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핵심 주제
로마 교회의 역사적 상황
로마 교회는 바울이 개척한 다른 소아시아에 있는 교회와 같이 조직적으로 바울의 가르침과 보살핌을 받고 있었던 교회가 아니었다. 많은 학자들은 오순절 때 예루살렘을 방문한 유대인들이 회심하고 로마로 돌아가 각 가정이나 회당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한 것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며, 다양한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로마교회의 구성원이 되었기에 주로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혼합된 교회였으며, 유대인보다 이방인들이 다수를 차지하여 주로 헬라어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었다.
로마 교회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유대인 기독교인들과 이방인 기독교인들 사이에 할례와 유대 절기 준수 등 여러 가지 문제로 많은 분쟁이 일어났다. 이에 클라우디우스 황제로부터 유대인 추방령이 내려짐으로 많은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로마로부터 추방을 당하게 됨으로 로마에 있는 교회는 이방인 중심의 교회로 변하게 된 것이다. 그 후 54년경부터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죽고 네로가 등극하면서 추방당했던 유대인들과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5년 만에 로마로 돌아오게 됨으로 로마 교회는 급속히 성장함과 동시에 유대인들과 유대인 기독교, 그리고 이방인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마찰과 분쟁과 분열의 소지를 안게 된다. 바울은 이러한 분쟁과 갈등에 대하여 교리적이며 신학적으로 성경 말씀으로 설명하고 변증함으로 로마 교회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복음 전파에 중심 기지가 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전력을 다하여 복음으로 로마서를 쓰신 것이다. 바울은 25년간 복음을 전파한 자신의 경험을 총동원하여 ‘하나님의 의’를 중심으로 기독교의 구원론, 즉 이신 칭의(죄인은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고 칭함을 받으며, 하나님으로부터 죄인이면서 동시에 의인이라는 칭의를 선물로 받는다는 의미). 죄의 문제, 율법과 복음의 관계, 그리고 십자가의 진리, 성령의 법과 하나님의 언약, 남은 자와 이방인의 구원 등의 문제들을 하나씩 설명하고 변증한 것이다.
첫째로 제기된 것은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지니고 있었던 문제였다. 그들은 비록 예수를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여 보내주신 언약의 메시아로 인정하고 믿고 있었지만 여전히 구약 율법을 고수하여 행위로 구원에 이른다는 잘못된 율법주의적 신앙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성도가 구원받게 된 것은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라 오직 값없이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말미암이라고 하나님의 의를 강력하게 주장한 것이다. 둘째는, 이방인 기독교인들의 참 자유가 아닌 방종에 관한 문제였다. 그들은 비록 개종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이방 풍속과 생활 습관을 그대로 유지하는 잘못된 자유를 주장하고 있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그러한 행위가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절제되어야 하며, 죄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부단히 힘써야 할 것과 속히 썩어질 육신의 구습에서 벗어남으로써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자유와 거룩함에 이를 것을 교훈한 것이다.
로마서 요약
사도 바울은 1장에서 로마서의 중심사상, 즉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핵심을 확실하게 제시하고 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6~17). 즉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의와 능력이다는 선포이다.
로마서 1장부터 5장까지의 내용은 죄와 율법, 은혜와 복음에 대한 설명이다.
이 세상 모든 인간은 죄인으로 태어나 죄만을 행하는 불의 한 자이며 그 어떤 것으로도 의롭게 될 수가 없다고 단정을 내리고 있다.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율법의 의를 추구하여 하나님의 의에 도달하려고 목숨으로 율법을 지켜왔지만 오히려 율법으로 죄를 범하는 패역한 죄인으로 불의한 자로 드러난 것이다. 마찬가지로 율법을 받지 못한 이방인들은 양심으로 죄를 범하는 극악무도한 죄인으로 폭로된 것이다. 즉 유대인은 율법을 가지고 범죄하고 이방인은 율법 없이 양심으로 범죄 함으로 율법이 있는 자들은 율법으로 망하고, 율법이 없는 자들은 율법 없이 망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불의함은 율법으로도 양심으로도 해결될 수 없기에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가 하나님의 진노에 속한 거짓된 존재이며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모든 사람들에게 내려짐을 강력하게 피력하고 있다.
율법을 주신 이유는, 율법을 행하는 인간의 의로 구원에 이르라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통하여 인간이 얼마나 패역하고 추악한 죄인인가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율법은 인간의 입을 막고 온 세상이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 아래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한 기능으로 주신 것이며, 율법 아래서는 그 어떤 인간도 의인으로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드러내어 보여줌으로, 이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인간의 마음 안에 도사리고 있는 극악한 죄성이 더욱 뚜렷하게 그 모습이 드러나 폭로됨으로 인간은 절대로 하나님의 의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즉 율법은 내 안에 깊이 도사리고 있는 극악한 죄의 근성과 본심의 모습을 철저히 폭로하여 보여주는 역할로 나 자신의 정체성을 들여다보고 인정하게 함으로 죄인은 그 어떤 것으로도 구원받을 수 없는 불가능한 존재이며, 하나님 앞에서는 이미 죄와 사망으로 죽은 존재임을 확실하게 깨달아 알게 하는 역할로 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믿는 믿음 밖에는 소망이 없다는 것을 고백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바울은 그 누구도 하나님의 의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다. 오직 하나님의 의만이 불의한 인간을 의롭게 하는 것이며, 그 하나님의 의를 믿는 믿음으로만이 의롭게 될 수 있다는 복음의 핵심을 제시하고 있다.
4장과 5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의와 믿음에 대하여 유대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행위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 할레를 받기 전에 오직 하나님의 의와 긍휼하심과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아 믿음으로 상속자가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의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불의한 자로부터 의로운 자로 칭함을 받았으니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된 것이다. 즉 우리가 아직 죄인으로 원수 되었을 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으로 말미암아 그분이 성취하여 주신 구원을 믿는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이 되어 생명에 이른 것이다.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5:17).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5:20).
그렇다면 은혜를 더 많이 받기 위하여 죄를 지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가지게 되는데 절대 그럴 수가 없다고 변증한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몸이 된 성도는 죄에 대하여 죽었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자가 되었기에 더는 죄에 머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성도는 육신을 입고 이 죄악된 세상 속에서 살고 있기에 계속하여 죄를 짓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왜냐하면 성도는 영으로 거듭나서 영으로 사는 자가 되었지만 육신으로는 거듭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육체를 입고 있는 한 육적 본성인 탐심과 욕망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즉 인간의 육체는 죄 아래 팔렸기에(7:14). 죄에 팔린 육체에는 선한 것이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악만 있기에 악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7:18-24).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는도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18-24). 이것이 영으로 거듭난 성도가 여전히 육신을 입고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갈등과 치려야 되는 영적 싸움이다.
이와 같이 성도는 거듭난 영과 거듭나지 못한 육을 동시에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성도 안에서는 두 영이 함께 공존하여 싸우고 있으며, 여전히 죄가 강력하게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음은 선을 원하는데 원하는 선을 행하지 않고 악을 행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본심임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불가능하며 추악한 죄인인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죄란 단순히 겉으로 나타나 보이는 사건화된 도덕적 윤리적 사회법적 위반을 언급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 절대 의존적 존재로 지어진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자신이 자신을 주장하는 자아 숭배, 자아실현, 자아 확장을 위해 탐심과 욕망으로 다른 이들을 짓밟고 약탈하고 서로를 죽이는 마귀의 종으로 사는 육신을 가리킨다. 육신을 벗지 않는 한 거듭난 성도에게도 여전히 죄가 사라지지 않으며 매일같이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수를 하고 있으며,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음을 우리의 실존적 생활에서 매일 경험하고 있다. 거듭난 성도도 육을 따라가면 언제든지 육적인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도는 자신의 본질적 패역함을 인정하게 됨으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4)라는 처절한 고백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8:1-4) 함과 같이 우리 육신이 연약하여 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심으로 성도는 이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받아 예수 안에 있기에 “결코 정죄함이 없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거듭난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기에 이제 육체의 소욕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인도와 간섭을 받기 때문에 내면에는 죄와 싸우는 즉 육체의 소욕을 거스르는 고통스러운 갈등과 전쟁을 치르게 된다.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내 영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그럴수록 육체의 욕망이 더욱 강하여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게 된다’(롬 7:23)는 것이다. 즉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성도는 그 끈질기게 괴롭히는 죄로 인하여 갈등하고 고통스러워하며 매일 죄와 싸우며 그 죄를 떨쳐버리려고 발버둥 치면서 자신이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무능함과 불가능함을 뼈저리게 체험하게 된다. 그리하여 성도는 자신이 얼마나 악한 죄인인가를 매 순간마다 뼈저리게 깨닫게 됨으로 ‘내가 바로 죄인 중의 괴수‘라는 바울과 같은 고백이 나오게 되며, 하나님 앞에 자신을 철저하게 내려놓는 회개와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매일 숨 쉬는 매 순간마다 하게 됨으로 하나님의 절대적 의존자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령으로 거듭난 증거이며 영의 사람으로 성령님의 인도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르기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롬 8:9-10).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8:10) 함과 같이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심으로 성도는 이제 더는 죄의 종이 되어 죄를 계획하고 죄를 즐기는 육신이 원하는 삶을 추구하지 않게 되며 또한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성도는 이제 성령님의 내주와 진리의 말씀을 먹음으로 이 세상 육신을 쫓아 사는 모든 것들이 ‘배설물’과 같은 것들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됨으로 더는 이 세상의 풍습을 따라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성도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하늘나라의 삶을 추구하게 되며, 그 삶이 바로 내가 철저히 부인되고 내 ‘자아’가 죽는 십자가 죽음임을 깨닫고 세상을 향해 죽기를 원하며, 그 길만이 생명과 영생임을 확실하게 깨닫고 믿게 되는 것이다. 비록 성도는 육체로는 이 세상 죄악과 공존하는 삶을 살기 때문에 끝없는 죄의 유혹과 탐심으로 인하여 육체의 소욕을 따라 넘어지고 실수하고 죄를 짓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의 깨우침과 깨달음을 주시기에 내 영이 끊임없이 기도로 간구하게 하신다. 즉 성령께서도 육체를 입고 있는 성도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아시기에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신다.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8:27).
이와 같이 우리는 매일 매 순간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우리 육신의 연약함에 애통해 하며, 의에 굶주리고 목말라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갈망하며, 죄에 대하여 죽는 자기 부인과 자기 죽음의 십자가 삶을 스스로 추구하게 하신다. 우리는 끊임없이 넘어지고 실수하는 육신의 불가능함과 어찌할 수 없는 무능함을 바라보면서 세리와 창기처럼 가난한 심령으로 내려가 가슴을 치며 통곡하며,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게 되며, 그럼에도 끝까지의 사랑으로 품어주시는 하나님의 그 한 없는 은혜와 그 완전한 사랑을 체험하면서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오직 그분만을 바라보며 그분만을 믿으며 그분만을 꼭 불들고 함께 하는 영원한 천국의 삶을 소망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거듭난 성도가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그 어떠한 환경과 상황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무수한 갈등과 싸움에서 무너지고 실수한다고 하더라도 성도는 성령님의 끝없는 간섭과 깨우침과 인도와 도우심이 있기에 다시 육신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바울의 고백과 같이 성도는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5-6)라는 이 진리를 삶의 체험에서 깨닫고 진리가 되어 진리를 전파하는 자로 서게 된다.
그러므로 거듭난 성도는 비록 육체를 입고 죄 아래서 신음하는 존재이지만 죄의 정죄에서 영원히 해방된 존재이며, 영으로는 죄의 권세를 이긴 하늘나라 존재이기에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밖에 없는 존재로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8:28-30). 비록 육체로는 죄 아래 있지만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하신 자녀들을 하나도 잃지 않고 온전히 보호하시고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심으로 성도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의 위협에도 절대로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질 수가 없다고 감개무량하게 외치고 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8:34-37).
로마서 9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에 대하여 언급한다.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을 선택하고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에 의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아직 태어도 나기 전에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9:13) 함과 같이 혈통으로나 의지나 자질이나 선한 행위와 같은 어떤 조건에 의해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에 의한 것임을 강조한다. 모든 인간은 죄인으로 태어났기에 자신이 짓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가 없음으로 영원한 죽음과 지옥으로 향하는 이미 죽은 존재들이다. 그 중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녀가 있으며 하나님은 오직 당신이 택한 자들만 당신의 자녀로 구원하신다. 그렇다고 하여 지음을 받은 존재가 감히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에 대하여 하나님이 불의하다고 반문할 수가 있겠는가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창조주이시며 만물을 주관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정하신 뜻이며, 그분은 자신이 정하신 뜻을 언약으로 나타내시며, 그 언약에 따라 택함을 받은 자만 당신의 품으로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다만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혜일 뿐이다(9:15).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언약대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요 1:13) 임을 강력하게 피력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자녀가 다 아브라함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열심은 있으나 자신들의 의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의 의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줄곧 자신들만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모든 민족 중에 선택받은 가장 뛰어난 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참된 백성은 아브라함의 씨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으로 선택받은 이삭이라고 10장에서 자세하고 설명하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다만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선택받은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모형으로 쓰임을 받은 그릇이며, 때문에 실상이 나타나게 되면 모형으로 선택받은 이스라엘이 복음 앞에서 버려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이 모두 버려진 것이 아니며(11:1), 이스라엘 중에 하나님의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다(11:4)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는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함으로 주의 영광을 추구하는 자들이며 그들이 바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10:13) 참된 백성이며,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자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마지막 로마서 12~15장까지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거듭난 성도가 살아갈 영적인 삶을 제시하고 16장에서는 로마 성도들에게 안부 인사를 하는 것으로 로마서가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