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7]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다 / 세상은 왜 예수와 성도를 미워하고 핍박하는가? (요 15:18-27)
요 15:18-27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0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21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을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니라
22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23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24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저희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면 저희가 죄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저희가 나와 및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25 그러나 이는 저희 율법에 기록된바 저희가 연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니라
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27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거하느니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내가 택한 자이며 나에게 속한 자라고 확실히 구별하여 주신다.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가려 뽑아냈으므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15:19 새번역). 성도는 이 세상 모든 죄인들 중에서 뽑아내어 주셔서 구원받은 선택 받은 하늘나라 백성이며 그리스도의 영으로 새롭게 탄생된 그리스도에게 속한 신부이다. 비록 육신은 이 세상에 잠시 발붙이고 살아가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으로 하늘나라의 삶을 살고 있는 세상과 완전히 구별된 자들이다. 사도 베드로는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라고 성도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죄악된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요 거룩한 나라’라고 성도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정립하여 주고 있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하여,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써 세상은 나에 대해서 죽었고 나는 세상에 대해서 죽었습니다"(갈 6:14 공동번역), 즉 세상 죄인으로 살던 내 옛사람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지금 사는 나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탄생되어 예수 안에서 사는 새사람으로 구별되어 있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나를 못 박은 이 세상 또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으로 치닫고 있기에 성도에 대하여는 죽은 세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와 사망에서 빠져나온 성도는 더는 이 세상을 위하여 사는 자가 아니며, 더더욱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역할로 택함을 받은 자가 아니다. 이 세상에서 구원받아 빠져나왔다는 것은, 이 세상이 죄악으로 멸망에 치닫고 있다는 증거이다. 때문에 성도는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분리될 수밖에 없는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이며, 하늘의 뜻을 따라 하늘나라 원리의 삶을 추구하며,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잠시 이방인으로 사는 것뿐이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당신에게 속한 자녀와 이 세상에 속한 마귀의 자식을 분리하시고 구별하시는 의도로 천지를 창조하셨으며 역사를 주관하신다. 땅과 하늘을 분리하신 것은 땅에 속한 멸망의 자식이 있고,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이 있기 때문이며, 낮과 밤을 분리하신 것은 빛에 속한 자가 있고, 어둠에 속한 자가 있기 때문이며,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을 분리하신 것은 하나님의 자녀와 사단의 자식은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자녀는 하늘나라 천국으로 들림을 받지만, 마귀의 자식은 이 땅의 지옥으로 떨어지는 운명으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은 빛이 오시기 전 이 세상을 ‘어둠’이라 부르고, 빛이 오셨음에도 ‘어둠’은 빛을 알아보지 못하고 영접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빛을 미워하고 대적하고 빛 안에 들어가기를 거절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다(요 1:1-11).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성도는 멸망으로 다가오는 이 세상 어둠의 권세에 속할 수도, 더더욱 하나라고 손을 잡을 수가 없는 완전히 구별된 자들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나이다”(요 17:16). 하나님에게 속한 자녀는 반드시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를 입어 구원을 얻게 되지만, 마귀에게 속한 이 땅의 자식은 이 세상과 함께 멸망과 심판을 받게 됨을 선고하셨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8)라고 이 세상 어둠에 속한 자들은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는고로 이미 이 땅에서 ‘벌써 심판을 받았다‘라고 완료 시제를 쓰고 있다.
과연 성도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자로 택함을 받았는가?
과연 하나님의 백성은 이 죄악된 세상을 평화의 나라로 통일시키는 일에 매진하여 목숨을 다하라고 보내진 자들인가? 과연 성경 말씀은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역할과 의무를 완수하라고 주신 윤리와 도덕적 가르침인가? 과연 착한 행실로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의 역할’ 과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빛의 역할’로 이 세상을 정화시켜 죄에서 구제할 수 있겠는가? 적어도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는 그것이 아니라는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역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끝없는 노력과 헌신과 구제와 사랑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평등과 평화와 희락을 누리는 낙원을 실현하기 위한 목적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다. 반대로 이 세상의 본 실체가 바로 “혼돈과 공허와 흑암”(창1:2)의 총칭인 죄와 사망임을 폭로하고 증거하기 위함이다.
천지가 창조되기 전,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먼저 있었다는 것은, 이 세상은 본체가 생명이 없는 죽음의 상태였음을 계시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향한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설명하며 인간에게 영생을 입혀주어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함께 사는 목적으로 이 가시적 물질세계를 창조하셨다. ‘빛’을 설명하시기 위해 먼저 ‘혼돈’을 주셨고, ‘은혜’의 충만을 설명하시기 위해 먼저 ‘공허’를 주셨으며, ‘생명’을 설명하시기 위해 먼저 ‘흑암’이라는 죽음을 있게 하셨다. 그리고 이 땅의 흙으로 인간을 만드심으로 이 땅의 본질대로 인간의 본체가 바로 “혼돈과 공허와 흑암”임을 알게 하시기 위해 ‘선악과나무’를 죄와 죽음의 상징으로 에던 동산에 심어주셨다. 비록 인간의 잘못된 선택이지만 인간은 ‘선악과’를 따 먹고 나서야 비로소 죄를 알게 됨으로 진정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과 사랑을 깨닫게 되며, 죽음을 통하여 비로소 구원과 영생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됨을 알게 된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오직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를 설명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주신 것들이며, 진리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알고 믿음으로 구원과 생명을 주시기 위해 잠시 주신 허상이다. 즉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용으로 담아서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설명하시기 위해 이 세상을 주셨으므로 이 세상은 잠시 동안만 있는 모형이며, 멸망의 종말로 처음부터 정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신다.
하나님은 인간들에게서 나오는 죄가 얼마나 추악하며 스스로 죄를 쌓아서 멸망에 이르게 됨을 친히 경험하라고 모든 인간에서 죽음을 허락하셨다. 처음부터 인간을 이 땅의 죽은 티끌로 만드심으로 인간은 하나님의 생명력을 떠나서는 티끌과 같은 죽음이며, 생명은 오직 하나님의 주관이심을 계시하셨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는 이 세상 육신에 속한 자들을 향하여 ‘티끌과 먼지’(사 40:15) ‘진토와 거름 무더기’(시 113:7), ‘메뚜기와 초개“(사 40:22,24)로 묘사하신 것이다. 예수님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망령되게 하는 패역한 자들을 개와 돼지로 묘사하셨으며, 그들에게는 복음을 주지 말라고 명하셨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마 7:6). 왜냐하면 그들은 절대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알아보지도 깨닫지도 구하지도 않기에 설사 그들에게 준다 할지라도 그들은 짓밟거나 아예 복음을 준 자를 물어뜯고 죽이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열심히 하나님을 섬긴다고 자고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끊임없이 박해하고 죽여 버린 것과 같이, 신약에서도 구원과 영생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핍박하고 때리고 조롱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악행을 저지른 것이다.
그렇게 패역한 인간에게 무슨 의가 있으며 선이 나오겠는가? 자신마저 구제 못하는 인간이 어찌 세상을 구제한다고 나설 수가 있겠는가? 하나님은 역사를 통하여 이 죄악된 세상에서 태어난 모든 인간은 나이를 먹어 죽음으로 향하는 것과 같이, 죄를 먹어서 사망에 이르고 또한 죄를 이 세상에 토해냄으로 세상과 함께 멸망하게 됨을 경험하게 하신다. 인간 자신들이 짓은 죄로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좀비의 세상임을 투명하게 보여주시고 이 세상에서 빠져나오는 구원을 성취하여 당신의 백성을 이 세상 죄와 사망에서 빼내는 일을 하신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향하여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5)라고 하셨지, 이 세상 사람과 하나가 되어 인간들이 꿈꾸는 유토피아와 같은 낙원을 건설하는데 목숨을 걸라고 하지 않으셨다. 그 목숨과 마음으로 오로지 나에게 영생을 입혀주시는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또한 이웃 형제를 이 세상 죄에서 끄집어내는 그 사명은 사랑으로만 가능함으로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다(눅 10:27). 만약 이 세상에 낙원을 이루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전지전능하신 권능으로 인간이 원하는 꿈을 이루어 주셨을 것이다. 하지만 그분은 무력하게 아무 능력도 행하지 않으시고 도살장에 끌러가는 양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다. 이 세상이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으니 예수에게 속한 성도는 당연하게 이 세상으로부터 미움과 박해와 죽임을 당하게 된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15:18-20). 예수그리스도에게 속한 영의 사람은 우리 주님과 하나가 된 신부이기에 그분의 생각과 마음과 뜻에 동참하여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이 세상과 구별된 하늘나라 삶의 원리를 먼저 이 세상에서 살아내기 때문에 세상은 자신에게 속하지 아니한 하늘에 속한 자들의 삶을 미워하고 증오하며 말살하려고 한다.
세상이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 왜 세상은 예수님을 미워하고 핍박하고 죽인 것일까?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세상은 예수님을 먼저 미워하였기 때문에 예수에게 속한 제자들도 미워하며 핍박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18-19).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실 때 태어날 곳도 없이 마구간에서 탄생하셨으며, 태어나면서부터 이 세상에서 살해당하는 대상으로 핍박을 받으셨다. 이 세상에 구원자로 죄인들을 저희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려 오셨음에도 세상은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무고한 유대인 어린아이들을 피살한 것이다. 세상은 구원자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멸시하고 조롱하고 핍박하여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주님은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18)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미움과 핍박을 당하는 것은 이 세상에 속하신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며, 이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고 증거하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가함이라”(요 7:7).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요 8:23). 이 세상에 속하지 않으신 분이 이 세상이 오셨으니 당연히 세상은 자기에게 속하지 아니한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의와 구원을 선포하시며, 이 세상 악을 정죄하시며,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속한 죄인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고하심으로 세상으로부터 미움과 배척과 핍박을 당하신 것이다.
우리는 복음서에서 예수님과 유대인들 간의 계속적인 갈등과 충돌을 읽으면서 예수님은 이 세상뿐만 아니라 택함을 받았다고 하는 자기 백성으로부터 더욱 심한 배척과 대적과 핍박을 당하셨음을 똑똑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추호의 양보 없이 그들의 거짓과 외식된 종교행위를 여지없이 폭로하고 부수고 깨는 자로 맞선 것이다. 첫째, 그들이 목숨으로 수호하고 지키려고 하는 선민사상을 부수고 율법적 의를 부정하시며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부인하여 ‘마귀의 자식’이라 저주하심으로 그들의 신앙 전부를 부정하신 것이다. 더욱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이들이 목숨같이 지키는 안식일을 의도적으로 범하시며, 이들이 제사를 드리고 있는 ‘성전을 헐라’고 외치시며, 성전에서 상을 뒤엎고 상인들을 좇아내시며 ‘너희가 내 아버지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분노하시며 이들의 외식된 종교행위를 폭로하시고 정죄하신 것이다.
둘째, 주님은 이들이 행하는 율법적 행위를 ‘마귀의 행사’로 정죄하셨다. 너희가 하는 모든 것은 거짓과 외식이며, 너희는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와 영광 세우기에 열광하는 자들이며, 회칠한 무덤과 같이 너희 마음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한 송장과 같으며, 군대 귀신 들린 광인처럼 쇠사슬로 묶어놓아도 감당이 안 되는 끈질긴 목이 굳은 고집통이며, 속에는 방탕한 것들로 가득한 가망이 없는 자들이다(마 23장)고 폭로하셨다. 그리고 ‘너희는 마귀의 자식이다’(요 8:44)라고 선언하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에서 배제시키신 것이다. 주님은 그들이 그토록 주님을 미워하고 핍박한 이유가 바로 이들의 행사를 악하다고 지적하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요7:7). 여기서 ‘세상’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 세상을 가리킴으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한 족속으로 세상과 구별된 자라고 자부하는데 너희가 바로 하나님을 알지도 믿지도 않는 오히려 하나님을 살해하는 이 ‘세상’ 마귀에 속한 악한 자들이며, 너희가 하는 일이 바로 마귀에서 나온 “세상 행사”이기에 이 세상에 속한 자라는 말씀이다. 즉 너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목적은 이 세상에서 너희 자신들의 영광을 취하기 위한 ‘세상 행사’이며, 때문에 ‘세상은 너희를 미워하지 않으며’, 도리어 너희 행사가 악하다고 증거하는 나를 미워한다고 말씀하신다.
셋째, 주님은 선한 목자와 양의 비유에서 이들을 절도, 강도, 삯꾼, 이리라고 부르셨다. 절도, 강도, 삯꾼이란 말은, 자기의 소유가 아닌 다른 자의 소유를 도둑질하거나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자들임으로 목적은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라”(요 10:10)고 질책하셨다. 그들은 연약한 양들을 잡아다가 자기들의 세력 확장에 이용하며, 자기들이 하라는 대로 하도록 억압하며,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며, 자기들의 말에 거역하면 마음대로 죄인이라 판단하고 정죄하여 쫓아내거나 죽여 버리는 악행들을 일삼아 왔다. 그리하여 주님은 추호의 양보 없이 그들의 패역함을 철저하게 폭로하고 정죄하며 너희는 너희 아비의 욕심을 따라 진리를 거스르며 나까지 죽이려고 하기 때문에(요 8:44)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고 선고하신 것이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33). 이와 같이 주님은 철두철미하게 그들 안에 숨겨진 추악한 죄를 낱낱이 폭로하고 정죄함으로 그들은 견딜 수 없이 예수님을 증오하고 박해하고 죽이려고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부르시며, 내가 하는 일이 곧 아버지의 일이며,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10:30)라고 말씀하심으로 그들은 예수님을 신성모독으로 몰고 있었다. 특히 이들이 위험을 느끼게 된 것은 자신들의 자부심을 세우는 종교적 기득권이었다. 예수님이 행하신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들과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리는 이적들은 인간으로서는 전혀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이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좇고 믿게 됨으로 자신들이 쌓아놓은 기득권이 뿌리째 흔들리게 됨을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증오하고 예수님이 하시는 구원사역을 방해하며 자신들의 자존심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하나 죽이려고 음모를 꾸민 것이다.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고 핍박하리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0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성도가 이 세상에서 미움과 핍박을 받게 되는 것은 세상과 구별된 성도의 정체성 때문이다. 성도는 예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자들로 예수그리스도를 본받아 세상과 완전히 구별되는 십자가 자기 부인과 자기 죽음의 삶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목적이 뚜렷한 삶을 추구한다. 신분이 변하였고, 소속이 변하였고, 지향하는 가치와 관점이 다르며, 인생의 소망이 완전히 바뀌게 됨으로 세상과 구별된 십자가 삶을 실제로 살아가게 된다. 그리하여 주님은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요 17:14)라고 말씀하심으로,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구원과 생명과 진리로 받아 먹고 알아듣고 이해하고 믿음으로 진리가 되어 진리를 외치는 자들로 세상과 구별된 하늘나라의 삶을 추구하지만, 이 세상에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도 알아들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 아무리 보여주고 가르치고 설명하여 주어도 구원과 생명으로 소유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죄를 깨닫고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어 구원과 생명을 얻으라는 의도로 선한 율법을 주셨음에도, 그들은 육으로 지키고 행하는 사람의 규칙으로 만들어 놓고 자신들의 의와 공로를 쌓는데 집착한 것이다. 율법이 그들에게는 도리어 생명의 진리이신 예수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는 걸림돌이 되고 법범자가 됨으로 율법 지킴으로 오히려 심판의 근거를 쌓게 된 것이다. 선한 율법이 그들에게는 ‘죄와 사망의 법’(롬 8:2)이 되어버렸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 8: 5-7)라고 정확하게 육신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오히려 하나님과 원수가 되며 결국은 사망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속한 영의 자녀와 이 세상 육신에 속한 자들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구별되어 있으며, 이 두 영역 간의 싸움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역사는 시작부터 하나님이 정해놓은 ‘여자의 후손’과 ‘마귀의 후손’, 이 두 그룹 간의 영적 싸움으로 시작되고 진행되고 있다. 첫 후손인 가인과 아벨의 구별에서, 예수그리스도의 희생제물을 모형하는 아벨이 이 세상 악의 세력인 가인에게 살해당하는 순교로 인간 역사가 시작된 것과 같이, 성도가 이 세상 권세자에게 당하는 미움과 멸시와 박해와 고난과 순교는 우리 주님이 재림하셔야 끝날 것이다. 마지막 때를 사는 성도는 이 세상 혼란 속에서 핍박과 고난 속에 던져질 것임을 주님은 미리 제자들과 우리에게 제시하여 주셨다.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마 10:17-18). 주님의 말씀대로 제자들과 사도들과 믿음의 선배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공회에 넘겨 감옥에 갇히고, 온갖 고문으로 심한 고통과 고난과 핍박과 처참한 죽음을 당하였다.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 11:35-38). 그리하여 사도 요한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라”(요일 5:19)라고 하나님께 속한 영의 자녀와 이 세상 육신에 속한 자들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구별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비록 성도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의로 인하여, 복음을 전파하는 증인의 삶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는 미움과 핍박을 받게 되지만, 천국과 영생이 약속되어 있으며 반드시 겪어내야 하는 과정이기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권하고 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마 5:10-12). 성도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구별된 자라는 이유만으로 세상에서 미움을 받으며(15:19), 실제로 세상과 구별된 하늘나라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고난을 받으며,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증인의 삶으로 인하여 세상으로부터 멸시와 핍박과 죽음을 당하게 되며, 그것이 바로 이 세상과 구별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이며,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특별한 은총을 받고 있다는 증거이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마 5:14). 그러므로 성도는 이 세상 악에 대하여 정죄하고, 이 세상의 실존이 바로 사망의 멸망이며, 이 세상 가치를 배설물로 여기며,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구원이라고 외치고 전파하게 됨으로, 이 세상에 존재가치와 삶의 의미를 두고 영광과 부귀를 추구하는 이 땅에 속한 자들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이다. 세상은 절대로 예수만이 절대적 진리이며 구원이며 생명이라고 외치고 전파하는 성도를 용납할 수가 없으며 눈에든 가시처럼 제거하려고 한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정죄요 사망의 냄새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고전 2:15-16). 세상은 그리스도의 진리에 의해 자신들의 죄악이 드러나고 폭로당하고 정죄당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다. 스데반이 온갖 핍박에도 맞서서 유대인의 죄악들을 낱낱이 폭로할 때 그들은 참을 수가 없어서 합심하여 돌로 쳐 죽인 것이다.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 고난과 핍박은 하늘의 은총이며 특권으로 주어지는 선물이다
20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제자들은 3년 넘게 주님과 동고동락하면서 주님이 세상으로부터 어떠한 박해와 멸시와 고난과 조롱을 당하셨는지를 두 눈으로 직접 지켜보았다. 이제 제자들도 주님이 가신 그 길을 그대로 걷게 됨으로 주님은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것이다”(20)라고 말씀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십자가 고난과 십자가 죽음에 동참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믿는 예수는 이 세상에서 멸시와 박해와 고난과 수모와 죽임을 당한 십자가를 지신 예수이시다. 이 세상에서 인정받고 숭배와 영광을 누리는 세상 임금으로 오신 분이 아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하늘나라의 왕이시며 창조주이신 만물의 통치자이시다. 그럼에도 이 죄악된 세상에 굳이 어린 아기로 인간의 몸을 빌려서 오셨다. 그리고 우리와 똑같은 인생을 30년이나 시골에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아주 평범한 삶을 사셨으며, 이 세상뿐만 아니라, 그렇게 목숨 걸고 율법과 제사로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며 메시아를 손꼽아 기다리던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다고 자고한 유대인들로부터 온갖 멸시와 조롱과 박해를 받으셨다.
만물을 창조하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친히 육신을 입고 ‘각 사람에게 비추는 생명의 빛’으로 오셨음에도, 세상은 이유 없이 예수님의 탄생을 박해하여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두 살 미만의 어린아이들을 학살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의로운 구원 사역을 배척하고 비난하고 핍박하고 말살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였다. 주님은 이 세상과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유대교로부터 온갖 멸시와 박해를 모두 받아내심으로 제자들과 우리에게 그러한 핍박의 상황과 그렇게 핍박하는 자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몸소 보여주시고 그대로 본을 받으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15:20). 즉 주님이 이 세상에서 받은 대접보다 더 나은 대접 받기를 기대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세상이 나를 미워한 것처럼 너희도 미워하리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성도가 세상으로부터 교회로부터 비난과 미움과 멸시와 박해를 받는 일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마땅히 겪어내야 하는 지당한 일이며 이기는 일이라는 말씀이다. 성도는 이 세상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아 빠져나왔기에, 이 세상 악을 정죄하며 그 실체를 낱낱이 폭로하며,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구원이요 생명이요 진리임을 외치며, 십자가 삶을 지향하며, 진리가 되어 복음 전파에 목숨을 건 자들이다.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고난과 핍박을 당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며, 하나님의 자녀라는 특권이며, 영생이 보장되는 은총이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은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빌 1:29)라고 구원의 은혜를 입혀 주셨기에 고난이라는 특권을 주셨다고 격려하고 있다.
육신으로는 그 고난과 핍박이 고통스럽고 피하고 싶고 비참하고 절망스럽다.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롬 8:36). 마지막 시대를 사는 성도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는 증인의 삶으로 인하여 세상으로부터 비난과 멸시와 고난과 박해를 받게 되며, 친구와 식구들과 교회로부터 천대와 배신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성도의 마음에 새겨진 진리는 훼손할 수가 없으며, 성도의 마음에 감추어져 있는 매일 함께 하는 예수그리스도의 보화는 빼앗아갈 수가 없으며, 성도가 붙들고 있는 하늘나라 소망과 은혜는 거두어갈 수가 없다. 비록 종일 죽임을 당하는 자 같지만 이는 우리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이며, 하늘나라 백성이라는 영광스러운 신분을 가진 자라는 증거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4:12-13).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22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다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23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24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저희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면 저희가 죄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저희가 나와 및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예수그리스도는 천지가 있기 전, 태초부터 “스스로 있는 자”이시며(출 3:14),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요 1:2),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으며”(요 1:3), 하나님의 참 아들이시며,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하나이시다(요 10:30). 그리하여 주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 14:6)라고 절대적 진리 이심을 선포하셨다. 사도 바울은 증거하기를,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계셨느니라”(골 1:15-17). 그분은 만물의 근원이시며, 본체가 창조주 하나님이시기에 이 땅의 피조물에게 증언을 받을 필요가 없으시며, 세상은 그분이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핑계할 수가 없다. 그분은 태초부터 하나님이시며, 피조물에게 포착되어 인식되고 해석되고 인정되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이 땅의 피조물은 그 영이 죽은 상태이기에 육체로는 영이신 하나님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말씀하시기를, "나는 사람에게서 증거를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5:34).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요 8:23).
그럼에도 예수님은 하늘에서 이루신 뜻을 이 땅에서도 성취하여 당신의 백성에게 구원과 생명을 입혀 주시기 위해 친히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핑계치 못하는 수많은 말씀의 증언과 표적과 기적들을 보여 주셨다. 하지만 이 세상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직접 보여주시는 증거도, 구약성경의 증언도, 세례요한의 증언도 받지도 믿지도 않았다. 심지어 죄를 깨닫고 예수그리스도의 구원과 생명을 구하라고 주신 선한 율법마저 자신들의 자존감과 가치, 의와 영광을 쟁취하는 방패로 이용한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그들에게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일곱 가지 화로 핑계치 못하는 악행들을 천하에 공포하셨다(마 23:13-30). 너희는 지금 하나님을 섬기며 율법과 제사를 지키는 월등함으로 택함을 받은 선민으로 자칭하지만, 너희는 하나님을 마음에 둔 것이 아니라, 너희 자신을 하나님 자리에 올려놓고 하나님을 너희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소유로 만들고, 너희들의 의를 세워 하나님의 영광을 갈취하려는 절도요 강도이니 너희는 그 죄를 핑계치 못한다고 수없이 질책하셨다. 예수님은 그들의 외식과 패역함을 폭로하시고, ‘너희 아비는 마귀이며,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 한다’(요 8:44)라고 지적하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마귀의 자식‘이며, ’회칠한 무덤‘이며, ’독사의 새끼‘이며, 영원히 사함을 얻지 못하는 성령 훼방 죄로 심판을 선고하셨다.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 12:48).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드 하도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회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23:27-33).
이와 같이 주님은 추호의 양보 없이 그들의 죄악을 낱낱이 폭로하셨으며, 그러므로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요 8:24)라고 반복하여 선언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위에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유일한 구원자 이심을 차고 넘치는 증거로 보여주었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하늘나라의 권능으로 인간이 할 수 없는 놀라운 이적들과 능력을 행하시며 진리와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셨다. 그렇게 수많은 증거들을 눈으로 직접 보고 귀로 직접 들었음에도, 그들은 예수님을 구원자로 생명과 진리로 믿지 않았으며, 도리어 미워하고 멸시하고 조롱하고 박해하고 대적하여 죽이기까지 할 것이기에 그 죄를 핑계치 못한다고 미리 말씀하신 것이다.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다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15:22),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 12:48). 주님은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하늘나라 영생에 들어갈 오른편 양과, 이 세상에 속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자들을 왼편 염소로 구별하여 영원한 형벌을 받아 지옥 불에 떨어질 것임을 선언하셨다. 주님은 오른편 양으로 불리는 성도를 향하여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마 25:34)라고 창세로부터 성도를 위해 예비된 나라가 있다고 말씀하시고, 왼편 염소를 향하여서는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마 25:42)라고 핑계치 못하는 영원한 지옥의 판결을 선언하셨다.
예수께서 미움과 핍박을 받으실 것은 율법에 예언되었던 일이다
24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저희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면 저희가 죄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저희가 나와 및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25 그러나 이는 저희 율법에 기록된바 저희가 연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인간과 함께 계시면서 이 땅에 보이는 것으로 핑계할 수 없는 수많은 기적과 표적과 말씀으로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메시아이시며,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와 구약 전체가 예언하고 약속하고 언약하여 주신 하나님의 참 아들이심을 증명하여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어떤 증언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끊임없이 배척하고 미워하고 박해하고 죽이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들에게 증거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는 구약 성경에서 예언하여 주시고 약속하여 주신 모든 언약이 이루어져야 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눅 24:44);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눅18:31), 그 말씀대로 주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다 이루었다"라는 선포로 선지자들을 통하여 수천 년 동안 계시하신 십자가의 비밀과 모든 예언과 언약과 약속들을 다 이루어 주셨다.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에게 자신이 이 세상으로부터 미움과 박해를 당하는 것은 이미 구약에서 예언된 일이며, 장차 제자들도 복음으로 인하여 세상으로부터 예수님이 당하신 그 핍박과 십자가 고난을 당하게 됨을 미리 말씀하여 주시면서 그때 놀라거나 이상하게 여기거나 두려워하지 말 것이며, 이는 이미 율법에서 예언되어 있었다고 말씀하신다. 즉 세상이 예수님과 예수 안에 있는 성도를 배척하고 증오하고 멸시하고 박해하는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있다는 놀라운 말씀이다. “그러나 이는 저희 율법에 기록된바 저희가 연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니라”(15:25). 바로 시편 말씀을 인용하신 것이다.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고 부당하게 나의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내가 빼앗지 아니한 것도 물어 주게 되었나이다”(시 69:4, 35:19). 세상은 처음부터 아무 이유 없이 하나님의 아들을 미워하고 죽이려고 하였다는 말씀이다. 그 첫 시작이 바로 가인이 아벨을 죽인 사건이다. 첫 인간 아담의 후손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모형하는 아벨이 무고하게 마귀의 후손을 상징하는 가인에게 살해당한 것이다. 아벨은 장차 예수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칠 예표였다. 즉 하나님 자신이 제물이 되어 죄와 사망에 빠진 아담의 후손을 살리시겠다는 언약이었다. 같은 맥락으로 역사는 줄곧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이 이유 없이 세상으로부터 미움과 멸시와 박해와 고난과 죽임을 당하는 피의 역사였음을 알수 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세상 사람들로부터 구별된 삶으로 평생을 허비하여 산꼭대기에다 방주를 짓는 일로 사람들의 비웃음과 조롱을 당했으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부모 형제 고향을 떠나 구별된 자로 험난한 나그네 삶을 살아내어 믿음의 아버지가 된 것이다. 그리고 종에서 태어난 이스마엘은 약속의 자녀로 태어난 이삭을 희롱하였고, 에서는 택함을 받은 야곱을 미워하고 박해하였으며, 야곱의 아들들은 예수의 모형으로 택함을 받은 요셉을 미워하고 죽이려고 한 것이다.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은 세상 애급으로부터 고난을 받아 400년 넘게 종살이를 하였다. 세상 애급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은 줄곧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배신하고 이방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를 멈춘 적이 없었으며, 또한 하나님이 보내주신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악행을 일삼아 왔다. 그들의 자손 유대인들은 저희 조상들보다 더욱 완악하여 하나님이 보내주신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그토록 미워하고 멸시하고 조롱하고 박해하여 결국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이는 씻을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더욱 창궐하여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들과 모든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며 죽이는 엄청난 죄악들로 스스로 심판의 근거를 쌓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이미 구약에서 예언된 일이며,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저희 율법에 기록된바 저희가 연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니라”(15:25). 즉 유대인들이 이유 없이 예수님을 미워하고 박해하여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우연적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 역할을 유대인들에게 감당시킨 것은 땅 끝까지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하나님의 원대한 구원의 뜻이며(롬 11:25), 때문에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정하신 계획과 작전 순서와 시간표에 따라 일어나는 일들이라는 것이다.
만약에 4000여 년 동안 끊임없는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배신하고 불순종하고 대적하고 거역한 구약의 역사가 없었더라면, 그리고 신약에서 그렇게도 끈질긴 죄의 근성과 목이 굳은 무지한 고집과 교묘하게 자신을 감추는 외식적 종교행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같은 유대인들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악질적이고 더럽고 추악하고 교묘하며, 바울의 묘사와 같이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롬 3:13-15)라고 묘사한 인간의 마귀적 본능을 뼈저리게 깨닫지 못하였을 것이다. 우리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그토록 미워하고 대적하고 박해하고 죽이는 데까지 끝까지 멸망으로 돌진하는 강퍅한 마음 상태를 읽으면서 문둥병 환자처럼 곪아 썩어 들어가 괴물이 되어도 고통과 죽음을 느끼지 못하는 좀비와 같은 존재가 바로 나라는 것을 적실하게 뼈저리게 깨닫게 되며, 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을 ‘죄’로 규정하셨으며, ‘사망’으로 선고하셨는지를 깨닫게 된다. 바로 우리들 자신의 악한 죄의 본성과 부패성을 적나라하게 투명하게 보여준 거울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이스라엘을 붙드시고 끝까지 구원을 펼쳐나가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하시기에 사망과 지옥에 처넣는 세상 마귀 권세를 무너뜨리고, 당신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희생 제물로 십자가에 못을 박음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그 지독하고 더러운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영생을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깨닫게 된다.
사도바울이 이 비밀을 깨닫고 이르기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롬11:32);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하셨으며”(롬11:25);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롬 9:6-8). 하나님께서 이방인 가운데 구원받기로 선택된 자들의 수를 충만히 채우시기 위해 이스라엘의 대부분을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믿지 않게 하셨다는 놀라운 말씀이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예정 섭리를 “비밀”(롬11:25)이라 부른 것이다. 이 비밀은 오직 구원을 주시기로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만 알게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마13:11-16). 즉 육적 의지로 하나님을 섬기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자신을 감추심으로 구원과 생명이 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는 놀라운 말씀이다. 하늘나라의 비밀은 오직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엡 1:4)을 받은 자에게만 허락되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비밀로 감추어져 있기에 알 수가 없다는 말씀이다.
흙으로 지음을 받은 천한 인간의 지성과 지혜와 능력을 다 동원한다고 할지라도 티끌에 불과한 존재는 창조주의 무한한 통치 영역을 알 수 없기에 그분의 목적과 의도를 해석할 수가 없다. 이르기를,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 2:7-8).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의 진리를 멸망으로 정하여진 이 가시적인 세상 속에 감추어서 우리에게 주셨다. 성도는 이 역사 속에서 우리를 위하여 성취하신 구원과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신 그 영생의 진리가 어떻게 우리에게 나타내어 깨닫게 하시며, 어떻게 우리 안에 뚫고 들어오셔서 우리를 살려내는지를 깨닫는 영의 계시를 구하며, 그분의 놀라운 능력과 열심과 사랑에 오직 기쁨과 감사로 화답하는 것뿐이다. 보이는 이 세상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하늘나라의 진리, 생명의 보화를 볼 수 있는 자들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하나님이 편애하시는 성도이다. 때문에 성도는 이스라엘의 패역한 역사를 보면서 내 육신을 갈아 먹고 죽음으로 삼키는 그 무서운 죄의 정체성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단 한순간도 진리의 말씀과 주님의 사랑을 떠나서는 살수 없는 악한 존재임을 깨닫는 것이며, 목숨을 다하여 주님의 품 안에 거하며, 주님만을 사랑하는 그 사랑의 힘으로 이 악한 세상을 이길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때문에 이 세상에서 육으로 당하는 그 어떠한 것도, 그것이 미움이든 고난이든 박해이든 죽음이든, 주님 안에서 주님이 나와 함께 겪는 일이기에 나에게는 특권과 은총으로 여겨짐으로 오히려 기쁨으로 받아들이며 감사로 화답하고 즐거워하는 믿음의 절정에 이르게 하신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1:6-7).
성령의 증거와 성도의 사명
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27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거하느니라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제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그때 비로소 성령의 권능을 받아 담대하게 주님을 증거할 것임을 말씀하신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주님은 육신으로 오셔서 인간 수준에 맞추어 눈에 보이는 기적들을 수없이 행하여 아버지 하나님을 증거하셨고, 구원과 생명에 관한 진리의 말씀을 수없이 귀에 들려주셔서 구약에서 약속하시고 언약하신 그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 자신임을 증거하여 주셨다. 그럼에도 그 누구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구원자로 진리와 생명으로 알아보지 못하였다. 하지만 성령이 오시면 그가 모든 것을 설명하여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며 영원한 진리요 생명임을 증거하실 것임을 약속하신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26). 즉 제자들이 그동안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보고 듣고 체험한 그 모든 것들을 생각나게 하며, 진리와 생명으로 이해하고 깨닫게 됨으로 성령의 권능을 받아 담대하게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전파하는 사역으로 이끌어 주실 것임을 약속하신 것이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14: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거하느니라.”(15:26-27).
주님은 제자들이 바로 당신을 증언할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신다.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27). 주님으로부터 택하심을 받고 3년 동안 동고동락하면서 직접 눈으로 봄으로 귀로 들음으로 몸으로 기적들을 행하는 체험으로 줄곧 가르침을 받았기에 그 모든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성령의 권능으로 땅 끝까지 전파하고 증언하실 것임을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18:18-20). 그렇게 주님과 함께 하나로 동행하는 성도는 복음 전파로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하나이기에 세상에서 미움과 박해와 고난을 당하게 되며, 그 사역은 우리 자신의 힘으로 능력으로 의지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또한 대항하여 맞서서 싸우는 것도 아니며, 오직 성령님이 오셔서 너희와 함께 거하심으로 성령의 권능으로만이 가능한 일이며, 때문에 이는 성령의 사역임을 확실하게 밝혀주신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오직 성령님이 내 안에 계셔서 성령의 권능으로 세상으로부터 오는 그 어떤 비난과 미움과 배척과 박해에도 용기를 잃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됨을 말씀해 주고 있다. 성도는 주님이 주신 진리의 말씀을 붙잡고 그 어떠한 박해와 죽음에도 우리를 주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고백으로 끝까지 믿음을 고수하게 됨을 사도 바울은 말씀해 주고 있다.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6-39).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라고 승리를 미리 선고하여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