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2: 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2: 15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2: 16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2: 17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 할꼬 하고
12: 18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2: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
하자 하리라 하되
12: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12: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마 6: 19-21
6: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모든 인간은 아무리 많은 재물과 부와 인기를 누리고 있음에도 현실의 ‘나’에 만족하지 못하고 매일같이 미래의 더 행복한 ‘나’를 꿈꾸고 추구하고 있다. 미래 되고 싶은 나를 쫓고 있는 끝없는 욕심을 ‘탐심’이라고 부르고 있다.
첫 인간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모든 것을 소유하고 다스리며 하나님과 함께 하는 그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 하는 ‘미래의 나’를 실현하기 위해 결국 금하신 선악과에 대한 탐심을 억제하지 못하고 죄와 사망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탐심이 죄를 낳고,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롬 6:23) 사도바울이 정확하게 지적하신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아담의 후손들은 그렇게 자신의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끝없이 닿지 않는 미래를 쫓는 탐심으로 스스로 죽음의 무덤을 파고 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옙 2:3). 즉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탐심으로 사는 존재이기에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다고 (롬 1;26)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선포하신 것이다.
롬 1;28~32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 살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모든 인간은 그 존재 자체가 탐심이기에 그 탐심에서 나오는 것들이 얼마나 죄악된 것들인지를 사도바울은 정확하게 나열하여 폭로하고 있으며, 그 탐심이 무엇인지를 깨달으라고 율법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다.”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다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롬 7:7). 전에는 탐심이 죄임을 알지 못하였으나, 율법의 진의를 알고 나니 그 율법의 내용이 전부 인간의 탐심에서 나오는 죄에 관한 폭로와 경고더라는 것이다. 즉 육신의 모든 생각은 오로지 나를 우상으로 삼아 내가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자아 건설과 자아 확장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나의 유익만을 추구하며, 이것을 탐심이라고 한다. 그래서 육신의 탐심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죄악이라고 하시고 그 악에 대한 심판을 죽음으로 정해 놓으신 것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롬 6:23).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 1:15).
골 3:6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본문에서 어떤 청년이 예수님의 설교에 불쑥 끼어들어 형이 나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지 않으니 그것을 좀 해결해 달라고 요청을 한다. 당시에는 랍비들이 일반 시민들의 재판관 역할도 하고 있었기에 청년은 예수님을 랍비로 보고 그런 요청을 했을 것이며, 히브리 사람들의 유산상속에는 형이 3분의 2를 갖고 동생이 3분의 1을 갖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형이 아마 동생에게 줄 3분의 1마저도 자기 것으로 챙겼기에 동생으로서 당연히 그것을 찾기 위해 주님께 그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그의 정당한 요청을 ‘탐심’이라고 말씀하시며 나는 너희들의 그러한 탐심을 해결해주는 재판장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자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즉 그분은 인간의 세속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이 세상 재판관으로 오신 분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인 탐심이라는 죄를 완전히 제거하고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신 분이심을 뜻한다.
그리하여 주님은 그 청년에게 직선적으로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눅12:15)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주님은 ‘탐심’이라는 단어와 ‘생명’이라는 대조적인 단어로 무엇인가를 설명하시고 있다. 즉 청년의 요구가 아무리 정당해 보여도 하늘의 생명과 무관한 이 세상의 재물을 원하는 것이기에 그 자체가 탐심의 산물이며, 그가 구하는 것이 바로 생명과 상관없는 탐심이라는 말씀이다. 그 청년이 마땅히 구할 것은 멸망으로 정해진 탐심의 산물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보물이신 예수그리스도를 구하는 것임을 알게 하기 위해 주님은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 (마 6:19-21) 라는 비유를 주신 것이다.
어떤 부자가 밭에 소출이 기대 이상으로 풍성하자 현재 곳간의 규모로는 다 담아 둘 수 없으니 더 큰 곳간을 지어 거기에 담아 놓고 평안히 쉬며 먹고 마시고 즐거워 하자라고 미래를 준비하는데 주님은 그 부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부르신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눅12:20). 인간에게 있어서 제일 소중한 것은 생명인데 부자는 이 세상의 재물을 자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히 여기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보물로 여기고 열심히 쌓고 지키려고 온갖 힘을 다하더라는 것이다. 즉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소유의 많고 적음으로 정하여 놓고 전 인생을 보물 쌓기에 투자하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는 자는 하나님에게 합당치 못한 자’ (눅12:21) 라고 주님은 말씀하시면서 그들이 보물이라고 쌓아놓은 그 재물이 어떻게 되는가를 마태복음 6장에서 좀 더 상세히 설명하여 주시고 있다.
마 6:19~21
6: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 하느니라
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 하느니라
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주님이 말씀하시는 ‘이 땅에 속한 보물’은, 이 세상 사람들이 합의하여 정해놓은 재물, 힘, 권세, 인기, 명예 등과 같은 것들이며, 마귀의 탐심에서 발산한 산물이기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이 땅에다 쌓아둔다고 하여도 ‘좀이나 등록이 해하며 도적이 들어’ 절대로 보존할 수가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주님은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하데 있지 아니하니라” (눅 12:15) 라고 말씀하심으로 사람의 생명과 복은 이 세상 재물로 채워지거나 연장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재물을 쌓아서 이 땅과 함께 멸망으로 끝이 난다는 말씀이다.
반면에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라는 말씀에서 ‘보화’는 곧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골 2:23). 하늘의 보화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소유한 자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영생을 가진 자이기에 당연히 하늘의 보물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채워진다는 말씀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밭에 감춰진 보화의 비유에서 자신을 보화로 비유하시고, 동시에 주님은 자신을 진주를 구하는 장사로 성도를 귀한 진주와 같은 보화로 묘사하신 것이다 (마 13:44-46). 하늘의 보화를 하늘에 쌓는다는 것은, 하늘의 보화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과 영생에 관한 진리의 말씀을 배우고, 깨닫고, 소유하는 그 믿음의 성장을 ‘하늘에 보물을 쌓는’것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예를 들면 세상 신을 만들어 장사하는 우상숭배에 몸을 담그고 있었던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친히 찾아와 주셔서 그를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어 광야의 나그네 인생에서 하나하나의 사건을 통하여 아브라함을 믿음의 아비로 하나님이 키워내셔서 하늘의 보화로 만드신 것이다.
“네 보물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 (마 6:21) 라고 말씀하신 것은, 모든 관심과 마음이 오로지 육신의 욕망을 충족하여주는 이 땅의 재물에 가 있는 이 땅과 운명을 함께 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에게 있어서 이 세상의 것들이 바로 자신을 건설하고 확장하여 인기와 영광을 누리게 해주는 보물이며 그 보물이 바로 자신의 존재가치이기 때문에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전형적인 대표로 등장한 한 부자 청년의 이야기에서 그 부자 청년은 자신이 평생 공들여서 이 땅에 쌓아놓는 보물을 보존하기 위해 하늘나라의 영생을 스스로 거절한 자이다. 주님은 이 땅에 열심히 보물을 쌓고 있는 바리새인을 상징하는 부자 청년을 등장시켜 그들이 목숨으로 지키고 싶어 하는 그 부물이란 어떤 것인가를 상세히 설명하여 주시고 있다
막 10:17-22
10:17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 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0: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10:19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10:20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10: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쫓으라 하시니
10: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는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라고 영생을 구하고 있었다. 그가 주님에게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은, 자신의 율법 지킴을 선으로 자랑하여 주님으로부터 인정받아 영생을 얻은 자로 확인 도장 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 청년은 어려서부터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 하니이까” (마 19:20) 라고 말할 정도로 자신의 율법 지킴에 부족함이 없다고 자랑하며 영생을 확보한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때 주님은 그의 의도를 간파하고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분이 없다’라는 말씀을 던짐으로 ‘선은 오직 선한 하나님에게서만 나오는 것이며, 너는 처음부터 선한 자가 아니기에 너에게서는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고 직선적으로 그가 자랑하는 율법적 행함의 선행을 완전히 부정해 버림으로 영생은 율법적 행위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다고 못을 박은 것이다.
주님은 부족함이 없다고 자랑하는 그 율법 지킴이 바로 위선적이며 자기 의를 쌓기 위한 거짓 행위였음을 폭로하기 위해 그에게 치명적인 말씀을 던진 것이다.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쫓으라"(마 19:21). 율법의 진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데 네가 정말 율법을 지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너를 사랑하는 그 우상을 몽땅 버리고 영생인 나를 따르는 것으로 너의 율법 지킴을 증명하고 너의 보화를 하늘에 쌓으라고 영생으로 초청하신 것이다. 그러자 그 청년은 이내 근심하며 슬퍼하며 주님을 떠난 것이다.
이와 같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구원과 영생임을 깨닫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신 선한 율법을 자신들의 자존심과 존재가치를 세워 인기와 칭찬과 영광을 얻어내는 ‘보물’로 인식하고 목숨을 걸고 지키고 행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주님은 어릴 때부터 열심히 율법 지킴으로 쌓아놓은 그 모든 업적과 공로들을 회칠한 무덤으로 마귀의 행사로 매도하고 그들을 마귀의 자식이라고 저주하시자 이들은 이내 자신들의 ‘보물’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여 버린 것이다.
주님은 부자 청년이 어려서부터 지키고 행한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이 땅에 보화를 쌓는 어리석은 행위임을 폭로하신 것이다. 어릴 때부터 쌓아놓은 율법 행함의 공로를 완전히 부정해 버림으로 영생은 ‘나’라는 우상을 내려놓고 나의 존재가치를 몽땅 버리는 자기 부인의 자리로 내려가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을 소유하는 믿음으로 입혀지는 것임을 설명하신 것이다. 즉 영생은 쌓아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버리는 자리로 내려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거지 나사로와 같이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입혀지는 진리를 제시하신 것이다.
주님께서 율법적 행위를 이 땅의 재물로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은, 인간이 선하다고 의롭다고 내어놓는 행위의 공로는 오직 자신의 의와 자랑과 인기를 쌓아서 자신을 높여 이 세상에서 영광을 얻기 위한 탐심이며, 그 탐심이 바로 자신의 영혼을 좀먹는 벌레이며, 영혼을 도덕 질하여 멸망으로 끌 고가는 가증한 것들임을 지적하신 것이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 하느니라” (마 6:19). 그래서 주님은 너희들이 이 세상의 것들을 영원한 보물로 착각하고 지키기 위해 곡간을 크게 짓고 쌓아두려고 하는데 ‘오늘 밤에 네 영혼을 거두어가면 그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눅 12:20) 라고 물으신 것이다. 그렇게 생명과 상관이 없이 자신을 위해 재물을 쌓는 자를 ‘하나님께 부유치 못한’ ‘어리석은 자’ (눅 12:21)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그다음 구절에서 이 세상 재물로 자신의 의와 영광을 챙겨가지려는 부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함을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지 못하는 것으로 비유하신 것이다 (막 10:25). 그러자 제자들은 놀라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막 10:26) 라고 물은 것이다. 즉 율법을 열심히 지켜 행하여 의인이라 인정받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천국에 못 들어가면 누가 들어갈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이다. 그러자 주님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답을 주신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막 10:27). 즉 구원은 사람이 원해서도 아니고 율법을 지켜 행하는 의지적 노력과 열심도 또한 혈통으로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선택과 권한이라는 말씀이다. 즉 창세전 구원받기로 택함을 받은 자에게만 구원이 임한다는 은유의 말씀이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말씀하고 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자들이니라”(요 1:12-13).
창세전 선택받은 자는 처음부터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기에 반드시 이 세상의 것들을 다 버리는 세상에 대해 죽는 십자가 죽음을 통과하게 되며, 그리스도의 영으로 새롭게 탄생되는 성령의 거듭남으로 하늘나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나를 부인하는 내가 죽어야 하는 십자가의 삶을 살아낼 수가 없다. 그래서 그분이 성령으로 우리 안에 직접 뚫고 들어오셔서 나의 모든 삶을 직접 주관하시고 간섭하시며, 내려감의 자리로 끌어내리시기 위해 광야와 같은 긴 인생의 시험과 훈련과 연단의 고난을 주시는 것이며, 또한 그러한 고난을 참고 견디어 정금같이 연단하도록 끊임없이 매일 일용할 하늘의 신령한 말씀을 주어 나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여” (히 4:12) 진리로 세워 주신다.
성경에서 탐심의 대표적인 인물로 등장한 야곱은 온통 자신의 유익과 행복만을 추구하는 자로 수시로 자신의 탐심에 이끌려 사기, 속임, 거짓말, 등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이 땅의 것을 취하여 부자가 되려고 무척이나 애를 쓴 자이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오직 자신의 욕심과 야망으로 열심히 이 땅에 보화를 쌓는 일에 전념한 자이다. 그런 야곱을 하나님은 환도뼈를 꺾어서 자신을 철저히 부인하고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의지하는 지팡이를 평생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이스라엘로 바뀌주셨다. 하나님은 아직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그의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주관하시는 동행을 하신 것이다. 아직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은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롬 9:13) 라고 말씀하신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친히 그를 지명하시고 구원에 합당한 자녀로 이끌고 가시는 그 길이 너무나 험난하기에 야곱은 자신의 인생을 한마디로 참으로 ‘험악한 나그네 길이었다’ (창 47: 9) 라고 고백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와 함께 동행 하시면서 먼저 탐심으로 가득 찬 그의 실체를 하나하나 폭로하시고 벗겨서 부숴버리는 , 즉 옛 야곱은 죽게 하시고, 새 사람 이스라엘로 다시 태어나게 하시는 공사를 전 인생 동안 하신 것이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열심에 의해 야곱은 이스라엘로 태어나 영원히 십자가 지팡이만을 의지해야 살 수 있는 하나님 절대 의존적 존재로 완성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진짜 버림은 돈, 재물, 인기, 명예와 같은 개념 속에 내용으로 들어 있는 ‘나’라는 우상이다. 그래서 주님은 ‘네 자신을 부인하는 십자가를 날마다 지고 나를 따르라’라고 십자가의 길을 제시하여 주셨다. 나를 부인하는 내가 십자가에 죽는 그 자아의 죽음을 ‘날마다’ 하라는 말씀이다. 나의 존재가치를 쌓아서 사람들의 존경과 칭찬과 인기와 명성을 얻기 위한 모든 시도를 주님은 이 땅에 보물 쌓기로 표현한 것이며, 그 보물은 멸망으로 정해진 이 땅에 속한 것이기에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마 6:19) 라고 표현하신 것이다. 하지만 이 땅의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예수 생명만을 추구하며 하늘나라만을 소망하는 자는 하늘의 보화가 되어 하늘에 쌓게 되는 복된 길로 인도를 받게 됨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부유한 자로 의로운 자로 인정을 받는다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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