하고 멸시하고 박해하며, ‘나’라는 우상을 섬기기 위해 하나님을 죽여 버리는 살인까지 가게 된 것이다.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1:26).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칭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너희 아비는 아브라함이 믿는 하나님이 아니라 마귀라고 저주하셨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요 8:44-45). 그들은 “아비 마귀의 욕심대로”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 하나님의 선한 법마저 이용하여 자신들의 의와 영광을 추구한 자들이었으며; 살인자 마귀를 본받아 하나님의 아들을 살해하려고 온갖 악행으로 핍박하였으며; 진리의 말씀을 왜곡하여 자기 것으로 말함으로 그들이 바로 거짓말 쟁임을 지적하신 것이다. 즉 그들이 이때껏 예수님을 대적한 그 모든 행위가 바로 마귀의 행위이며 ‘너희가 바로 그 마귀의 자식이다’는 저주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시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다”라고 지적한 자들은 바로 언약과 약속을 받은 유대인들의 율법주의를 가리킨다. 바울이 쓴 로마서는 교회 신자들에게 보내는 서신이며, 로마 교회 안에 침투하여 분쟁과 분열을 일으키는 유대주의 율법주의를 부수고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혈통에 묶여있어 스스로 자신들의 월등함을 자랑하며 기득권을 행사하여 자신들의 이름을 높이는 거짓된 의와 이 세상 썩은 영광을 추구하는 데에 집착하여 자신들에게만 속한 집단적 종교 놀이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들의 영적 무지와 교만에 대하여 예수님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41), 즉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도 전에 율법으로 눈을 떴다고, 본다고 하고, 구원받은 자로 자처하는 그들이 바로 죄와 어둠에 갇혀 있는 소경이며 죄인 그대로 심판에 이르게 됨을 지적하신 것이다. 주님은 너희가 소경이기에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요 9:21)라고 그들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죄 속에서 죽는다고 선언하셨다. 우준한 그들은 자신들이 죄와 사망에 묶어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아래 놓여있음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목이 굳은 끈질긴 고집으로 끝까지 예수그리스도를 배척하며 거역하며 핍박하여 죽이려고 악한 음모를 꾸민 자들이다. 스스로 하나님을 안다고 열심히 제사로 섬기며 율법을 행하였지만, 사실은 이 세상 썩은 의와 영광을 추구하는 우상 숭배자였으며, 율법을 지킨 것이 아니라 율법으로 진리를 대적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법으로 악용한 독사들이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차라리 맹인 됨을 인정하면 그래도 구원의 가망이 있으련만’, 맹인이면서도 본다고 고집하고 여전히 죄를 행하고 있으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으며”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요 8:24), 즉 죄 사함이 없는 영원한 죽음을 선언하신 것이다.
바울은 이와 같이 율법으로는 박식하며 스스로 지혜 있다고 자랑하나 실상은 진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영적 소경임을 가리켜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자신들의 영적 구원과 영생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으며, 예수님이 선포하신 구원과 생명의 말씀을 전혀 알아듣지도 받아들이지도 아니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한 법마저 자신들의 의를 세우는 방패로 삼고, 자신들의 율법 지킴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욕되게 하며,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대적하며 진리를 말살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행을 저지른 ‘독사의 새끼’들이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들의 죄악을 폭로하는 십계명을 주어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자들이며, 자신을 우상으로 섬기며, 진리의 영을 죽이는 하나님마저 살해하는 ‘살인하는’ 자들임을 보여주셨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도덕 질하는’ 좀 먹는 벌레이며, 이 세상에서 으뜸이 되고자 ‘세상과 간음하는’ 간음자들이며, 군대 귀신들린 광인과 같이 쇠사슬로 묶여놔도 감당이 안 되는 목이 굳은 ‘독사의 새끼’들임을 마태복음 23장에서 철저하게 폭로하셨다. 그리고 그들을 향하여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지옥의 판결을 어떻게 피하겠느냐”(마 23:33) 라고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는 마귀의 자식이며 살인자임(요 8:44)을 지적하신 것이다. 유대인들은 바로 우리 모든 죄인의 대표이다. 우리는 본래 마귀, 뱀의 유혹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타락함으로 마귀의 자식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패역한 죄인들이다. 바울의 말대로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어“(21-23) 섬기는 손색이 없는 ‘마귀의 자식’들이었다.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25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 세상에서 피조된 사람, 버러지. 금수, 모두가 이 땅의 산물이며 그들의 특징은 썩어지고, 변하며, 유한한 것이며, 멸망으로 없어지는 것들로 정해져 있다. 천지창조는 하늘나라의 계시와 모형이다. 그분은 하늘나라의 영원한 실상, 즉 창세전 ‘하늘에서 이룬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짐을(마 6:10) 나타내시기 위해 물질세계를 창조하셨다. 이 세상은 태초로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잠시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나타내시며, 이루시며, 어떻게 그분이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을 입혀주시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드셨다. 처음부터 인간은 영원을 사는 하늘나라의 영적 존재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 땅의 티끌로 만드셔서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없음’의 존재로 정하시고 죽음과 죄 아래에 가두어 두셨다.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갈 3:22). 때문에 인간을 포함한 이 세상은 하늘나라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잠시 피조된 것으로 반드시 종말로 없어지는 존재이다.
이 세상과 역사는 오직 하나님의 ‘의’ 와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또한 영원한 진리이신 주 예수그리스도를 설명하고 나타내시기 위해 존재하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일으키시는 모든 일들은 협력하여 하나님의 의와 영광을 나타내시며 이루시는 선한 뜻, 즉 하나님의 복음을 담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된 사람들이다.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사 43:7,21). 즉 그분이 먼저 자신의 영광과 사랑을 나타내시기 위해 “창세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으며” (엡 1:4),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엡 2:10) 들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그분의 은혜의 영광과 사랑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구속의 대상으로 지우심을 받았으며, 때문에 우리를 이 세상에서 구원하여 은혜를 입혀주는 일이 그분의 행사이며, 영광의 성취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 일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이라고 반복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요 12:28 / 17:1).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그분을 드높이 찬양하는 영적 예배와 교제는 성도의 생명줄이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시는 이 안에서 우리를 받아들이신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케 하려 하심이다”(엡 1:6).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 오, 주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자비는 영원히 지속됨이라”(시 106:1). 우리의 신앙생활이 바로 그분의 은혜와 영광을 드높이며 찬양하는 것임을 확실히 말씀해 주고 있다. 그럼에도 인간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1:21-23) 라고 바울은 인간의 죄악된 본심을 지적하고 있다. 즉 썩지 않고 영원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인데 인간은 영원한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입혀주시는 하나님의 영광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이 세상에서 썩어서 없어지는 사람이나 짐승들의 형상을 우상으로 섬기는 패역망덕한 죄악들을 쏟아내더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1:25)라고 인간의 패역함을 지적한 것이다.
예를들면, 이스라엘의 4000여 년의 역사를 보면, 그들은 줄곧 하나님께서 그토록 미워하시며 증오하시는 우상숭배로 하나님의 징계와 진노하심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를 보면, 열왕기하 21장에서 므낫세는 아버지 히스기야가 죽자 이내 우상의 산당을 세우고 바알과 아세라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을 쌓고 자기의 아들들을 우상의 제단에 불살라 바치기도 하고, 점을 치고, 사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무당을 끌어들이는 악들을 서슴없이 행하여(왕하 21:1-10)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한 것이다. “내가 나의 기업에서 남은 자를 버려 그 대적의 손에 붙인즉 저희가 모든 대적에게 노략과 겁탈이 되리니 이는 애굽에서 나온 그 열조 때부터 오늘까지 나의 보기에 악을 행하여 나의 노를 격발하였음이니라”(왕하21:12-15). 그렇게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하나님의 지키심과 은혜를 뿌리치고 하나님의 영광을 짓밟고 다른데서 힘을 빌려 자신들을 세우려고 이방 우상 앞에서 절하며 제사를 드리는 악행들을 행하여 왔다. 신약에 와서 그들은 저회 조상들보다 더욱 패역하고 지독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친히 저회 앞에 나타나셔서 당신이 바로 메시아 이심을 수많은 증거들로 나타내어 보여주셨음에도 그들은 알아보지도, 듣지도 않았고, 오히려 증오하고 핍박하는 광적인 기세로 예수그리스도를 배척하고 멸시하였으며, 의로운 구원사역을 극구 대적하며, 자신들의 선악구조로 하나님의 아들을 ‘죄인’이라 판단하고 정죄하며, 율법으로 쌓아놓은 헛된 의와 영광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려는 악독한 궤계를 꾸몄으며 결국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데까지 간 것이다.
바울은 이와 같이 진리를 대적하는 사악한 자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1:24-25)라고 그들이 스스로 심판의 근거를 쌓아서 스스로 멸망하도록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셨으며, 절대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제시한 것이다. 이들이야말로 율법을 지킨 자가 아니라 율법의 진의를 거슬러 율법을 범한 자들이다. 즉 자신을 신으로 섬기는 우상 숭배자이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영광과 이름을 갈취하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자들이며; 안식일을 지킨다는 구실로 생명을 죽이는 외식하는 자들이며; 기득권을 행사하여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세상과 간음하는 자들이며; 진리의 말씀을 도용하여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고 약한 자를 억압하는 절도와 강도이며; 약한 자와 가난한 자와 병자들을 업신여기고 죄인이라 정죄하고 배척하는 난폭한 폭군이며; 자신들의 영광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하나님을 살인하는 살인강도라는 죄악이 천하에 드러나도록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셨다는 무서운 심판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두 번째로 바울이 지적한 것은, 바로 이 세상 육신에 속한 모든 인간에게 나타나는 죄의 본성이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 중에서 유일하게 인간만은 하나님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시고, 자연과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는 지배권을 주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즉 그 풍성한 복과 생명은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 의존자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만 유지될 수 있게 하셨다. 그분은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고 말씀으로 주관하시며, 말씀이 곧 생명이시기에 그분의 말씀에 대한 거역은 곧바로 하나님의 생명력에서 끊어져나가는 죽음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침해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희는 창조주이신 나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나의 말에 순종할 때에만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음을 알게 하는 의미에서 ‘선악과’에 ‘먹지 말라’는 가시적 명령을 붙여주셨다. 하지만 인간은 이 땅의 티끌로 지음을 받은 이 땅에 속한 존재로 이 땅의 것을 추구하는 탐심을 가지고 있기에 영이신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도, 또한 생명의 말씀을 이해할 수도 지킬 수도 없는 것이다. 오히려 육에서 나오는 탐심으로 하나님처럼 ‘신’이 되려는 욕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함으로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것이다. 인간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사는 죄인이 되어 사망을 잉태함으로 생명을 파괴하기 시작하였고, 땅도 함께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놓음으로 다스리는 자가 아니라 죄의 노예가 되어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게 된 것이다. 축복과 번성이 아니라 죄가 범람하여 심판에 이르렀으며 (노아 홍수 심판), 저주받은 땅에서 노예로 살다가 멸망의 지옥으로 떨어지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된” 아담의 후손들이다. 인간은 마귀의 본심을 쫓아 썩어서 없어질 육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쌓아서 이 세상에서 신이 되려 하는 어리석음과 거짓된 지식으로 사망과 지옥의 무저갱에 던져지고 있다. 그리하여 바울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었다"라고 말하며,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1:25)라고 말하는 것이다.
오직 육신만을 위해 사는 인간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눈에 보이게 유형적으로 나타내시지 않는다면, 절대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하나로 동행하시는 놀라운 은혜와 무한하신 사랑의 현실을 영적으로 감지할 수도 알 수도 믿을 수도 없다. 그리하여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각종 형상으로 만들어 놓고 거기에 하나님을 결부시키며 하나님의 권능이 그 형상에 부착되기를 원하여 그 앞에 절하며 제사드리는 망령된 짓을 하고 있다. 이것이 곧 우상 숭배의 기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자신을 신으로 착각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인간은 마귀와 한 몸이 되여 이 세상 마귀를 남편으로 섬기는 자가 된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편이 되어 자신들의 탐심과 욕망을 들어주고 채워주는 허탄한 신을 추구하며, 이 땅의 썩어질 것으로, 즉 눈에 보이는 나무, 돌, 금, 은, 짐승들로 신들을 조형화하여 그 앞에 절하며, 소원을 빌며, 섬기는 우매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곧 하나님의 신성에 대한 치욕적인 모독이며 불경건의 허위로 하나님의 영광을 손상시키는 망령된 행위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첫 계명에서 하나님 외에 그 어떤 것도 섬기지 말며 하나님을 너 자신에게만 국한시키는 우상으로 만들지 말라고 명하셨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출 20:3-5). "두렵건대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위하여 아무 형상 대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되 남자의 형상이라든지, 여자의 형상이라든지, 땅 위에 있는 아무 짐승의 형상이라든지, 하늘에 나는 아무 새의 형상이라든지, 땅 위에 기는 아무 곤충의 형상이라든지, 땅 아래 물속에 있는 아무 어족의 형상이라든지 만들까 하노라”(신 4:16-18)라고 분명하게 썩어 없어지는 이 땅의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의 영원한 신성을 더럽히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하지만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온갖 더러운 우상숭배는 역사상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우매한 인간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함으로 자신들의 보기에 좋은 대로 자신을 위한 오만가지의 신들을 만들어 놓고 섬기며 소원을 빌고 있다. 인간의 마음은 무모와 어리석음과 무지와 우매함에 젖어 있기에 허망한 것들을 하나님으로 상상하여 섬긴다. 하늘에 있는 태양과 별들을 신으로 형상화하여 숭배하며, 땅에 있는 짐승들을 신으로 섬기며, 인간의 형태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자신들의 육적 욕망을 이루기 위해 그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고 그것이 괴물의 형태이든 상관없이 마구 끌어다가 신이라 부르며, 여러 이방 신을 혼합시키는 음란한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 그리하여 바울은 이와 같은 패역한 음란을 ‘동성연애’로 표현한 것이다. 인간은 타고나면서 ‘공허’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그 공허에 자신들이 원하는 것들을 채우려고 하는 욕망과 탐심이 작동 함으로 천성이 강렬하게 자신을 위한 우상 숭배에 기울어져 있다. 즉 생명이 없는 물질과 죽음으로 정해진 사람과 짐승들로 신의 형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은 인간의 부패한 죄의 본성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영이신 하나님을 육으로 보이는 형상으로 추구하는 것이 곧 불 경건이며 모독이다. 영이신 하나님을 물질적인 것으로 볼 수 있는 형상으로 만들며, 썩어질 나뭇조각이나 돌, 혹은 황금 조각과 같은 것으로 만들 때 하나님의 영광은 허상으로 더럽혀지기 때문이다. 이르기를, “과연 그들의 모든 행사는 공허하며 허무하며 그들의 부어만든 우상은 바람이요 허탄한 것뿐이니라”(사 41: 29). 이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위엄에 대한 치욕적인 모독이며, 하나님의 신성을 더럽히는 일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가장 큰 침해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1:22-25)라고 정확하게 인간의 우매한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있다.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25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하나님은 처음부터 인간에게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 완전하지는 그 어떤 기능도 역할도 주지 않으셨다. 죄인으로 태어난 인간은 죄인의 역할을 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믿음을 선물로 받아서 그분이 이루어주신 십자가 구원을 두 손을 들어서 받는 것뿐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 15:10), 즉 그분이 먼저 당신의 택한 백성에게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넘치게 부어 주시어 그분을 믿는 믿음을 주심으로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아 생명을 입었음을 고백한 것이다. 하나님은 친히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옘 7:23)라고 말씀하셨으며,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라고 성도는 이 세상 멸망 중에서 하나님의 택정함을 입어 그리스도의 것으로 ‘불러내어진’ 하늘나라 존재임을 밝히셨다. 택정함을 입었다는 것은, 내가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나를 당신의 자녀로 이미 택하여 놓으셨다는 말씀이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4-5) 함과 같이 우리는 창세전에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택정함을 입은 자들이기에 우리를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셔서 아버지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는 말씀이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이것이 은혜를 입어 구원으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의 현실이다. 이는 나의 선택, 나의 의지, 나의 노력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정하셨기에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으로 부르셔서 그리스도의 것으로 영화롭게 하여 주셨다는 것이다. 즉 이 세상 육신에 속하여 음란한 우상숭배로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여있는 지옥의 심판에서 구원받은 성도가 어찌 하나님의 그 위대한 사랑과 한없는 은혜를 찬양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하는 감격으로 바울은 갑자기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이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간은 죄인으로 태어났기에 육의 본능으로 죄만을 생산해 내는 패역한 자들이다. 무지하고 이기적이며, 바른길을 벗어나 제멋대로 뻗어나가 탐심의 배를 채우는 패역한 자로 열린 무덤과 같이 악취만 뿜어내는 송장과 같은 존재이다. 그중에 구원받기로 작정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와 주셔서 이 세상 죄와 사망에서 불려내어 은혜를 입혀주셔서 당신의 영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당신의 아들로 탄생시켜 주신다. 바울은 자신의 체험으로 그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입은 자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갑자기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이라고 외친 것이다. 바울의 이와 같은 감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는 구절이 롬 11:32-36 절에서도 나온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 함에 가두어 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기 위함, 즉 순종치 아니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긍휼이 입혀진다는 놀라운 또한 이해하기 힘든 논리이다. 바울은 이내 그렇게 하심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라"라고 찬송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11: 33). 이는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향한 긍휼과 은혜와 사랑을 나타내시기 위해 잠시 인간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셨다는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을 말하고 있다. 인간은 다만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대한 지혜와 은혜에 오직 찬양으로 화답함을 제시하고 있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11: 34-36). 즉 모든 인간을 죄 아래 가두어두심이 바로 하나님의 위대한 지혜이며, 우리에게 향한 한없은 은혜와 사랑임을 찬양한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 법으로도 하나님의 법으로도 철저한 죄인이기에 저주의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는 것이 지당한 일이다. 우리는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끝없는 패역함과 범죄함을 보면서 그들의 모습이 곧 우리의 모습이며,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한 열매를 맺을 수가 없음으로 불사름에 마땅한 가지임을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그 불사름의 멸망에서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예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뒤집어쓰시고 회생 제물이 되시어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았기 때문이다. 그 십자가 구원은 죄인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들을 배제하여 전적으로 하나님 홀로 성취하여 아무 조건과 대가 없이 오직 사랑과 은혜로 입혀주시는 죄에서의 구원이며 하늘나라를 사는 영생이다. 우리의 자격이나 열심과 노력의 정도에 따라 얻어지거나 취소되거나 중도에서 탈락하는 그런 조건적인 구원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속성을 따라 우리에게 임한 구원은 영원한 것이며 영원한 생명이기에 바울은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이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