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의 진의

로마서 (3:13-18) 목구멍은 열린 무덤, 입에는 독, 발에는 피, 눈앞에는 하나님을 두러워함이 없는 본질적 죄악

오직 은혜 2023. 4. 25. 02:49
롬 3:13-18
13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사도 바울은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분이 이루어주신 십자가 구원의 의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십자가 복음을 확실히 제시해 주기 위해 악을 행할 수밖에 없는 죄인의 절망적인 실체를 폭로하고 있다. 모든 인간은 ‘죄 아래 묶여 있는’ 죄의 종이며, 때문에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3:12) 라는 사실을 논증하기 하기 위해 구약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죄가 인간을 지배하고 파멸로 끌고 감을 몸의 신체기관으로 표현한 것이다. 바울은 구약의 시편, 이사야, 전도서의 말씀을 모아서 인간의 죄성을 육신의 ‘몸’으로 확실하게 진단하고 해부하여 보여줌으로, 죄와 사망을 삼켜 먹은 (선악과)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은 오로지 파멸과 사망으로 향하는 죄악일 뿐 선이라는 것이 절대 나올 수 없음을 증거하고 있다: 첫째,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밖으로 보나 안으로 보나, 올바로 보나 거꾸로 보나, 철저한 죄인이다. 둘째, 그러므로 죄인은 하나님의 구원대상으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만이 살 수 있는 존재임이 증명된 것이다. 즉 바울은 죄와 사망에 갇혀 사는 인간은 구원의 대상이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덮음으로 죄가 도말되고 생명을 얻게 되는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인간의 절망적인 죄의 실존을 거침없이 폭로하고 있다.

마음과 입으로 나오는 말로 짓는 죄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의 지체가 하나님을 아는 일과 믿는 일과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 즉 선한 것을 말하고 선한 것을 행하는 의로운 일에 사용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악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은 인간의 내면으로부터 즉 마음에 있는 것들이 입으로 쏟아 나오는 말로 증거가 됨으로 바울은 그 입술에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고 지적한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3:13-14).

바울이 인간의 목구멍을 ‘열린 무덤’이라고 표한 한 것은, 첫 인간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삼킴으로 죄와 죽음을 삼킨 것이며, 때문에 인간의 목구멍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은 죄밖에 없음으로 인간의 마음 상태를 ‘무덤’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무덤이 열려져 있다는 것은 인간의 죄가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죄의 오염을 말하고 있다. 즉 죄와 사망을 삼켰기에 당연히 그 목구멍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은 썩은 시체가 품기는 악취이며, 그 악취는 사람을 죽이는 독이기에 내 뱉는 것들을 “저주와 악독”이라고 정확하게 인간의 실존을 지적한 것이다. 예수님도 인간의 마음 상태에 대하여,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막 7:21~23)라고 인간 마음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더러운 것들이 감추어 있으며 그것들이 입을 통하여 나올 때는 사람을 죽이는 독이 됨을 바울은 “독사의 독”(3:13)이라 부른 것이며, 예수님도 동일하게 인간의 마음 상태를 회칠한 무덤이라고 부르시고 그 무덤에서 나오는 죄악들이 사람을 죽이는 독이기에 인간을 ‘뱀, 독사’라고 부른 것이다(마 23:33).

이와 같이 바울은 인간의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온갖 더러운 것들이 바로 무덤 안에 있는 썩은 시체와 방불한 것이며, 무덤이 열려져 있다는 것은 그 악취를 품기는 썩은 시체의 냄새가 막힘이 없이 온 땅을 진동하는 죄로 오염되었기에 이 세상 전체가 바로 무덤임을 제시한다. 그리고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죄악들이 목구멍을 통해 혀로 내 밷을때는 마음에 있는 그대로를 내 뱉는 것이 아니라 치장하고 포장하여 사람을 속이는 거짓을 말하며 그 거짓이 곧 사람을 죽이는 독임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3:13), 그러므로 ‘인간은 다 거짓된 존재’(3:4)이기에 혀로 입술로 내뱉는 말이 곧 거짓이며 그 거짓으로 사람을 죽이는 독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거짓을 말할 때마다 진리처럼 말하여 자신도 속고 다른 이들도 죽이는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너희는 거짓의 아비 마귀의 자식이다’,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저주하신 것이다. 거짓은 인간에게 가장 익숙한 습관처럼 매일 내뱉는 고질적인 죄의 습성이다. 바울이 지적한 봐와 같이 인간은 몽땅 거짓된 존재이기에 진리라는 것도 선이라는 것도 의라는 것도 나올 수가 없다. 그것은 이 세상 기반이 곧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거짓이기에 아예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내가 곧 진리이다”라고 말씀하심으로 그 진리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속한 것이며 예수님 자신이 곧 진리이심을 제시하셨다. 인간 자체가 바로 거짓된 존재이기에 절대로 진리를 알 수가 없음으로 진리를 말살하려고 한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진리를 말함으로 너희가 믿지 아니하는 도다”(요 8:45).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하는도다”(요 8:40).

그렇게 혀로 속여서 입술로 내 뱉는 그 모든 것들이 독이 되어 진리를 대적하며 진리를 죽이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실제로 인간은 하나님을 찬양하여야 하는 그 입술로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조롱하고 훼방하고 멸시하고 정죄하여 죽이는 독사의 역할을 한 것이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 3:8). 인간은 혀와 입을 통하여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잡아 삼키는 살인을 하고 있음으로 정확하게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3:13)라고 인간의 악마의 본성을 지적한 것이다. 모든 인간은 문둥병 환자처럼 죄로 썩고 곪아서 냄새가 진동해도 살점이 떨어져 괴물이 되어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좀비와 방불한 존재이다. “열린 무덤”과 같이 썩고 더러운 뼈다귀로 가득한 괴물을 어찌 온전하다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문둥병으로 썩어 들어가는 더러운 우리를 돌아보시고 끌어안고 자신의 의의 생명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온전하게 태어나게 하시고, 자신의 찬란한 의의 옷으로 덮어주시는 은혜로 의인이라 칭하여 주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신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오직 냄새나고 썩어빠진 악독뿐이다. 그분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의 더러운 악독이 제어되고, 의의 옷을 입혀주심으로 은혜로 말미암아 새롭게 그분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은혜이며 ‘죄인은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바울이 외치는 복음이다.

행위로 짓는 죄의 잔인성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3:15-17)

바울은 이사야 59장 7-8절을 인용하여 살육과 파괴를 일삼는 극도로 난폭한 잔인성을 지적한다. “그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 그 사상은 죄악의 사상이라 황폐와 파멸이 그 길에 끼쳐졌으며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인간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함으로 강탈과 폭행과 악행과 잔인한 살인을 일삼아 스스로 파멸과 고생을 자초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죄를 짓는 행위를 ‘빠른 발, 피’로 묘사한 것은, 마음에 품고 있었던 저주와 악독이 입을 통하여 말로 나오고, 그 말이 ‘행동’으로 나타날 때 생명을 잃게 됨으로 ‘피’로 표현하고, 생명을 죽이는 도발적인 살인에 조금도 주저함이 없는 인간의 잔인성을 ‘빠른지라’로 표현하고 있다. 인간은 죄인으로 태어나 죄를 말하고, 죄를 행하며, 생명을 죽이는 파멸의 길에 들어선 가망이 없는 철저한 죄인이며, 심판의 대상임을 확실히 제시하여 준 것이다. 첫 인간이 죄와 사망을 삼켜 먹고 에덴동산을 떠난 후, 그 첫 후손 가인이 의인 아벨을 살해하는 첫 살인이 발생하였으며, 그렇게 아담의 후손들은 스스로 ‘파멸과 고생’길에 들어선 것이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롬 5:12-13).

인간이 걸어온 역사가 바로 피 흘리는데 빠른 파멸과 고생이 아니었던가! 온갖 탐심과 욕망과 야망으로 하나님처럼의 세력과 왕국을 세우기 위해 침략, 폭력, 약탈, 살인과 같은 잔인한 전쟁을 일삼으며 한 번도 끝난 적이 없다. 특히 십자군 전쟁과 같은 종교전쟁은 권력과 세력 확장에 미친 자들이 일으킨 살인 전쟁으로 얼마나 무수한 생명들을 앗아갔는가! 바울은 바로 이와 같은 인간의 잔인성과 지독한 욕망을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여 적나라하게 폭로한 것이다.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3:15-17).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2:9),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2:5)함과 같이 모든 인간은 죄를 쌓아서 스스로 환난과 곤고와 고생과 파멸의 지옥 형벌을 자초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들은 독사의 독일뿐, ‘악에서 어찌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는가’(욥 14:4), 절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사야의 말씀대로:

사 59:3-7

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3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워졌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냄이라
4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진실하게 판결하는 자도 없으며 허망한 것을 의뢰하며 거짓을 말하며 악행을 잉태하여 죄악을 낳으며
5 독사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짜나니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올 것이니라
6 그 짠 것으로는 옷을 이룰 수 없을 것이요 그 행위로는 자기를 가릴 수 없을 것이며 그 행위는 죄악의 행위라 그 손에는 포악한 행동이 있으며
7 그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 그 생각은 악한 생각이라 황폐와 파멸이 그 길에 있으며
8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행하는 곳에는 정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인간의 지독한 악의 본성을 폭로하셨다. 그들의 마음에는 독사의 알을 품고 있음으로 죄가 죄를, 악이 악을 낳아 온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차 있다는 말씀이다. 죄악에서 태어난 인간의 손에는 피, 입술에는 거짓, 혀에는 악독이 가득하며, 그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 그 생각은 오로지 악한 생각으로 황폐와 파멸만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이 없다고 죄인의 비참한 실체를 정확하게 폭로하여 주셨다. 특히 독사의 알을 품고 거미줄을 짠다는 말씀은, 죄가 죄를 낳는 죄의 만연함과 오염을 말하며 거미줄과 같은 폭악과 잔인함과 속임수로 생명을 해치고 죽이는 일에 신속함을 말한다. 그리하여 이사야는 근본적으로 악한 인간에 대하여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라고 인간 자체가 악이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며, 바울은 근본 마음의 뿌리가 심히 거짓되고 부패하고 악함으로 모든 사람이 다 악인이며 선이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것이다. “모두 진리에서 떠나 쓸모없게 되었고 선을 행하는 사람이 없으니 하나도 없다”(3:12).

인간의 육은 어미 뱃속에서 형성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죄를 떠날 수 없이 죄인으로 사는 존재로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그리하여 “모태에서부터 패역한 자이며”(사 48:8),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라”(시 51:5)라고 죄인으로 태어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고백하고 있다. 이 땅의 티끌로 육체를 입은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기가 신이 되어 하나님처럼 행서 하려는 망상에 빠진 아담의 후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향하여서는 그 영이 죽고, 세상을 향하여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자아' 가 살아서 죄를 행하는 철저한 '마귀의 후손'들이다. 때문에 절대로 스스로 자신의 죄악된 실체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모든 간섭에 자신을 몽땅 맡기는 자기부인의 자리로 내려갈 수가 없다. 그리하여 인간의 죄성을 뼈저리게 파악한 바울은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5)라는 최종 결론을 내린 것이다. 즉 이 세상 본체가 바로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었으며, 인간의 타락한 속성을 따라 “가시와 엉겅퀴로” 저주받은 땅이며, 죽은 시체들을 쌓아서 파멸로 치닫고 있기에 이 세상과 육체에는 처음부터 하늘에 속한 선이란 아예 없다는 결론이다. 인간이 비록 자신들의 편리와 안일과 유익을 추구하기 위해 이 땅의 지식과 재질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삶을 극대로 문명으로 발달시키고 있지만, 동시에 신속히 빠른 죄의 오염으로 이루다 말할 수 없는 타락과 잔인성과 파멸적으로 스스로 멸망을 재촉하고 있다.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아직 천지를 창조하시기도 전에, 이 세상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먼저 있었으며, 인간의 타락으로 “가시와 엉겅퀴”를 내어 인간을 파멸과 고생길에 빠지게 한 것이다. 때문에 죽은 시체들을 쌓아서 파멸과 종말로 치닫고 있는 이 세상에는 ‘평강’이란 찾아 볼 수가 없으며, 죄와 사망에 갇혀 사는 인간에게는 처음부터 하늘의 ‘평강’이 없었기 때문에 ‘한가지로 무익하며’,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함으로 찾는 자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평강의 길’이란 바로 구원과 생명이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이시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우리 주님은 우리를 이 세상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주시기 위해 평강의 왕으로 오셨으며(사 9:6, 7), 십자가에서 평강의 길을 열어주시고 우리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하늘나라의 평강을 우리 마음에 부어주셨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홀연히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제일 먼저 제자들에게 주신 것이 바로 평강이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요 20:19), 즉 인간은 하나님의 절대적 의존자로 창조되었기에 하나님으로 채워진 생태가 바로 평강이며, 그 평강은 불가항력적 은혜로 그분이 친히 우리 마음 안으로 직접 뚫고 들어오셔야만이 채워짐을 알게 하시기 위해 굳이 굳건히 닫쳐 있는 문을 뚫고 홀연히 제자들 앞에 나타나셔서 평강을 부어주셨다.

인간은 죄와 사망을 삼켜 먹은 그 순간부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었고 스스로 하나님을 떠난 존재가 되었다.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 3:8-10). 스스로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난 그때부터 인간은 내가 나를 주장하고 나를 지키고 나의 가치를 챙기는 두려움과 불안과 근심과 걱정과 고생으로 스스로 파멸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죄를 삼킨 인간에게 저주와 사망이 던져지고(창 3:15-19), 모든 인간은 그 사망과 동반하는 지옥의 삶 속에서 두려움에 떨면서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다. 사람이 하나님과 화평케 되는 평강의 길을 찾지 못하는 근본 원인은 바로 죄 때문이다. 죄악의 담이 가로막고 있는 한 죄인은 절대로 하나님과 화평할 수 없으며 평강의 길을 알 수도 들어갈수도 없다. 즉 인간이 죄악을 쌓아서 스스로 평강의 길을 담으로 막고 있다는 것이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사 59:2).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절대적 의존자로 하나님의 생명력으로 존재하는 아무런 근심, 걱정, 불안, 두려움 없는 평화로운 모습으로 살아야하는 존재이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창 2:25). 수치와 부끄러움이 없는 평강으로 자연과의 평화로운 조화로 가장 이상적인 삶을 사는 것을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라고 묘사한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생명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악에 빠지게 되자 이내 자신들의 순전하고 평화로운 모습을 수치로 여기게 되고 스스로 하나님 보기를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떠나 숨어 사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즉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는” 선하신 창조를 부끄러움으로 ‘악’으로 판단하고, 이 세상의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 옷을 만들어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는 거짓된 육체가 된 것이다(창 6:3). 즉 자신에게 가치를 부여하여 자신의 뜻대로 육체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자아’라는 탐심이 작동된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주관하는 목표와 가치를 설정하는 존재가 되었으며, 그 순간부터 육체의 탐심을 채우기 위한 두려움과 불안과 근심과 걱정으로 고생과 파멸의 삶이 시작되었고 그 결국은 사망이다.

이와 같이 인간은 끊임없이 평강의 길을 가로 막는 가시와 엉겅퀴를 생산해 냄으로 결국 인간 자신들이 생산해낸 그 가시와 엉겅퀴에 숨이 막혀 멸망과 죽음으로 끝나게 됨으로 바울은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나니”(3:15-16)라고 말한 것이다. 그렇게 ‘파멸과 고생’으로 죽음에 갇혀 사는 우리를 살려내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평강의 왕으로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을 없애고 화평을 이루어 주시어 하나님에게로 향하는 평강의 길을 열어주셨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죽음의 두려움에 떨고 있는 우리에게 예수님 자신을 주심으로 평강의 왕이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근심과 두려움이 없는 영원한 평강을 누리는 영생을 얻게 된 것이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 평강은 하나님의 속성이며, 십자가의 피로 이루셨다. 바울이 이르기를,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골 1:20)라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그리스도의 피로써 화평을 이루셨다고 확실히 선포하고 있다.

‘눈’으로 짓는 죄

18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흙으로 지음을 받은 첫 인간 아담과 하와는 아직 타락하기 전, 육신의 본능을 따라 하나님의 법에 대한 불순종과 말씀을 왜곡하는 거짓과 하나님처럼 되려는 욕망이 먼저 ‘눈’에서부터 발동한 것이다. 하와는 아직 선악과를 따 먹기도 전에 벌써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임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창 3:6) 함과 같이 눈으로 들어온 탐욕으로 번민하고 있었고, 마음으로 오는 지성의 욕망으로 뱀의 꼬임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타락한 것이다. 인간의 눈은 이제 이 땅의 것만을 바라보고 이 땅에 마음이 꽃혀있기에 하늘의 것을 바라볼 수 없게 되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건함이 죽어버린 것이다. 이 땅에 것만 바라보는 인간은 그 본성이 밑바닥이며, 더럽고 부패하고 강퍅하며, 자아에 굶주려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반항하고 진리를 대적하며, 자신의 가치를 챙기며 자신의 이름을 높여 영광을 갈취하는 데에 열혈 되어 있다. 바울이 지적한 봐와 같이,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 하였느니라”(롬 10:3). 그렇게 눈으로 들어온 탐욕으로 죄에 빠진 인간은 “죄의 범을 섬기는”(롬 7: 25) 죄의 노예가 되었음을 바울이 지적하고 있다.

예수님은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마 6:22-23)라고 눈이 온 몸의 등불이기에 눈이 나쁘면 온몸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눈으로 들어오는 탐욕은 오로지 내 육신의 편리와 유익과 탐욕을 채우는 ‘자아’를 세우는데 출발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 마음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라고 죄의 특징이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임을 제시한 것이다. 모든 인간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며”(롬 1:28) 자신이 자신을 주장하는 육체가 되어 온갖 죄악들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음으로 바울은 인간을 “열린 무덤”으로 표현한 것이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3:13-15). 죄와 사망을 삼킨 인간이 곧 ‘무덤’그 자체이기에 절대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하늘의 의와 선이 나올 수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신들의 세계관으로 가치를 매기는 ‘의’를 정해놓고,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경건하게, 정의롭게, 선하게, 절제와 구제로 사는 것이 ‘의’와 ‘선’이라고 판단하고, 열심히 자아를 건설하고 확장하고 실현하는 거짓된 의와 영광을 쌓고 있다. 밖으로 나타나 보이는 현상은 회칠한 무덤처럼 깨끗케 보이나, 그 목구멍은 열린 무덤과 같이 끝없이 저주와 악독이 터져 나옴을 실라하게 지적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4000여 년이란 구약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떠나 육체가 된 인간의 탐심과 ‘자아’에 집착하는 집요함과 도저히 끊어낼 수 없는 끈질긴 죄의 본성을 낱낱이 드러내어 인간의 극도로 부패하고 잔인한 정체성을 확실히 보여주셨다. 그리고 신약에 와서 저희 조상의 죄악된 혈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유대인들이 조상들보다 더욱 완악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대적하고 멸시하고 박해하며, ‘나’라는 우상을 섬기기 위해 하나님을 죽여 버리는 살인까지 가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말하는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3:18)라는 육체의 실존이다.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오만하여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하나님을 살해하려는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도 없다”라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는 인간의 불가능함과 무능함과 우매함과 무지함을 드러내어 인간의 ‘없음’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이 세상 땅이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죄인의 시체를 삼켰음에도 흔적 없이 사라져 ‘없음’이 된 것과 것이 같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가능성이 철저히 기각되어 ‘없음’으로 귀결되는 역사로 주관하신다.

이와 같이 바울은 인간의 전적 타락을 인간이라는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마음, 생각, 감정, 양심, 의지, 판단, 지식이라는 내면적으로 숨겨있는 본질적 죄성과 밖으로 뿜어 나오는 인간의 혀, 입술, 발의 행동과 그 행위로 스스로 파멸과 고생과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결국을 제시한 것이다. 즉 인간의 마음의 뿌리에서부터 나온 그 악독이 인간을 파멸로 끌고 감을 정확하게 지적한 것이다. 그러므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태어난 인간은 완전 타락한 죄인임을 선언한 것이다. 이것이 모든 인간은 '죄 아래 있으며' 때문에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3:12)라고 죄인의 본질적 속성을 제시한 것이다. 죄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됨으로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라고 죄에 대한 형벌과 구원이 주는 영생의 복음을 선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