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으로 읽는 아버지의 마음

왜 하나님을 '선' 과 '진리'라고 부르는가? '악'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직 은혜 2019. 9. 2. 01:46
 

 

하나님께 속한 '선' 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선'이란 창세전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 즉 우리에게 향한 구원과 생명을 입혀주시는 은혜를 성경은 말씀하신다. 때문에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한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의도하신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이며 과정이다. 하나님은 '선'의 근원이시며 생명의 본체이시기에 그분이 계획하시고 일으키시고 성취하시는 모든 일은 '선'이다. 본질상 그분은 '선'이시며 '의' 이시며 ‘거룩'이시며 '영광'이시며 '영생'이시기 때문에 인간이 인식하는 '악'이라는 개념은 하나님에게는 해당될 수가 없다. 그분은 선이 시기에 이 역사를 선으로 주관하시며 선으로 성취하신다.

하나님은 인간과 같이 둘로 갈릴 수 없는 분이시기에 성경은 끝임 없이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하나의 통일체이시며 하나로 연합을 이루시는 선이시다고 말씀하여 주시고 있다. 그분은 한 지체로 절대로 떨어질 수도 끊어져 나갈 수도 없는 한 몸을 이루시기 위해 자신의 선하신 영으로 우리를 자녀로 신부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시는 방법으로 구원을 성취하여 주셨다. '선'은 그분의 본질이며 성품이시기에 그분이 일으키시는 모든 일들은 선한 뜻을 이루시기 위한 필연적인 단계이며 과정이다. 선악과를 따먹은 죄인의 선악구조로 하나님의 일을 '선과 악'으로 둘로 쪼개서 판단하고 인식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선악과를 따 먹은 인간은 타락한 선악구조로 하나로 주신 진리를 둘로 쪼개서 인식하고 판단하고 정죄하게 되자 이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을 밀어내고 하나님처럼 행세하며, 자신들이 역사를 주관하는 왕으로 군립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 역사 속에서 인간 스스로 독립하여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 자신들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려는 그 망상과 노력과 수단과 방법들이 얼마나 허무하고 추악하며, 고통스러운 저주 아래 멸망을 스스로 재촉하고 있는지를 육신으로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이 선이시며 그분의 선한 구원과 은혜를 갈망하게 되며,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존재와 생명이심을 깨닫게 됨으로 그분의 선한 뜻에 순종하기를 최고의 행복과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는 이 역사라는 교육 터에서 하나님의 선택에서 제외된 모든 사단의 후손들은 그들의 악행과 죄악 됨에 내 버려짐으로 스스로 자신들의 죗값으로 영원한 지옥 불에 떨어지게 됨을 바라보면서 더욱더 하나님의 편애하시는 사랑과 은혜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당신의 자녀로 만들어 내시는 그분의 선한 열심과 은총을 깨닫게 됨으로 자기 부인의 십자가 삶을 지향하게 되며, 오직 그분 안에서 그분으로 채워지는 하나로 연합되는 삶이 바로 천국의 삶임을 몸소 깨닫고 내 안에서 성취됨을 체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창세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뜻대로 예정대로 일어나는 필연적인 과정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선한 뜻이 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이루어져 가는지를 설명하여 보여주시기 위해 당신의 성품과 정 반대되는 '악'이라는 것을 먼저 하늘나라에서 천사의 타락으로 등장시키신 것이다. 그리고 그 악한 존재가 일으키는 '죄'를 등장시키기 위해 '선악과'를 첫 인간 아담과 하와에게 던져주셨다.

인간이 아직 창조되기 전부터 '선'을 설명하는 천사의 타락이 먼저 있었고, 이들을 '사단'이라고 부르며, 가장 지혜롭고 간교한 '뱀'으로 등장시켜 교회와 성도를 상징하는 '하와'를 유혹하게 하셨다. 그리고 그 유혹의 매개체가 바로 선과 악을 한 괴일 속에 넣어서 주신 '선악과'이다. 인간은 선악과를 먹자 하나로 주신 진리를 두개로 쪼개서 선과 악으로 인식하고 모든 사물을 둘로 나뉘어서 도덕과 윤리적으로 판단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선악과’는 하나이다. 선이라는 과일과 악이라는 과일로 두 개로 나누어서 주신 것이 아니라, 한 과일 안에 선과 악이 함께 들어있는 하나이다. 비록 ‘선악’이라는 이름으로 둘로 보이지만 실상은 한 과일 한 나무이다. 즉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당신의 선을 나타내어 설명하며 당신의 선한 뜻을 이루시기 위한 교재로 매개체로 절대로 쪼갤 수가 없는 하나의 진리로 주셨다는 말씀이다. 즉 선악과를 먹고 무엇이 선인지를 알고 그 선으로 하나의 진리가 되어 생명안에 거하라고 그 옆에 생명나무를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전개되는 일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한 뜻을 이루시기 위한 필수적인 의도이시기에 둘로 나뉨이 없는 '선'이다. 그분은 처음부터 자신의 선하신 본질과 선하신 성품을 따라 오직 ‘선’이라는 하나의 통일체로 만물을 주관하시고 통치하시고 계신다. 절대로 둘로 나뉠 수가 없다는 말씀이다.

예를 들면, 노아 홍수의 사건에서 하나님은 인간의 극악한 죄가 파멸로 치닫자 홍수를 일으켜서 기식하는 모든 인류와 짐승들은 다 물로 죽이는 심판을 내리시고, 오직 은혜를 입은 노아 8 식구만 구원하셨다. 이는 창세전 택함을 받은 자만 은혜로 구원받게 되는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을 나타내기 위한 선이다. 소돔과 고모라의 경우에서도 하나님은 추호의 양보도 없이 죄인들을 몽땅 불로 심판하셨다. 하나님은 사울 왕에게 가나안에 쳐들어갈 때 가나안 부족들은 아린 아이와 모든 짐승들을 포함하여 하나도 남겨두지 말고 몽땅 죽이라고 명령하셨다. 이는 죄악된 세상과 선택에서 제외된 이 땅에 속한 자들에게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설명하는 선이다. 이러한 사건들을 어찌 인간의 선악구조로 도덕과 윤리적 관점에서 '악'이라고 판단할 수가 있겠는가 하는 말씀이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흙의 존재가 어찌 창조주의 일을 판단할 수가 있겠는가. 인간이 창조도 되기 전에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을 이루시기 위해 예정된 일이기에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모든 일들은 선을 이루시기 위한 선한 행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면,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은 것도 선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기에 선이며, 가인이 아벨을 살해한 것도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을 나타내기 위한 선이며,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어 이스라엘을 학대한 것도 장차 예수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한 약속을 이루시기 위한 선이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몽땅 시체가 된 것도 율법으로는 구원이 없음으로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과 생명이 임하게 되는 복음을 나타내기 위한 선이다.

인간은 창조주가 주관하시고 일으키시는 일에 참여할 수도 판단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무력한 흙의 존재이다. 이 역사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기에 그분은 자신이 만드신 것을 스스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없앨 권한을 행사하시는 분이시기에 지음을 받은 먼지 같은 존재가 창조주의 사역에 토를 달수가 없다는 말씀이다. 그리하여 바울이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롬 9:20-21).

그분은 당신의 선한 뜻을 이루시기 위해 '악'이라는 사단을 도구로 사용하신다. 그 악의 존재를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의 선과 의와 구원과 생명을 우리에게 알리시며, 인간의 악의 정체성을 직시하고 깨닫게 하시며,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거역하는 사단의 후손들의 종말이 어떠한 것인가를 보여주심으로 하나님이 편애하시는 그 은혜의 선물이 얼마나 귀중하며 얼마나 소중하며 감사한 일인지를 깨닫게 함으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스스로 그분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기를 가장 기쁜 일로 받아들이는 자기 부인의 십자가 삶을 지향하게 하신다. 그리고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선과 의이시며 절대적 진리이시며 구원이시며 생명이심을 체험으로 믿음으로 소유하게 하신다.

인간은 죄인으로 출생하면서 그 마음이 부패하기 때문에 절대로 선한 것이 나올 수가 없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것이 바로 마음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기적 중의 기적은 만물보다 부패하고 패역한 인간의 마음 안에 그분이 친히 뚫고 들어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고 우리 안에 새 마음을 바꾸어 주시기 위해 자신의 영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탄생시키는 ‘거듭남’이라는 방법을 택하셔서 그분의 완벽한 은혜 안에 스며들어 하나로 완성하신 데 있다.

‘악’이라 무엇을 의미하는가?

창 3:7-10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후 첫 번째로 알게 된 것이 바로 자신들의 벌거벗은 모습이다. 그리고 그 벌거벗음을 부끄러운 ‘악’이라고 스스로 판단하여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부끄러움을 덮으려는 행위가 나오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한 나무, 한 과일로 주신 ‘선악과’를 ‘선’과 ‘악’으로 둘로 쪼개서 인식하고 판단하여 자신들의 ‘벌거벗음’을 ‘악’으로 인식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덮어 감추려는 수고와 고통의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아담과 하와에게 옷이라는 것을 입히시지 않으셨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그 모습 그대로를 하나님은 “심히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무것도 숨김이 없는 순결한 창조의 원 상태가 바로 ‘선’이었다는 말씀이다. 인간은 이제 자신의 육체를 부끄러운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고, 그 부끄러움을 자신들의 힘과 노력으로 덮어 감출 수 있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육체의 욕망대로 행하게 된 것이며, 이것이 바로 ‘악이며 ‘죄’이다. 이제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하는 인생이 시작되었고, 오직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자아’를 쌓기 시작한 것이다. 즉 모든 인간은 육의 탐심과 욕망으로 저지른 악행들을 덮어 감추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서슴없이 행하는 죄의 조성자가 된 것이다.

 

인간은 이제 선악과를 입에 물고 하나의 진리로 주신 모든 것들을 둘로 쪼개서 선과 악으로 인식하고 판단하는 세계관으로 하나님마저 판단하는 대척점에 서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역으로 행하며 하나님의 권위에 대적하는 원수가 된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선으로 주신 것을 악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하나님이 악하다고 하시는 것을 선으로 반대로 인식하고 행하는 마귀의 종이 되어 버린 것이다. 마귀의 종이 되어 마귀가 원하는 것을 하게 됨으로 그 누구도 진리와 생명의 말씀을 알아듣거나 깨닫거나 더욱더 순종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이제 인간은 하나님을 밀어내고 그 하나님의 자리에 ‘나’ 가 주인이 되어 내가 원하는 대로 인식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하는 자가 되어 스스로 멸망과 지옥으로 달리게 된다.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3:10-12).

 

이와 같이 사단의 후손으로 태어난 인간은 진리를 거슬러 선은 죽이고 악은 세우는 추악한 죄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아담의 첫 후손 즉 ‘사단의 후손’으로 태어난 가인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선 즉 ‘여자의 후손’ 아벨을 살인하는 사건이 첫 번째로 등장한 것이다. 그 최악의 상태가 바로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마저 박해하고 대적하여 ‘악’으로 판단하고 ‘죄’라고 정죄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리는 악행이었다. 선악과를 먹은 인간은 스스로 생명의 근원인 선은 죽이고, 죽음과 멸망으로 가는 악을 세우는 역으로 행하는 ‘마귀의 후손’들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이들을 향하여 ‘너희의 아비는 마귀다’ ‘독사의 자식’ ‘회칠한 무덤’이라고 저주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고 타락한 인간을 즉시 선에 속한 ‘여자의 후손’과 악에 속한 ‘사단의 후손’으로 분리시켜 원수가 되게 하시고 (창 3:15), 오직 당신이 택한 선에 속한 ‘여자의 후손’만 은혜를 입혀 구원과 생명을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그리고 선택에서 배제된 이 땅에 속한 자들을 하나님은 ‘사단의 후손’으로 정하시고 이들의 멸망을 미리 선고하셨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 3:15).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그 말씀대로 아담과 하와에게서 첫 후손이 탄생하는데 바로 ‘여자의 후손’으로 잉태된 아벨과 ‘마귀의 후손’으로 잉태된 가인이다. 이제부터의 역사는 ‘여자의 호손’과 ‘마귀의 후손’과의 구별이며, 이 땅에 속한 ‘마귀의 후손’을 통하여 죄가 얼마나 추악하며, 왜 하나님은 죄를 그토록 미워하셔서 저주와 죽음을 선포하셨으며, 그 파멸의 죄를 멸하시기 위해 반드시 자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으셔야 하셨으며, 왜 하나님은 오직 선택된 자신에게 속한 ‘여자의 후손’만 은혜를 입혀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셔서 영생을 입혀주시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하여 보여주시는 역사를 펼쳐 가신다. 즉 하나님은 사단이라는 존재를 들어 쓰셔서 모래알과 같이 수많은 죄인들을 이 땅에 속한 ‘사단의 후손’으로 만드시고, 창세전 이 세상에서 구원하기로 약속한 당신에게 속한 ‘여자의 후손’만 하늘나라로 들어 올리시는 구원을 성취하신 것이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 (잠 16:4),

 

이와 같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하늘의 묵시대로 펼쳐지는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역사이다. 그 누구도 그분이 일으키시는 일을 막을 수도 정죄할 수도 없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 자신의 전능하심을 나타내시며 이 세상에 속한 사단의 후손에 대한 심판을 보여주시기 위해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악하게 만드셨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내 표징과 내 이적을 애굽 땅에서 많이 행할 것이나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뻗쳐 여러 큰 심판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 (출 7:3-4).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롬 9:17-18). 예수님을 배신하고 은 30냥에 스승을 판 유다도 마귀의 역할로 택하셨다고 하신다.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요 6:70-71).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시며, 그분의 은혜는 어떻게 우리에게 임하시며, 나는 누구이며, 왜 이 땅에 보내졌으며,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잉태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신부 완성으로 본향 하늘나라에 입성하게 되는지를 설명하시기 위해 마귀와 그에게 속한 자식들을 잠깐 소품으로 쓰시고 있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마지막 결국은 마귀와 그들의 후손들이 불과 유황 불못에 던져지는 심판을 받게 됨을 선포하시고 있다.

 

하나님은 선이 무엇인지를 알게하기 위해 악이 함께 들어있는 ‘선악과’를 주셨다. 선악과를 먹고 악을 통하여 선을 깨닫게 되면 곧 생명을 소유하게 됨을 나타내시기 위해 동시에 생명나무를 옆에 함께 주셨다. ‘악’이라는 것은 ‘선’을 설명하여 나타내며 선을 이루시기 위해 잠시 등장시킨 매개체이다. 즉 하나님은 악의 존재를 통하여 하나님 자신의 선과 의를 우리에게 알리시며, 우리 인간의 정체성을 깨닫게 하시기 위하여 사단의 후손들을 완악하게 하셔서 죄를 드러내며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선과 사랑을 보여주시며 소유하게 하신다. 오직 당신에게 속한 ‘여자의 후손’만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입혀주셔서 모든 부끄러움을 가려주시고 그분만을 의뢰하는 그분만을 바라보는 자녀로 신부로 탄생시켜 영원히 함께 사는 영생을 입혀주신다.

죄인을 용서하시는 아버지의 긍휼과 사랑

아담은 죄가 들어가는 순간 하나님의 얼굴을 뵐 수가 없어 숨어서 떨고 있었다. 죄가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갈라놓은 것이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사 59:2).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으로 아담을 구원과 사랑의 대상으로 지어셨기에 그분이 먼저 숨어서 떨고 있는 아담을 찾아와 주셨다. 그리고 장차 자신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죄와 죽음에서 아담의 후손들을 구원할 언약을 맺으시기 위하여 한 양을 잡아서 그 피로 영원한 속죄를 약속하셨다. 그리고 그 양의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혀 주심으로 장차 그리스도의 생명의 옷을 입혀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으로 살려내어 영원히 함께 하실 언약을 양의 피로 세우신 것이다. 하나님은 하와를 ‘산자의 어미’라 부르시고, 하와로부터 잉태되는 '여자의 후손'을 다시 살려내시는 첫 제사를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것이다. 즉 그리스도께서 '여자의 후손'으로 육신을 입고 오셔서 영원한 구원과 생명을 이루어주실 복음을 먼저 주셨다. 하나님은 첫 인간 아담의 타락에서 이미 죄가 사하여지는 구원과 생명의 복음을 먼저 주셨다.

인간이 사단의 유혹을 받아 죄에 빠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기적 중의 기적은 죄로 죽은 인간을 사랑으로 다시 살려내시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능력과 지혜이다. 그 지혜는 바로 우리의 모든 죄가 예수에게 전가되고,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에게 전가됨으로 그분의 의로운 생명으로 의인으로 태어나는 기적이다. 즉 그분의 희생적인 사랑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예수에게 전가됨으로 우리는 죄의 죽음에서 영원히 사는 의인으로 전변되는 은혜를 입은 것이다. “예수는 우리가 죄를 범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 나셨느니라” (롬 4:25).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 1-2).

그분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자신의 사랑의 열정을 모형과 그림자로 계시하여 주시고 설명하여 주시고 있다. 그분의 자상한 사랑은 아담과 하와의 연합에서 읽을 수 있다. 하와는 아담의 갈비뼈로 만든 사랑의 분신이다. 아담은 자신의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인” 하와를 자신의 목숨으로 사랑하였기에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하와가 주는 죽음의 선악과를 서슴없이 먹은 것이다. 이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신보다 더욱 사랑하사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주는 죄를 서슴없이 먹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심으로 자신을 우리에게 완전히 내어주시는 사랑의 모형이다.

그분은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의 방법으로 구원을 성취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죄인을 의롭다 하시고, 영으로 당신의 자녀로 신부로 태어나게 하시고, 사랑으로 하나로 연합되어 영생의 천국에 들어가게 하신다. 이것이 바로 지혜이며 능력이며 가장 고귀한 유일한 사랑이다. 그분은 사랑하는 자를 위해 죽으시고 또 사랑하는 자를 위해 다시 부활하셔서 영원히 함께 사는 영생을 입혀주신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의 타락과 죄를 공부하게 되면, 실망과 좌절이 아니라 오히려 희망과 감사와 그분의 지혜와 사랑에 감탄하게 되며, 오직 그분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하게 되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이 세상에서 제일 큰 죄는 우리가 판단하는 도덕과 윤리적 범함이 아니라,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시고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주시는 하나님을 알아보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고 나에게 향한 구원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무지이다. 그뿐만 아니라 아버지께서 자신의 생명으로 이루어주신 은혜로운 구원을 죄인에게서 나오는 공로와 의로 가로채려는 악한 시도이다. 즉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신의 의지적 노력과 열심으로 공로와 업적들을 쌓아서 구원에 도달할 수 있다고 자고하는 교만과 자신들의 의를 세워 하나님처럼 행서 하려는 시도가 바로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는 가장 큰 죄이다. 그리하여 죄인에게서 나오는 ‘거짓의’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끊어지는 망령된 짓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갈 5:4). 이러한 자는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된 영원히 구원받지 못하는 ‘마귀의 자식’ ‘독사의 새끼’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동참이 없이 하나님 홀로 이루셨기에 인간에게 대가와 노력과 행위를 원치 않으신다. 그분은 처음 시작부터 인간이 얼마나 하나님께 순종하고 충성하며 의로운 행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가 하는 인간이 주인공이 되는 스토리로 역사를 이끌어 가시지 아니하신다. 반대로 인간은 얼마나 연약하고 이기적이고 악하고 패역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는 무능한 존재임을 나타내시는 스토리로 역사를 이끌어 가신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과 의와 영광과 사랑을 나타내시는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인간을 처음부터 가장 비천하고 연약하고 무익한 먼지, 티끌로 만드시고 오직 하나님의 생명력으로 말미암아 살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다. 인간에게 구원과 생명을 입혀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심을 나타내시는 드라마로 역사를 이끌고 가신다.

4000여 년 동안 하나님과 교제하여온 이스라엘 백성을 보면, 얼마나 무능하고, 무지하고, 어리석은 백성인가를 읽을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 어떤 의롭고 선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대적하고, 반항하고, 불순종하며 결국은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시체가 되었던 백성들이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사사건건 메시아를 대적하고 결국 언약의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한, 하나님마저 살해한 최악으로 나간 백성들이었다. 바로 우리 인간의 죄의 본성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모든 민족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제일 약한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4000여 년이라는 기나긴 역사를 이끌어 오셨다. 선악과나무로부터 시작하여 구약 전체의 흐름은 인간의 끊임없는 불순종과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의 열정을 나타내신 하나님 자신의 계시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인간의 패역함을 보여주는 역사이다. 성경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타락한 인간의 그 추악하고 부패하고 위선적이고 거짓된 본성으로 열린 무덤과 같이 썩어있는 존재라는 것을, 즉 인간의 육적 본능과 죄의 본성을 드러내셔서 보여주시고 깨우쳐 주시는 역사이다. 이에 많은 사람들은 거룩한 성서에 어떻게 그렇게 부패하고 부도덕적인 이야기들로 적혀 있는가고 반박한다. 바로 우리 자신들의 패역한 죄 성을 보여주는 거울이며, 동시에 그러한 인간에게 끝없는 용서, 긍휼, 자비, 오래 참으시며, 자신을 죽이기까지 사랑하시는 애타는 사랑을 보여주신 하나님의 열정과 마음을 전하고 있다.

호세아에서 이스라엘에게 향한 하나님의 그 끓어오르는 사랑의 열정을 읽을 수 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에게 천하고 음란한 창기를 아내로 취하라 (호 1:2)고 하신다. 레위기에서는 “선지자는 백성 중 처녀를 위하여 장가들라” (레 21:1314)라고 율법을 주시고, 지금 호세아에게는 율법을 어기고 창녀를 아내로 맞이하여 결혼할 것을 요구하신다. 그리고 “그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다” (호 2:16)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나는 네가 음란한 창기라 할지라도 너를 영원히 버리지 않고 내 아내로 맞이하여 결혼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끓어오르는 사랑의 결의를 보여주고 있다. 즉 상대방이 죄인이었던 얼마나 죄를 많이 지었던 전혀 상관없이 오직 사랑으로 우리를 하나로 합치는 결혼으로 이끌고 가시겠다는 하나님의 결심이다.

우리는 그분의 아내 되기에는 너무나 자격 미달이다. 우리는 이미 죄에 팔려서 죄의 종이 되어 매일 죄를 범하는 타락한 음녀들이다. 거룩하시고 흠이 없는 그분이 죄의 창기가 되어버린 우리의 행음을 용서하시고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고 당신의 거룩한 옷을 입혀주셔서 죄의 창기가 되어버린 우리를 아내로 맞아들이겠다는 말씀이다. 그분은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도 내놓을 수도 없음을 알고 계심으로 그분 홀로 우리를 위하여 구원을 이루시고, 아무런 대가도 조건도 행위도 공로도 원하지 않으신다. 오직 우리를 사랑하는 그 이유 하나로 모든 것을 덮어주시는 은혜로 우리를 신부로 맞아주신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아버지가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를 주셨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아버지의 사랑이 먼저 있었기에 우리가 그분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은혜를 입게 된 것이다. 인간은 이 거룩하고 위대한 사랑에 할 말이 없다. 말하기를, 바다를 먹물로 삼고 산을 두루마기로 삼아도 그분의 사랑을 다 형용할 수 없다는 고백이 나오게 된다.

결론

그렇다면 인제는 조금 이해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주권자로서 세상의 모든 일들을 처음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 끝까지 자신의 예정하신 섭리에 따라 역사를 주관하시고 통치하신다.

첫째, 만약 에덴동산을 먼저 주시지 않았더라면, 천국이 어떤 곳인지, 왜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 되는 고향인지를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만약 선악과나무를 먼저 주시지 않았더라면 사단을 통하여 나타내주시는 하나님의 선과 의와 생명과 사랑을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죄가 무엇이며, 무엇이 선이며 악인지 사물을 구분할 수가 없었을 것이며, 무엇이 죽음이며 영생인지 알 수가 없었을 것이며, 왜 그리스도만이 진리이며 생명인지를 깨닫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리면 하나님의 의와 사랑은 세상에 나타날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선악과를 먹어야만 아버지의 ‘의’ 와 사랑을 나타내는 구원이 성립된다. 즉 죄가 있음으로 아버지의 의와 선을 알게 되며, 죽음이 있음으로 구원과 생명이 성취되고, 지옥이 있음으로 천국을 갈망하고 소유하게 되며, 율법이 있음으로 복음으로 영생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선악과를 주시고 인간의 타락을 허락하신 아버지의 ‘의’의 비밀이며 계략이다. 그리고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영광과 사랑을 나타낼 수 있는 걸작임을 알 수 있다.

둘째, 하나님은 인간이 마귀에게 유혹당하여 그분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마귀를 택한 대가로 고통과 죽음의 저주를 내리시는 심판의 하나님이 아니시다. 그분은 처음부터 인간을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랑의 대상으로 하나로 연합하는 한 몸의 통일체로 지어셨다. 때문에 그분의 관심은 인간의 불순종, 타락, 반항, 대적과 같은 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인간에게 자신의 사랑과 영광, 의와 선을 나타내시며 입혀주시며 그분의 사랑과 생명 안에 들어가 하나로 연합을 이루시는데 목적을 두고 역사를 이끌고 가신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17). 그분은 우리를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랑의 대상, 자녀와 신부의 대상, 한 몸이 되는 연합의 대상으로 지어셨기에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롬 8:39)는 말씀이다.

셋째, 만약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여 4000여 년이라는 구약의 역사를 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우리에게 계시되며, 그분은 어떤 성품을 가지고 계시며, 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육의 본능인 죄 성을 뼈저리게 깨닫지 못하였을 것이다.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불순종하고 대적하고 거역하는 이스라엘의 역사는 바로 우리 자신의 악한 본성과 패역함을 그대로 적나라하게 보여주신 우리의 거울이다. 만약 인간의 끝없는 패역한 죄와 하나님의 끝없는 긍휼과 사랑을 그림처럼 투명하게 보여준 구약의 역사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신지, 어떻게 인간을 사랑하시며 그 사랑이 어떻게 우리에게 표현되고 그 구원과 생명이 어떻게 우리에게 입혀지는지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또한 우리 인간은 얼마나 악하고 패역하며 그러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셔서 당신의 독생자를 주신 그 은혜와 사랑을 깨닫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역사는 인간의 끝없는 배신과 타락함과 패역함을 보여주는 역사이며, 그러한 죄인을 끝까지 참아주시고 은혜를 입혀 영생으로 이끌고 가시는 그분의 한없는 사랑을 보여준 역사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영의 눈이 어두워서 가설적인 그림자와 모형만 바라보고 거기에 목숨을 걸고 열심히 행하며 논쟁하며 불평을 늘어놓는다. 영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 영원한 실체에 목숨을 건다. 유대인과 같이 모형과 그림자에 목숨을 걸지 말고, 모형과 그림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계시되는 영의 진리를 깨닫는 자가 되어 영생을 소유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히 8:5)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형으로 주신 율법을 지키려는 행위에 생애를 걸지 말고, 율법의 사슬에서 벗어나, 계명을 어기는 죄책감에서 벗어나, 아담을 책망하는 불평에서 벗어나, 오직 복음의 은혜 속에 들어가 그분의 생명 안에 거하기를 먼저 구하며 진리 안에서 자유한 자로 평강과 기쁨을 누리는 자가 되자. 하나님은 자신의 선한 뜻을 이루시는 목적으로 처음 시작부터 마지막 끝까지 자신의 예정하신 섭리에 따라 역사를 이끌어 가심을 깨닫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