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 2: 1-10
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10 우리는 그의 만드신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바울은 우리가 이 세상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임을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사 자신이 희생제물이 되어 죄로 죽은 우리를 살려내시고 영생을 입혀주시는 은총이며 사랑의 절정을 나타내시는 언약의 성취이다. 구원은 창세전 하늘나라에서 예정하신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는 선한 뜻이며 십자가로 성취하셔서 영으로 우리에게 입혀주시는 은혜의 선물이다.
구원은 왜 선물인가?
구원은 창세전 하늘나라에서 계획하신 일이며, 인간의 동참이 없이 전적으로 그분 홀로 성취하신 영의 사건이다. 때문에 그분은 처음부터 이 세상의 것들을 들어 쓰시거나 인간의 그 어떤 노력도, 행위도, 업적도, 의로움도, 조건도 원치 않으시고,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이라는 방법으로 구원을 선물로 주시기로 정하셨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는 자에게 열심히 도를 닦으며 고행하는 의로운 행위와 같은 대가와 희생을 요구하지 않기에 자유 한 것이며, 내가 이루는 일이 아니기에 미리 준비하거나 걱정하거나 책임을 져야 하는 부담이 없이 전적으로 그분의 때와 선택에 따라 이루어지는 일이며 오직 은혜로 입혀주시기에 선물이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인간을 흙으로 만드심으로 인간의 육은 먼지, 티끌과 같은 허무한 존재임을 나타내셨다. 때문에 육신의 본성은 밑바닥이며, 더럽고 부패하고 강퍅하며, 탐심에 굶주려 있음으로 영이신 하나님을 알 수가 없으며 오히려 은혜로운 부르심에 반항하고 대적하며 구원자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극도의 죄에 도달함으로 진노의 심판 아래 놓여있는 것이 사실이다. 모든 인간은 세상 법으로도 하나님의 법으로도 철저한 죄인이기에 저주의 사망에 던져져 지옥 불에 떨어지는 것이 너무나 지당한 일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죄인을 먼저 찾아와 주셨고,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독생자를 희생 제물로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을 박으셨다. 즉 하나님께서는 죄 없는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의 죄를 정하시고”(롬 8:3), 죄인 된 육은 죄인을 처형하는 저주의 십자가에 못 박는 방법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영원히 멸하셨다. 죄인으로 태어난 나의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영원히 죽었다. 죽음이란 죄인이 끝난 종지부다. 그분께서 나를 대신하여 죄의 형별을 받으셨기 때문에 나는 죄로 인하여 다시는 저주와 죽음의 형벌을 받지 않게 되었다고 바울은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그분은 이제 성령으로 우리 안에 뚫고 들어오셔서 죄와 상관없는 새로운 피조물로 우리를 잉태시키시고, 의롭다 칭하여 주시고, 하나로 연합을 이루셔서 우리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는 우리의 주가 되셨다. 그러므로 구원은 이 세상 땅에 존재하지 않는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줄 수 있는 유일한 영적 선물이며 오직 사랑과 은혜로만 입혀주시기에 선물이다. 이는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으로만이 가능한 일이기에 바울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라고 구원은 선물임을 확실하게 선포하고 있다.
왜 구원은 최소 되지 않는가?
구원은 아버지께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신” (엡 1: 4), 영원부터 예정하신 뜻이기에 (엡 3:11), 그분의 영원한 본질적인 속성을 따라 영원한 것이다. 즉 그분은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약 1:17) 태초로부터 계시는 영원하신 분이시기에 영생의 속성을 따라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은 거짓이 없는 영원한 생명이다.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이다”(딛 1:2).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함과 같이 구원은 아버지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희생 제물로 보내 주셨으며,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음으로 자신의 의로운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셔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 자신의 보혈의 피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탄생시켜 주셨기에, 거듭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그분의 영원한 속성을 따라 영원한 자녀가 된 것이며 중도에서 타락하였다고 하여 버리거나 포기하거나 지옥에 떨어뜨리는 일은 없다는 것을 성경이 증명해 주고 있다.
만약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중도에서 타락하거나 죄를 짓거나 시험에 들어 하나님을 배신한다 하여 또한 행위가 의롭지 못함으로, 말씀대로 살지 못함으로, 믿음이 약함으로... 등의 행위에 따라 구원이 취소되거나 유지되거나 박탈당한다면, 육신을 입은 인간 중 영생의 구원을 받을 자는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죄인으로 태어난 인간에게서는 구원에 이르는 의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하나님의 영원한 속성과 위반되는 일이며, 그분을 영생이라고 부를 수가 없으며, 그분이 주시는 구원을 은혜의 선물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된다. 처음부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행위가 의로워서 구원을 약속받은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연약한 티끌로 지음을 받았기에 유혹에 빠졌으며, 죄와 죽음에 처한 죄인이었기에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아무런 대가도 조건도 없이 구원을 선물로 약속받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의인을 위해 구원을 이룬 것이 아니라, 죄인을 위해 구원을 이루셨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눅 5:32). 즉 처음부터 우리에게 행위에 따르는 구원을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선물로 주시기로 창세전부터 정하신 뜻이며, 때문에 한번 받은 구원은 그분의 영원한 속성을 따라 영원한 것이다.
타락한 아담은 어떻게 되었는가?
첫 인간 아담이 육신이 타락함으로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원한 영적 생명을 약속받는 은혜를 입었으며, 그래서 복음이다. 첫 인간 아담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고,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으며, 자연과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는 왕으로 시작은 축복이었다(창 1:28). 하지만 이내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여 타락함으로 저주와 죽음에 빠진 것이다. 아담이 타락함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세상에 들어온 것이다’(롬 5: 12). 그렇다 하여 만세전부터 하늘나라에서 이루어 놓으신 죄인에게 향한 십자가 구원의 언약이 취소된 것은 아니다. 아담이 타락함으로 구원이 취소된다면 아담의 후손인 우리는 존재할 수도 없으며 죄인에게 향한 구원의 언약은 허사가 되고 만다. 처음부터 아담은 하나님의 영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하나님에게 속한 자로 구원과 영생이 약속되어 있었기에, 그가 비록 중도에서 타락하여 온 인류를 사망으로 끌고 간 범죄자였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향한 구원을 취소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영원한 구원을 언약하셨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양을 죽여서 그 피로 아담과 하와를 포함한 죄인들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실 것이며, 그 양의 가죽으로 옷을 입혀주심으로 오직 은혜를 입혀주시는 사랑으로 다시 살려 내실 것을 약속하여 ‘산자의 어미’라 이름하여 주셨다. 즉 하나님 자신이 희생제물이 되어 죄와 사망에 빠진 아담의 후손을 살리시겠다는 언약을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아담과 맺으신 것이다. 즉 타락으로 죽음에 던져진 아담을 다시 살리셔서 영원한 당신의 자녀로 새로운 창조를 일으키시겠다는 언약을 양의 피로 맺으신 것이다. 온 인류를 죄에 빠뜨린 아담은 하나님으로부터 행위 언약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희생제물이 되어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오직 은혜로 구원하시겠다는 영원한 언약을 하나님의 일방적인 주권으로 받은 것이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취하여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의 연약함과 육신으로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가 없음으로 죄에 빠질 수밖에 없으며, 그 죄의 결과는 멸망과 죽음임을 보여주고 가르쳐주시기 위해 처음부터 이 땅의 티끌로 육신을 만들어 주셔서 인간의 가치가 바로 ‘없음’임을 나타내셨다. 그리고 ‘선악과’에 계명을 붙여주심으로,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말씀으로 주관하시기에 그분의 말씀이 곧 생명이며, 때문에 말씀에 대한 거역은 곧바로 하나님의 생명력에서 끊어져나가는 죽음임을 알게 하셨다. 진정한 의도는,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 자신의 실존적 존재가치를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지 않고 영원히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하늘나라의 왕국을 누리기 위한 데 있었다. 처음부터 인간에게 계명을 어길 수밖에 없는 나약하고 불가능한 티끝로 육을 입혀주셨기에 흙을 입은 육신은 반드시 없어져야 하며 벗겨져야 함을 알게 하셨다. 영만이 영원한 실상이며 영으로 거듭나야 만이 신랑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어 영원한 나라로 편입되기 때문이다. 즉 나를 사랑하여 주시는 신랑 예수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게 하는 몽학선생의 역할로 선악과나무를 주셨고, ‘먹지 말라’는 계명을 붙여주셨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아담을 죽음의 심판으로 영원한 지옥으로 끝낸 것이 아니라, 반대로 아담과 그 후손들을 살리기 위해 아무 죄도 없는 양을 아담을 대신하여 죽게 하시고 그 피의 가죽을 입혀주셔서 ‘산자의 어미’라 칭하여 주신 것이다. 즉 아담과 그 후손들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무죄한 짐승을 도살하여 피를 흘리게 하심으로, 장차 그분의 피로 인간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실 것임을 계시하셨으며, 양의 가죽으로 범죄 한 인간에게 옷을 지어 입혀 주심으로 장차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입혀주실 것임을 언약하셨다. 반드시 둘째 아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인간은 비로소 흙으로 만들어진 육체를 벗고 영원히 죽지 않는 영의 생명을 소유하게 되는 복음을 계시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로운 목적은 타락하여 죄와 사망에 빠진 당신의 택한 자들을 당신의 의로운 생명으로 구원하여 살리는 데 있다. 비록 아담의 타락으로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지만, 오히려 아버지의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극치에 도달하여 구원과 영생을 얻는 은혜에 은혜를 더한 축복이 되였고, 모든 것을 최고의 이상적으로 회복시키는 영광이 된 것이다. 이 놀라운 은혜의 구원을 깨달은 바울은,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롬 5:20-21)라고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받았음을 외친 것이다. 하나님은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시기에(히 13:8)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의 선물은 영원한 것이며, 이는 영원부터 하늘나라에서 예정하신 영원한 구원이기에 우리가 받은 구원을 ‘영생’이라고 성경은 반복하여 강조하고 증거하고 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 즉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영원한 생명이기에 중도에서 취소되거나, 빼앗기는 일이 없다는 약속이다. 성경에서는 무수한 예를 들어 죄인이 아무리 타락하고 악한 죄를 범하였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끝까지 인내하시고 용서하여 주시며 긍휼을 베풀어 회개로 돌아오게 하시며, 끝까지 구원으로 인도하심으로 구원은 오로지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입혀지는 선물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때문에 구원은 아무런 조건도 대가도 공로도 없이 오직 무한한 용서와 사랑으로 우리 죄인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는 능력과 은혜이다.
구원은 무한하신 용서와 사랑으로 오직 은혜로 입혀지는 영원한 선물이다
하나님께서는 첫 인간 아담이 말씀에 불순종하여 타락하였을 때, 일방적으로 구원의 언약을 약속하셨다. 구원은 죄와 사망에 빠진 인간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기필코 구원하여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언약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구원은 영원히 변치 않는 언약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셨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며 이삭에게 하신 맹세며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라(시 105:8-10).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맹세하시고, 언약하시고, 행하시는 구원임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백성을 동참시켜 영원히 함께 하시는 은혜를 입혀주신 것이다. 즉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장차 예수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보내 주셔서 천하 만민이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아 하늘나라의 복을 누릴 것임을 영원한 언약으로 주셨으며, 그 언약이 이삭과 야곱과 이스라엘에게 이어졌으며, 우리에게까지 즉 하나님이 정하신 때까지 영원히 지속되는 영원한 언약이라고 약속하셨다.
4000여 년의 이스라엘 역사는 끊임없이 타락한 역사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고, 끊임없이 하나님께 반항하고 배신하고 대적하며, 하나님과 이방 신을 혼합시키는 음란한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으며, 자신들의 육적 욕망을 이루기 위해 그 어떤 신도 마다하지 않고 이방 악한 신들을 줄기차게 섬겨왔다.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는 모든 인간의 온갖 패역함과 죄악들이 낱낱이 드러나고, 인간의 불가능함과 무능함과 우매함과 무지함이 완전히 드러나는 역사이며, 인간의 모든 가능성이 철저히 기각되는 역사이다. 동시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 자신을 끊임없이 인간에게 나타내어 보여주심으로 하나님은 용서와 사랑이시며, 인내와 자비가 풍성하신 분이시며, 긍휼과 평강이시며, 죄가 없으신 거룩하심과 의로우심과 경건하심과 선하심과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심을 나타내어 보여주셨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셔서 4000여 년이라는 육적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타락과 패역한 역사를 주시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과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넘치고 크셔서 그 어떤 죄악도 모두 용서가 됨을 깨닫지 못하였을 것이다.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불순종하고 대적하고 거역한 이스라엘의 역사는 바로 우리 인간의 사악한 죄의 본성과 추악한 부패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거울이며, 그럼에도 끝까지 구원의 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와 사랑과 긍휼과 자비와 용서와 인내를 투명하게 보여준 위대하신 성품과 영생의 속성을 마음속 뼈저리게 깨닫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패역한 구약 역사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끈질기고 고집스럽고 멈출 수가 없는 추악한 죄성과 무능함과 불가능함을 깨닫지 못하였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시며, 어떻게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대적하고 거역하는 불가능한 죄인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며, 그 사랑이 얼마나 위대하신지를 알지 못하였을 것이며, 죄인에게 향한 십자가 구원의 성취와 구원이 왜 선물이며 은혜인지를 깨닫지 못하였을 것이다. 또한 율법이 없었더라면 죄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을 것이고 은혜와 사랑의 복음을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 모든 선한 일들은 만세 전에 정하신 섭리대로 하나님 홀로 독립적으로 성취하여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입혀주시기로 맹세하신 언약이기에, 그분의 영원하신 속성을 따라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의 생명은 영원한 것이며, 중도에서 취소되어 자신의 피 값으로 살려낸 자를 다시 죽음에 처넣는 일은 없다는 것을 성경이 증명하여 주고 있다.
그렇다면 솔로몬은 과연 무엇으로 구원을 받았을까?
십자가 구원은 만세전부터 하늘나라에서 이루어 놓으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 (옙 1: 4-5).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진 뜻이기에 인간이 아무리 타락하였다 하더라도, 아무리 사악한 죄를 범하였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용서는 무한하시며 죄인에게 입혀주시는 구원은 영원하기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즉 구원은 이 세상 모든 것을 초월하여 죄인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는 능력이시다. 구원은 의인에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도저히 구원받을 가망이 없는 죽음에 던져진 죄인에게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입혀지는 선물이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의 공로와 사랑의 은혜로 말미암아, 더러운 죄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구원과 영생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십자가에 달린 살인강도의 모습,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는 음란한 창녀의 모습, 민족의 피를 빨아 이익을 챙기는 세리 마태의 모습, 그리스도를 배신하는 베드로의 모습,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교회를 박해하는 난폭한 바울의 모습, 간음 죄뿐 아니라 살인죄까지 범한 다윗의 모습, 4000여 년 동안이나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반항하고 대적한 이스라엘의 모습, 하나님의 아들을 살인한 유대인의 모습…우리가 가지고 있는 죄인의 모습 그대로 오직 무한하신 용서와 사랑으로 받아 주시기에 ‘은혜’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아무리 악할지라도 아무로 주홍 같은 죄악을 범하였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과연 용서치 못할 죄가 있겠는가? 과연 택하심을 받아 구원받은 자가 중도에 죄를 범하였다 하여 구원이 취소되거나 도로 빼앗아 가는 일이 있을 수가 있겠는가?
구원에 관하여 제일 많은 의문과 의견이 분부한 인물이 바로 솔로몬 왕이다.
- 솔로몬은 말년에 저지른 죄 때문에 과연 구원을 얻었을까?
- 과연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주셨다가 타락하면 도로 빼앗아 가시는 것일까?
솔로몬은 하나님의 총애를 받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로, 최고의 부와 권력과 명성을 누린 왕이었다.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왕상 3:12-13). 솔로몬이 누린 최고의 지혜와 부와 영광은 하나님께서 주셔서 누린 것이다. 하지만 그가 가진 부와 영광이 그를 교만하게 만들고 타락하게 함으로 말년에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빠진 것이다. 그는 이방 여인과 결혼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에 불순종하여 이방 여인들을 왕비로 삼아 이방 신들을 끌어들여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의 타락과 음란에 빠지게 하는 엄청난 죄악을 저지른 것이다. 솔로몬의 이와 같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범죄로 인하여, 과연 그가 받은 구원이 취소되었는지 무척 의심스러운 질문들이 제기된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에게 구원을 주신 후, 행위에 따라 또는 마지막 짓은 죄의 결과로 구원을 취소하신다면, 솔로몬은 당연히 자신의 죗값으로 구원이 박탈당한 것이며, 솔로몬뿐만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 앞에 범죄한 모든 인물들은 행위의 의로움으로 구원을 지켜내지 못하였기에 탈락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만약 솔로몬의 말년의 타락으로 구원이 취소되었다면, 그의 시가서 잠언서와 아가서와 전도서는 성경에 진리의 말씀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 지옥에 떨어진 마귀의 자식의 저서가 어찌 진리와 생명의 말씀으로 성경에 올려 우리에게 진리를 제시할 수가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최고의 권력자로 이 세상 지혜와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함으로 그가 누린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얼마나 “헛되고 헛된 것”인지를 친히 경험함으로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이 영원한 진리와 생명이심을 나타내셨다.
성경은 구원은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얻는 것이라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확실하게 제시하고 있기에 솔로몬의 구원은 의심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솔로몬은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쓰시기 위해 이스라엘 왕으로 택한 그릇이며, 때문에 그의 인생은 하나님이 설계하신 섭리대로 살아낸 인생이므로 우리의 선악구조로 성공이냐 실패이냐를 판단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함과 같이 솔로몬은 하나님의 허락 하에서 극적인 두 인생을 살아냄으로, 이 세상을 소유한다고 하여도, 모든 지혜와 부귀와 영광을 누린다고 하여도, 하나님이 없는 그 인생은 아무런 낙이 없는 헛되고 헛된 허무한 인생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은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의 보배를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내가 돌이켜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보았나니”(전 2:8-15).
이와 같이 솔로몬은 바람을 잡으려는 자신의 헛되고 허무한 인생을 한탄하면서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영원한 진리라고 자신의 믿음을 반복하여 고백하고 있다.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전 2:17).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전7:20). 그럼으로,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 12:1).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 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전 7:13)라고 그는 마지막으로 전도서를 통하여 자신이 살아낸 헛되고 헛된 타락한 인생 경험에서 얻어낸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과 자신의 정체성을 정확히 알고 있었으며, 깊이 뉘우치고, 후세의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길을 걷지 않도록 조언한 것이다. 즉 젊은 시절부터 창조주를 기억하고 경외하며,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영원한 진리이시며, 그분의 명령을 지킬 때 비로소 인생의 허무에서 벗어나 진정한 복을 누리게 됨을 권면한 것이다. 그는 비록 범죄로 얼룩진 인생을 살았음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지혜로운 통찰력으로 잠언과 아가서와 전도서와 같은 진리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우리는 솔로몬의 인생에서 우리 자신들의 얼룩진 인생을 읽어내며, 솔로몬과 같이 도저히 용서치 못할 죄를 범하였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는 이 세상을 덮고도 넘치게 충만하시기에 그 어떠한 죄라도 모두 용서가 되고 도말 되는 무한하신 긍휼과 자비와 인내와 같은 은혜의 사랑을 읽어내는 것이다. 성경에서 솔로몬의 타락을 허락하시고 그의 타락한 죄악들을 숨김없이 낱낱이 기록함으로 솔로몬과 같은 극도로 타락한 죄인도 구원하여 주시고 진리로 인도하시는 은혜의 복음을 읽어내는 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계시이다. 즉 그가 쓴 잠언과 아가서와 전도서와 같은 아가서들이 성경 말씀에 올리게 하심으로 아무리 흉악하고 추악한 죄라도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치 못할 죄가 없다는,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이 임하는 복음을 계시해 주고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짓은 죄에 따라 형벌과 심판과 저주를 내리시는 분이 아니라, 주홍같이 붉은 용서치 못할 죄악이라도 은혜의 덮음으로 십자가 보혈로 흰 눈같이 깨끗하게 씻어주셔서 반드시 당신의 품에 안기는 구원을 입혀주심을 나타내신 것이다. 만약 하나님의 무한한 용서와 사랑과 긍휼과 같은 은혜의 덮음이 없다면 이 세상에서 누가 구원을 받아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만약 구원받은 자가 죄를 끊지 못하고 반복하여 죄를 짓는다고 하여, 유혹과 시험을 이기지 못하여 죄에 빠졌다 하여, 행위가 의롭지 못한다 하여, 받은 구원을 다시 잃게 된다면, 육신을 입은 모든 인간은 죽지 않는 한 죄를 완전히 끊어낼 수 없음으로, 단 한 사람도 구원받을 수가 없으며,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죽음은 헛된 것이며, 믿음도 은혜도 필요 없게 된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 2:21). 우리는 가시와 엉겅퀴로 저주받은 이 죄악된 세상에서 죄인으로 태어났기에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육신이 죽지 않는 한 육신에서 나오는 죄를 완전히 끊어낼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매 순간마다 무한히 용서로 덮어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그분만을 붙드는 믿음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으로 택하셨기에, 그분만을 붙드는 믿음을 주셨으며, 자신의 피 값으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자신의 영으로 잉태시켜 신부로 한 몸을 이루어 주셨기에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는 그분의 사랑에서 끊어져 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0:28-29). 우리는 그분 안에 있고, 그분이 우리 안에 있는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 된’ 하나이기에 절대로 떨어질 수가 없기에 반드시 우리를 당신의 신부의 합당한 자로 새롭게 빚어주신다. 그래서 그분이 성령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당신을 죽도록 사랑하는 아름다운 신부로 만들어 가시는 것이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 하사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4-5).
구원은 오직 택한 자녀에게만 주시는 선물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하늘에 속한 당신의 자녀를 이 세상 마귀의 자식들로부터 구별하시고, 멸망으로 정하신 이 세상으로부터 분리하여 주심을 천지창조의 시작에서 계시하셨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창 1:2)으로 뒤 섞여 있었던 우주에 빛(예수그리스도의 빛)이 임하자 먼저 분리가 일어난 것이다. 하늘과 땅을 분리하심으로, 장차 하늘에 속한 자와 땅에 속한 자를 구별하시며, 낮과 밤을 분리하심으로, 장차 빛에 속한 자와 어둠의 지옥에 속한 자를 구별하실 것임을 계시하셨다. 그리하여 인간이 아직 후손도 태어나기 전에 먼저 여자의 후속, 즉 하나님의 자녀와, 뱀의 후손, 즉 이 세상에 속한 마귀의 자식을 분리시키시는 선언을 하셨다(창 3:15). 그리고 빛의 대척점에 있는 이 세상 어두움은 이제 그 빛에 의해 심판의 과정을 겪게 되며, 결국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지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아니하며” 어둠과 죄가 없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만 충만한 "만물을 새롭게 단장한 새 예루살렘(새 하늘과 새 땅)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다"(계 21:1-5)고 언약하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천지창조에서 빛의 나라와 어둠의 세계를 하늘과 땅의 분리로, 빛의 자녀는 하늘나라로 들림을 받게 되고, 어둠에 속한 마귀의 자식들은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으로 정해놓으셨다.
예를 들면,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에서도 알곡과 가라지는 씨가 완전히 다른 종자이기에 가라지의 씨는 가라지로 알곡의 씨는 알곡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가라지는 마귀가 뿌리는 것이고(마 13:25-28), 알곡은 하나님이 옥토에 심겨놓으셨다 (마 13: 25-30). 마찬가지로 양과 염소는 그 모양새는 비슷하지만 각기 다른 종자이다. 양이 그 행위가 아무리 악할지라도 결국은 양으로 귀국하게 하시며 염소로 전환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염소가 아무리 착한 행위로 공로와 업적을 쌓아서 하나님 앞에 가져온다고 하여도 염소를 양으로 착각하여 천국에 들여보내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양과 염소는 처음부터 하나님이 정해놓은 운명으로 각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다른 역할로 쓰임을 받는 것뿐이다. 즉 하나님은 창세전부터 양과 염소를 당신의 우편과 좌편으로 갈라 놓으셨다.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은 아직 후손도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의 자녀인 여자의 후손과 마귀의 자식을 철저히 구별하셨으며 이 둘의 분리는 이미 완료된 일이다. 청세 전에 택함을 받은 양만 예비 된 천국으로 끌어올리시고, 염소는 이 땅의 지옥으로 밀어 넣으신다고 예수님은 선포하셨다. 마태복음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택함을 받은 오른편에 있는 양들에게 "창세로부터 예비된 나라(천국)에 들어가는" 은혜를 입혀주시고(마25:34). 반면에, 자신들의 의와 행위를 열심히 자랑한 왼편 염소에게는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지옥)에 들어가라"(마25:41)라는 저주를 내리셨다. 염소가 아무리 열심을 부려도 염소에서 양으로 바뀌는 출생과 신분의 변화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 치의 변함도 회전도 없으시다(약 1:17)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그분은 모든 일을 창세전 정하신 하늘의 뜻을 따라 이 땅에서 역사로 펼쳐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께서 먼저 당신의 택한 자녀에게 당신 자신을 계시하여 주심과 당신을 알아보는 영적 눈을 뜨게 하여주심으로, 마음으로 당신이 바로 나를 낳아주신 아버지이시며, 예수그리스도께서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나를 죄와 사망에서 살리기 위해 부활하셨음을 받아들이는 믿음을 주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이 땅에서 육신에서 나오는 산물이 아니라,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영에 속한 선물이기에 오직 은혜로만 얻어지는 것이다. 절대로 인간의 의지적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함과 같이 믿음은 오직 하늘나라의 백성에게만 주어지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에 속한 은혜의 선물임을 바울은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즉 우리가 택함을 받은 것이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은 것이나, 새 생명을 받아 거듭난 것이나,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의 백성이 된 것이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열심과 선행으로 우리에게 입혀주시는 선물임을 바울은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처음부터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나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그 어떤 요소도 기능도 능력도 주지 않으셨다. 불면 없어지는 이 땅의 티끌로 인간을 만 드셨기에 인간이 내놓을 수 있는 것은 다만 티끌에서 나오는 헛되고 헛된 죄악뿐이다. 그래서 이 세상 육신으로 지혜와 부귀영화를 몽땅 누린 솔로몬 왕이 자신의 육신적 타락에서 얻은 인생 고백이 바로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8)이다. 이것이 땅에 속한 죄인의 실체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의 은혜와 하나님의 믿음으로 입혀주신 구원의 선물을 자기의 노력과 업적과 공로로 얻으려고 열심을 부리는 자들은 하나님의 의와 영광을 갈취하는 망령된 자들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욕되게 하는 패역망덕한 자들이며, 예수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멸시하고 말살하려는 독사의 새끼들이며, 그들은 자신들의 썩어진 육체에서 나온 공력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이 마땅함을 주님은 반복하여 말씀하셨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33).
그러므로 거듭난 성도는 다만 바울의 고백과 같이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다"라는 철저한 자기 부인으로 내려가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와 긍휼을 구하는 것이며,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철저한 죄인임을 고백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으로 구원의 선물을 안겨주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소중하게 깨닫고 감사로 받아들이며, 그 구원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기뻐 찬양하며, 그분의 의와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 그 자체로 존재하며, 기뻐하며, 감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성도에게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라고 권고하고 있다. 이와 같이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믿음으로 입혀지는 선물이지 인간의 행위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 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딛 1:9).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롬 11:6).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죄인에게서는 오직 죄만 나올 뿐 하나님의 의에 합당한 하늘나라의 선행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멸망으로 정해진 이 땅의 티끌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처음부터 인간에게서 나오는 그 어떤 것도 받을 수 없음을 정하여 놓으시고, 오직 하늘나라에서 내려오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의만을 받아서 죄와 허물로 죽은 인간을 당신의 은혜를 입혀서 아무런 대가 없이 구원하시기로 정하셨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자신의 모든 서신에서 구원은 율법적 행위도 공로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값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임을 그렇게도 반복하여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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