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19-20)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롬 1: 18-20
19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사도 바울은 서두에서부터 인간의 사악한 죄악을 폭로하고 있다. 즉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는 철저한 죄인이며, 인간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들은 진리를 거역하는 불의, 불 경건이며,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여있음을 여지없이 폭로 지적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인간 마음 안에서 역사하심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고 선포한다.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1:19). 이에 대하여 바울은 19절에서는, 특별하게 유대인을 향하여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라고 하나님께서 저회에게 보이셨다고 말하고, 20절에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할 것 없이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으며, 만물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고 존재하고 통치되는 그분의 절대적 주권을 부정할 수 없음을 강력하게 피력하고 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1:20). 즉 죄인을 저희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의의 뜻은 창세전에 하늘에서 이루신 뜻이 이 땅에서도 반드시 이루어지는 절대적 진리이며 섭리이기에 그 어떤 피조물도 핑계치 못하는 하나님의 역사임을 강력하게 제시하고 있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셨는가?
19절: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속에 당신의 택한 백성에게 ‘하나님을 알만한 것’, 즉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의 백성으로 택하셔서 언약과 약속으로 구원자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복음’을 창세로부터 만물의 창조로 계시하여 보여 주셨다는 말씀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1:17).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택하셔서 죄인에게 향한 구원과 당신의 한없는 사랑을 십자가 구원의 사역으로 보여주셨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셔서 4000여 년이라는 구약 역사를 주시지 않았더라면, 육적 이스라엘의 패역한 역사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과 육의 본능적 죄악을 뼈저리게 깨닫지 못하였을 것이다.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불순종하고 대적하고 거역한 이스라엘의 역사는 바로 우리 인간의 사악한 죄의 본성과 부패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거울이며, 그럼에도 끝까지 구원의 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와 사랑과 긍휼과 자비와 용서와 인내를 투명하게 보여준 하나님의 역사이다. 만약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악하고 더러운 죄성을 깨닫지 못하였을 것이고,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시며, 어떻게 불가능한 죄인을 사랑하셨으며, 그 사랑이 얼마나 위대하시며 어떻게 우리에게 실행되며, 우리에게 향한 십자가 구원의 사랑과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또한 왜 그 구원이 선물이며 은혜인지를 깨닫지 못하였을 것이다. 또한 율법이 없었더라면 죄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을 것이고 은혜와 사랑의 복음을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이스라엘 역사를 기록한 구약 전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다’(요 5:39)라고 성경의 증거를 제시하셨다. 즉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과 구약 전체가 바로 예수님에 대한 증언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한마디로 구약 성경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계시하는 구속사’이다. 바로 아버지 사랑의 본체인 예수그리스도를 기록하고 있으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인에게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펼쳐나가고 있다. 창세기 첫 서두에서부터 그리스도가 ‘빛’으로 등장하여 ‘말씀으로’ 세계가 창조되고, 신약 요한복음에서 그 ‘빛’과 ‘말씀’이 곧 예수그리스도임을 밝히고, 그로 말미암아 만물이 창조되었고, 그 어떤 것도 그리스도 없이 존재하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고 증거하고 있다(요1:1-4). 사도 바울이 증거하기를,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계셨느니라”(골 1:15-17). 이와 같이 바울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하늘나라의 비밀을 당신의 백성에게 나타내어 보여주시며 영생을 소유하게 하심으로 절대로 핑계치 못하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의 복음을 제시하고 있다.
바울은 하나님의 강권적 은혜로 죄인에게 임하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입혀주시는 하나님의 복음은 창세전에 하늘나라에서 묵시로 이루어 놓으신 의로운 뜻이며, 창세로부터 만물을 주관하시는 권능과 주권으로 당신의 백성에게 계시하여 보여주시며, 십자가 구원 성취로 당신의 백성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당신의 의로운 아들로 탄생시키는 은혜를 입혀 주시기에 절대로 핑계할 수 없음을 강력하게 피력하고 있다. 즉 예수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친히 우리를 찾아와 주셔서 우리에게 향한 아버지의 사랑의 심장을 열어서 보여주셔서 그분이 바로 나의 영원한 ‘아바 아버지’가 되심을 실제로 체험하고 영생을 소유하는 증거를 낳게 됨으로, 바울은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1:20)라는 확신을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창세로부터 만물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에게 보여주신 것이 바로 당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제시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시며, 그 능력은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 주시고 십자가에 희생 제물로 못 박히게 하심으로 당신의 백성을 예수 사랑 안에서 예수 생명으로 살려내시는 구원과 생명임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 1:8).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1:17). 이와 같이 바울은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에 대하여 알 만한 것을 당신의 백성에게 환히 드러내 보여 알게 하셨는데(1:19),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 믿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이 분명히 보이는 증거로 나타나 믿게 하시며 소유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가리킨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완전히 계시하여 보여주시고 알게 하시고 소유하게 하신 분은 오직 당신의 독생자이신 예수그리스도이시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 아버지와 본질적으로 동일하신 분으로서 본체가 하나이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 하나라는 뜻은 아버지와 아들은 한마음이며, 그 속성과 성품과 능력, 영광과 권세와 모든 면에서 동등하시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에서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자신을 철저히 낮추시는 ‘인자’로 인간의 육신을 입으시고 우리에게 오셔서 구원의 사역을 통하여 아버지를 계시하여 주셨다. 그분은 당신의 권능으로 각종 질병에 묶여있는 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긍휼과 사랑으로 고쳐 주셔서 정결한 자로 자유한 자로 만들며, 죽은 자를 부활시키며,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하늘의 떡을 먹이시는 수많은 능력들을 행하셨으며,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과 신성을 우리에게 나타내어 보여주셨다. 즉 예수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신 목적과 의도가 바로 하나님 아버지를 온전히 계시하시며, 그분의 영광을 세상에 나타내시며, 그분의 위대한 사랑과 충만한 은혜와 전지전능하신 능력을 보여주시며,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우리에게 임하며, 어떻게 죄인이 저희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았는지를 보여주시기 위하여 수많은 기적과 이적을 행하시고 저주의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게 하신 것이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죄를 감당하시기 위해 죄인이 되어 이 세상으로부터 온갖 멸시와 조롱과 박해를 받으셨으며,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자신을 십자가에 못을 박음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도말하여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주심으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나타내셨다. 그리하여 주님은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셨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순종과 십자가 죽음으로 하나님의 신성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즉 아버지의 한없는 사랑과 용서와 자비와 긍휼과 오래 참으시는 선하심과 의로우심이 만 백성에게 전달되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는 하나님의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된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향한 하나님의 의로운 구원은 하늘에서 이루신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일이기에 절대로 변경되는 일이 없음을 강조하여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1:20)라고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제시하고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전개되는 모든 일은 이미 하늘나라에서 이루어진 묵시대로 펼쳐지는 섭리이며, 그분은 본체가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이시며, 그분은 정하신 뜻대로 역사를 주관하시며 절대로 중도에서 포기되거나 변경되는 일이 없으시며, 인간의 그 어떤 것도 개입할 수가 없는 하나님 홀로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구원과 생명에 이르는 유일한 길을 예수그리스도로 정하셨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라고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에게로 나아갈 수 있다고 선포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이다. 성경 전체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이다. 그분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며”,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며”(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함과 같이 그분의 본체가 구원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시며, 절대적 진리이시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하는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된다”는 그 ‘만물’은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전지전능하신 능력과 권능으로 다스리시는 이 역사 전체가 하나님의 복음을 나타내고 있음을 아울러 지칭한 것이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즉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은 태초로부터 보이지 않게 영으로 계시하시며, 영으로 감지하게 하시며, 영으로 소유하게 하심으로 “영원”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바로 우리에게 입혀지는 영원한 생명, 즉 영생을 제시하고 있다. 오직 영에 속한 자만 말씀으로 창조하신 만물을 통하여 말씀으로 하나님을 감지하게 하시며, 생명과 진리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알아보는 영적 눈을 뜨게 하시며, 그분을 믿는 믿음을 주셔서 믿고 영접하여 영생을 입혀주신다. 그분은 영으로 우리 안에 뚫고 들어오셔서 하나가 되는 연합을 이루어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됨으로 성도는 그분을 떠날 수도 그 어떤 것으로도 “핑계치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땅에 속한 자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살고 있음에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는 영적 계시를 주시지 않았기에 그들은 만물이 계시하는 하나님의 복음을 알아볼 수도, 이해할 수도, 믿을 수도 없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마 13:11-13).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계시하는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눈으로 보게 하셨고, 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었으며, 수많은 기적과 이적으로 확실한 증거까지 보여 주셨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선민으로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며 율법 말씀을 통달한 그들이었지만 구원자 예수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였고 영접하지도 않았다. 반대로 사사건건 메시아를 대적하고 증오하는 광적인 기세로 결국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살인자 마귀가 된 것이다. 사도 바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그는 회심 전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며 율법적 행위로 하나님을 섬기는데 흠이 없다고 자고 하였지만 오히려 율법으로 메시아를 핍박하고 대적하는 괴수였다. 비록 육의 지성으로는 하나님에 대하여 박식한 자였지만, 성령의 계시와 거듭남의 체험이 없었기 때문에 영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도 그분의 뜻을 헤아릴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후 진리를 깨달은 바울은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고후 3:6), 율법은 ‘죄와 사망에 이르게 하는 법’(롬 8:2) 이라고 자신의 뼈저린 체험을 고백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오직 자신에게 속한 자에게만 자신을 영으로 계시하신다. 그리하여 바울은 창세로부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만물을 주관하시는 역사로 우리 마음속에 분명히 나타나 보여 주시고 알게 하심으로 그분의 강권적으로 역사하시는 능력과 은혜를 핑계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그분은 스스로 태초로부터 계시는 시작과 끝이 없으신 영원하신 분이시며,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자신의 뜻대로 만물을 통치하시며, 만물은 그분의 목적과 의도에 따라 존재하고 움직이고 있기에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1:20) 라고 우리에게 향한 구원사역은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만물’이 동원되는 그 위대한 구원의 능력과 사랑임을 강조하여 표현한 것이다. 즉 그분은 우주 창조를 통하여 자신을 인간에게 나타내시며, 만물을 주관하시는 역사를 통하여 자신이 택한 백성에게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넘치게 부어 주시어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가 되심을 알게 하시며, 믿게 하시며, 소유하게 하심을 강력하게 피력하고 있다.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
바울이 말하는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은”, 창세전 하늘나라에서 묵시로 이루어놓으신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복음을 가리키며, 그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시며”(1:16), 그 능력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이다. 이는 만물의 창조 때부터 우리에게 복음으로 나타내어 보여주셨기에 절대로 핑계치 못한다고 확실히 밝히고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그때부터 보이지 않는 그의 속성,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을 통해 분명히 나타나서 알게 되었으니 이제 그들은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1:20). 그리면 바울이 말하는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않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예수님은 본체가 하나님이시며 만물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이시다. 그런 분이 짐승과 방불한 죄인의 육신을 입고 이 죄악된 세상에 내려오셔서 온갖 멸시와 조롱과 천대와 박해를 받으시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이 되셔서 저주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그렇게 무력하게 죄인들의 손에 이끌려 저주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이 세상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과 생명을 주시는 능력이 되신 것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이는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라고 외친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오직 당신의 백성에게만 열어 주시는 영적 계시와 선물로 주시는 믿음으로만이 그렇게 나약하게 벌거벗은 모습으로 저주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바로 나의 구원자이시며 생명이심을 알아보게 하시며, 믿게 하시며, 소유하게 하심으로 믿는 자에게는 저주의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이 구원의 능력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 육신에 속한 자들에게는 그렇게 무력하게 십자에 매달려 죽으신 예수가 구원의 능력이 되심을 알아볼 수도, 인정할 수도, 믿을 수도 없기 때문에,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으로”(고전 1:23-24) 보인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십자가 복음은 오직 택함을 받은 성도 안에서 역사하셔서 이 세상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생명을 입혀주시는 강권적인 은혜로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연합을 이루시는 증거를 낳게 됨으로 성도는 절대로 그분의 은혜를 거부하거나 핑계치 못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면,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는 철두철미한 율법사상의 소유자였던 바울은 회심 전 예수와 교회를 핍박하며 성도들을 옥에 가두고 죽이는 하나님의 복음을 대적한 원수였다(행 9:1-9). 자신의 말대로 그는 “훼방 자요 핍박 자요 포행 자였다”(딤전 1:13). 그렇게 예수를 핍박하는 괴수인 바울에게 부활의 예수께서 찾아와 주셔서 그의 죄악을 멈추게 눈을 멀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심으로 오직 십자가 복음을 위해 사는 사도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로 구원받은 바울은 자신에 대하여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고전 15:10)라고 고백한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을 말살하려는 이단의 괴수인 바울이 기적적으로 예수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자신의 의지와 선택과 전혀 상관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와 절대적 주권과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만물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능력과 오직 사랑과 은혜로 죄인을 구원하여 영원한 생명을 입혀주시는 그분의 위대한 능력과 신성이 우리에게 분명히 나타내어 보여주시며 소유하게 하심으로 그분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는 절대로 그분의 능력과 신성을 거부할 수도, 막을 수도, 부인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절대적 진리 이심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하는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이 구절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감지할 수 있다는 ‘자연계시’ 혹은 ‘일반 계시’로 해석하는 구절이 아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기에 만물에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나타나 있다. 하지만 타락한 인간은 그 죄로 말미암아 만물이 계시하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스스로 알 수가 없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는 방법을 예수그리스도로 정하셨다. 그분이 우리 인간의 육신을 입고 친히 우리를 찾아와 주셔서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의 영적 눈과 귀를 열어주셔서 그분을 알아보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따르게 하시며, 친히 우리 안에 뚫고 들어오셔서 당신과 하나로 동행하는 사귐과 교제 속에서 그분이 바로 나의 “아바 아버지”가 되심을 알아보는 믿음을 주셔서 그분의 자녀로 새롭게 잉태하는 성령의 인 치심을 주심으로, 성도는 그분의 강권적인 은혜를 절대로 거부하거나 핑계할 수가 없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은 우리가 눈으로 보고 감지할 수가 있다. 그런데 바울은 분명히 우리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이라고 영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말하고 있다. 즉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우리 속에 여 주셨다’는 것은 그분이 친히 성령으로 우리 안에 뚫고 들어와 하나로 연합을 이루는 증거를 낳게 됨으로 절대로 핑계치 못함을 말한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1:19).
영으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
하나님은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시고, 유독 인간만 삼위 하나님께서 상의하여 만드셨다. 오직 인간만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께 의존하여 함께하는 연합의 관계 속에서만 영원한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정하셨다. 때문에 그분은 삼위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신다. 그분은 영이시기에 영으로 역사하시며 영으로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시기에 이 세상에 나타나 보이는 직감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울이 말하는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돤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반 계시, 즉 밖으로 나타나 보이는 창조물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알거나 감지하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구절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타락으로 하나님을 향한 영이 죽고 세상을 향한 육이 살아서 만물을 오직 자신의 유익에 따라 ‘자아’에서 출발하여 추리하고 판단하고 인식하기 때문에 만물이 계시하는 하나님을 알 수도 또한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즉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만물 속에 담긴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사 59:2).
인간은 타락으로 그 영이 죽어있는 상태이기에 인간에게 하나님을 알만한 만물을 보여주어도, 하나님 자신이 친히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인간 앞에 나타나 보여주어도, 인간 스스로는 절대로 하나님을 알 수가 없다. 만물을 창조하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친히 육신을 입고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으로 오셨음에도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였고’, ‘영접하지도 아니하였다’라고 사도 요한은 복음서 첫 시작에서 이 세상 어둠에 속한 인간의 무지를 지적하고 있다. 참 빛이시며 참 생명이시며 진리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 어둠에 갇혀있는 죄인을 구원하여 하늘나라의 빛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인간을 찾아오셨다. 그럼에도 이 세상뿐만 아니라 그렇게 목숨 걸고 율법과 제사로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며 메시아를 손꼽아 기다리던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다고 자고한 유대인들마저 메시아이신 예수를 알아보지도 영접하지도 아니하였다(요 1:11). 즉 인간은 죄로 그 눈과 귀가 어둠에 갇혀있는 상태이기에 그 무엇을 보여주어도, 그 어떤 것을 들려주어도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땅에 속한 육신으로는 영이신 하나님을 알 수도 인식할 수도 깨달을 수도 없도록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셨다.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 3:11).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 55:8).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인간의 한계를 정해놓으셨기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다"라는 말씀이다. 때문에 인간은 만물을 다 보여준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영을 열어주지 않으면 절대로 창조주 하나님을 스스로 알 수도, 인식할 수도 없음을 성경 전체가 증거하여 주고 있다.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2).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고 믿는 일은 인간에게서 발휘되는 일이 아니다. 처음부터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티끌과 같은 ‘없음’의 존재이며, 이 땅에서 먼지같이 허무한 인생을 살다가 결국 먼지로 없어지는 무익한 존재로 정하셨기에 이 땅의 티끌로 인간을 만드시고 다시 흙으로 되돌림을 받아 없어지게 하셨다. 즉 인간의 결국을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로 정하셨다. 그러므로 흙을 입은 육체는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무익하다(요 6:63). 육은 날 때부터 죄의 노예가 되어 “죄의 범을 섬기는”(롬 7: 25) 자이다. 죄인으로 태어난 육은 오로지 내 육의 편리와 유익과 탐욕을 채우는 ‘자아’를 세우는데 출발점을 두고 있기에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일수도 또한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유대인들이 끊임없이 예수님의 구원사역을 대적하는 패역함을 보면서, 우리 인간의 영적 무지와 혼적으로는 영이신 하나님을 알 수도 교제할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예수님은 유대인 무리에게 반복하여 자신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며, 구원자이시며 영생이심을 수많은 이적과 표적으로 보여주셨다. 그럼에도 그들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있음을 선포하신 것이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33).
인간은 흙을 입은 이 땅의 존재이기에 본능적으로 이 땅의 것으로 사물을 판단하고 추리하고 이해하는 타락한 죄성을 가지고 있기에 육의 지성으로는 절대로 영이신 하나님을 알 수 없으며 하늘에서 내려온 진리의 말씀을 이해할 수도 없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을 구하라는 의도로 자신들의 죄를 깨닫게 하는 선한 율법을 주셨음에도, 육으로 받아들이고 육적으로 지키고 행하여 자신들의 의와 공로를 쌓아 이 세상 영광을 추구하는데 집착하고 있었다. 율법이 그들에게는 도리어 생명과 진리이신 예수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는 걸림돌이 되고 법범자가 됨으로 율법 지킴으로 심판의 근거를 쌓은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 죄로 인하여 만물이 계시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과 신성을 감지할 수가 없다. 한 치 앞도 알지 못하는 인간의 지식과 지혜로 어찌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있으며, 이 땅의 유한한 것으로 어찌 하늘나라의 무한한 진리를 안다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자신의 운명과 죽음도 예측 못하는 인간이 자연을 보고 하나님을 알고 감지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이르기를,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어찌하겠으며 음부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그 도량은 땅보다 크고 바다보다 넓으니라”(욥 11:7-9) 함과 같이 티끌로 지음을 받은 존재가 어찌 눈에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볼 수 있다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영에 관한 일이며, 이 땅의 지혜와 지식으로 깨달아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전 1:21)고 하였다. 즉 육신을 입은 인간은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있기에 절대로 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오묘하고 깊은 속성을 혼적 지성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사정은 하나님의 영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 2:11),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4). 그리하여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은 만물을 통하여 보이지 않게 영으로 나타나시며, 오직 영으로 그분을 아는 일이며, 영으로 그분을 믿어 죄에서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기에 바울은 특별히 “보이지 아니하는 것”, “영원하심”이라고 표현하여 우리가 받은 구원은 영으로 입혀지는 “영생”임을 제시한다. 영생을 입은 성도는 그 무엇으로도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의 능력과 우리에게 사랑으로 입혀지는 은혜를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오직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 성령으로 새롭게 거듭난 성도만이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영으로 바라보고 영으로 인식하기에 그 만물이 계시하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감지할 수가 있으며, 하나님을 읽어낼 수가 있으며, 만물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교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그분의 구원 사역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감지되고 인식되고 깨달아지는 것이 아니다. 감추어진 것으로 보이지 않지만 실상으로 성도 안에 뚫고 들어오셔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능력과 신성이 성도에게 교회에 분명히 보여 나타나게 되며, 때문에 성도는 절대로 강권적으로 입혀지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저항할 수도 핑계할 수도 없음을 말한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도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고전 15:10)라고 고백한 것이다.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19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하나님께서는 죽음의 심판에 던져진 온 인류 중에 오직 당신에게 속한 자만 영적 눈과 귀를 열어주셔서 영으로 하나님을 인지하고 인식하며 영으로 거듭나 영으로 영원히 사는 생명을 입혀주신다. 사도바울은 이 영의 진리를 깨닫고 창세전에 우리의 영이 그리스도 생명 안에서 이미 택함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 3-4).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1:11-12).
그러므로 바울이 말하는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의 ‘저희’는, 일차적으로 이 세상 속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 즉 성도를 가리키며, 그들은 창세전 이 세상에서 구원받기로 영적으로 예정을 입은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존재이기에 그들이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그 죄악들이 아무리 흉악하다 할지라도 택함을 받았다는 그 이유 하나로 강권적으로 은혜를 입혀주시며, 십자가 구원의 의를 믿게 하시며, 당신의 아들로 영으로 거듭나 당신과 하나로 함몰하여 영원을 사는 영생을 입혀주심으로 성도는 절대로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를 핑계할 수 없으며, 반드시 당신의 마음에 합한 아들로 만들어내심을 강조하여 “핑계치 못한다”고 말한 것이다. 사도바울이 극적으로 예수와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를 살해하는 일에 가담한 열성 파였지만, 주님이 그를 친히 찾아와 주셔서 부르셨기에 은혜를 입어 예수 십자가 복음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순교의 사도로 세워진 것이다. 때문에 바울은 자신의 이와 같은 뼈저린 체험으로 하나님의 강권적인 부르심에 성도는 절대로 항복하게 됨으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라고 감개하게 외친 것이다.
둘째로, 인간은 이 땅의 티끌로 만들어진 피조물이며 타락으로 그 영이 죽은 상태이며,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의 육체를 죄 아래 가두어 두심으로 육신으로는 절대로 영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볼 수 있거나, 알거나, 인식하거나, 깨달을 수가 없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땅의 티끌로 ‘없음’의 존재로 죽음을 정해 놓으시고, 잠시 죄 아래에 가두어 두심은 오직 “주 만이 영존할 것임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다. 이 세상과 역사는 오직 하나님의 ‘의’ 와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또한 영원한 진리이신 주 예수그리스도를 설명하고 나타내시기 위하여 존재하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일으키시는 모든 일들은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뜻을 담고 있다. 즉 예수그리스도 십자가 구원이라는 엄청난 하늘의 묵시를 만물의 창조와 역사로 나타내셨으며, 오직 구원을 주시기로 정하신 당신의 백성에게만 보여주시고 그 외 선택에서 제외된 이 땅에 속한 자들에게는 비밀로 감추어 두셨다. 그리하여 주님은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눅8:1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게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사 6:9-10). 즉 당신이 택한 백성에게는 자신을 드러내어 보여주심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비밀로 가리시기 때문에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그 눈과 귀를 막으셨다는 말씀이다. 한마디로 그들에게는 하나님 자신을 보여주지 않으시며 구원의 문을 닫으셨기에,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8:12; 13 :28,42; 22:13)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자연 속에서 눈으로 보이는 어떤 것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구원과 생명이 실상으로 현실로 나에게 나타나셔서 나의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복음을 바울은 제시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게 나타내시며, 알게 하시며, 믿게 하시고, 구원과 생명을 얻게 하신 분은 바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이시다. 그리하여 주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22-42) 라고 말씀해 주셨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 내셨느니라”(요 1:18). 오직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여 주시며, 당신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을 선물로 주심으로 그분의 은혜를 입은 자만 구원을 얻게 됨을 성경은 반복하여 말씀해 주고 있다. 당연히 만물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음으로 만물에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나타나 있다. 하지만 그 만물을 통하여 예수그리스도를 감지할 수 있는 자는 오직 택정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뿐이다. 왜냐하면 바울이 지적한 봐와 같이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저희 속에 보여주셨다’(1:19)는 것이다. 이 세상 속에 하나님은 오직 당신이 택하여 놓은 백성들에게만 자신을 계시하시며, 그들에게만 당신을 알아보는 눈과 귀를 열어주시며, 그들 안에 당신을 알고 믿는 믿음을 심어주셨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 저기, 우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너희 안에 있다”라고 선포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속한 자들은 목자의 음성을 들고 반응하며 믿음으로 구원과 영생에 이르게 하신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 즉 성령님이 먼저 내 영의 눈과 귀를 열어주심으로 내 영이 하나님을 의식하며, 믿으며, 의지하며, 동행하는 삶을 추구한다. 그분은 말씀으로 자신을 인간에게 나타내시며 말씀을 통하여 성령의 임재를 느끼게 하며 거듭남이라는 증거를 낳는다. 그분은 성령을 통하여 자신의 성품과 인격을 나타내신다. 즉 그분은 빛과 생명이시며, 긍휼과 사랑, 자비와 용서, 온유와 화평, 공의와 의로움, 선과 영광으로 충만한 분이심을 영으로 감지하며 인식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그분의 영으로 태어난 자는 그분의 성품을 따라 그분의 십자가 공로와 은혜를 입어 의로운 자녀로 잉태하여 영원히 죽지 않는 영의 생명을 소유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제시하는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1:19-20)라는 뜻이다. 즉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은 창세전에 묵시로 이루어 놓으셨으며, 그 구원의 언약을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으로 택하셔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전지전능하신 능력으로 완벽하게 완전하게 그분의 속성과 성품을 따라 실행하시고 성취하여 주셔서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영생을 입혀주시는 증거를 낳기 때문에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의 복음을 핑계치 못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